사랑의 MBTI, 애착유형 알아보기
사랑에도 MBTI가 있습니다, 연애 ‘스타일’ 혹은 ‘가치관’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연인과 다툰 후 바로바로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좀 두고 화를 식힌 다음에 대화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인과 하루 종일 붙어 있고 싶어 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어느 정도는 무조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 사랑에 금방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 사람도 있죠.
먼저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지 않고 자신을 먼저 좋아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에게 관심 없는 듯해 보이는 상대방을 지독히 쫓아다니며 구애를 하다가도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면 도리어 호감이 식는 것 같다고 하는 변태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서로 다른 애착 유형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요. 무조건 좋거나 안 좋다고 할 수 있는 MBTI는 없지만, 애착유형은 안정형과 불안정형으로 나뉩니다.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의 필립 셰이버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하나 발표했어요.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 등 여로 요인들로 인해 개인이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결정되며, 이것이 성인이 되었을 때 연애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죠. 이것이 바로 '애착 유형'의 탄생입니다.
이후 연애 관련 연구에서는 애착 유형이 관계의 많은 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수천 건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어요. 애착 유형은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그리고 혼란형으로 나뉩니다.
1. 불안형 애착유형
불안형은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의 관심과 애정을 잃을까 봐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연애를 시작하면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편이죠. 이들은 연인의 기분과 행동이 조금만 변해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간혹 예감이 적중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상대방의 행동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잘 휘말리기 쉽죠. 애정이 결핍돼 있는 불안형은,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자신을 안 좋아하게 되고 끝내 떠날게 될까 봐 자기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추측하게 만드는 여러 행동들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연락은 받으면서 연인의 연락은 받지 않는다거나, 연인이 자신에게 해준 만큼만 딱 되돌려주는 식이죠. 심한 경우 이별로 연인을 협박하거나, 질투심을 유발하는 행위로 자기의 기분을 표현하기도 해요.
2. 회피형 애착유형
회피형 애착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방과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친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해요. 이 사람들은 연인과 가까워질수록 관계에 더 얽매이고, 자신의 영역이 줄어든다고 느끼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사귀는 것보다는 약간 모호한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여러 요인들로 인해 타인에게 기대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회피형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전재하기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대와 너무 가까운 사이가 되면 자기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기 위해 무의식적인 노력을 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다가도, 그 사람과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면 갑자기 호감이 줄어든다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이상형을 설정해 놓고 현재의 연인과 비교해서 상대방과의 친밀감을 줄이는 행동을 하죠.
3. 혼란형 애착 유형
흔히 회피와 불안애착이 섞여 있는 유형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원하지만 타인에게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친밀감을 회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해 모두 부정적인 상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도 신뢰하기를 힘들어한다는 거죠.
자기에 대한 확신과 관계 안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상대를 안전 기지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상대가 다가와도 온전히 믿지 못해 계속 고립되어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상대의 애정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애정을 주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감정 표현을 잘 못하며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숙한 것이 특징입니다.
4. 안정형 애착유형
이 유형이 안정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야말로 안정적인 연애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연인에게 집착을 한다거나 상대에게 버림받을까 봐 불안해하지 않아요. 또한 친밀감을 불편해하지도 않아서 연인과의 친밀함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죠.
안정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관계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이나 연인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쉽게 잃지 않아요. 심한 감정 기복을 겪는 일도 많지 않고, 원한다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도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죠. 연인과 다투더라도 쉽게 상처를 주거나 대화를 아예 거부하는 일은 없답니다. 그보다 상대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그 사람의 의견이나 비판에 따라 자기 생각과 태도를 바꿔서 유연하게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에 능숙해요.
참고로 필자는 심각한 혼란형 애착 유형이었으며,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하기에 어려움을 느껴 심한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원하기는 하지만, 남들과 가까워지면 편하다기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커지죠. 타인이 나의 일상 깊숙이 침투할수록 나를 떠나갈 때 받을 상처가 두려워 남들을 완전히 신뢰하거나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이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보호적 방어기제에 의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정을 떼고 불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이 나를 싫어할까 두려워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방을 안정시켜주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은 점점 곪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말이죠. 상대방이 다가올수록 뒷걸음질 치는 겁니다. 언제 나를 떠나도 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런 연애가 반복되다 보니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며 관계 자체를 두려워하는 정서에 빠져들고 말죠.
저에게 이런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바쁜 삶에 자신에 집중할 여유가 없어 묵살한 채로 지내다가 문득 나에게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니 건강하지 못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죠.
다행히 이제는 좋은 사람을 만나 회피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며 잘못된 애착을 바로잡아가려 합니다. 문제를 인지하고 나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신경 써가며 더 이상 뒷걸음질 치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겁니다. 쉽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다른 길로 새어나가려 할 때마다 바로잡아줄 수 있는 파트너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변화를 작게나마 분명하게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세상에 완전한 모양을 가진 사람은 없기에,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나며 서로의 모양을 보듬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이기에. 서로를 파괴하고 갉아먹기보다는 더욱 이쁜 모양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연애를 우리 모두가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