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코치

by 은빛바다

체육관 문이 열린다. 초등학교 상급반 정도의 남자 아이가 들어온다. 등록해서 2개월 정도, 간신히 발에 스텝이 익을 시기다.


코치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는 척도 않고 탈의실로 들어간다.


“너 이리 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서코치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부른다.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간신히 참는 표정이다.


쉐도우 복싱을 하던 나는 벽겨울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 그래, 체육관에 저런 인물이 있어야 한다.


영문을 모르고 쭈뼛거리는 아이를 노려보면서 서코치는 침묵을 지킨다. 날카로운 눈매가 더 사나워진다. 그만큼 아이는 압박을 받는다.


“전에 내가 뭐라고 했어? 코치 선생님 보면 꼭 먼저 인사하라고 했지?”


“네…….”


“방금 인사했어? 안 했어?”


“안 했어요.”


“왜 안 했어? 수석 코치가 하는 말이 우스워?”


뭐라고 변명도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아이는 발뒤꿈치를 들고 돌리면서 몸을 꼰다.


이제까지 코치가 이렇게 무서운 적은 없다.


관원이 떨어질까 봐 야단을 치면서도 어느 정도 선에서 기분을 맞춰주는 편이었다. 아이도 그것을 알기에 코치진을 만만하게 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서코치는 다르다.


서코치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풀어준다.


“예의를 갖추란 말이야. 체육관이 꼭 복싱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야. 지금 인사하고 들어가. 다음부터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둬. 알았어?”


아이는 코치진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인다. 코치진은 푸슬푸슬 웃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언질을 대신해주니 개운할 것이다.


코치진에서 박코치의 후임이 나올 줄 알았는데, 관원인 서여솔이 수석 코치를 맡는다.


노관장은 코치진의 연령이 낮아 관원과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를 댄다. 코치진도 불만이 없다. 그는 혁진처럼 체육관 10년 가까이 된 고인물이다.


신체 조건이 좋다. 185cm에 77kg, 리치는 193cm.


코치진과 스파링에도 밀리지 않고 우위에 선다. 운동부 출신은 아닌데 복싱에 대한 감각이 타고 났다. 그의 스트레이트를 연속으로 맞으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정없이 망치로 때리는 상상이 들 정도다.


나도 스파링 도중에 그가 찌른 레프트 바디를 맞고 KO 된 적이 있다.


리버 샷, 오른쪽 하단의 간을 때리는 것이다. 몸이 마비되어 주저앉는다. 의식은 있지만 한동안 움직일 수 없다. 태어나서 그런 주먹은 처음 맞는다.


나는 링에 웅크리고 간신히 고통을 참는다. 서여솔은 그런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빈정거린다.


“괜찮아요? 더 운동하세요.”


약이 오르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 이 또한 복싱의 과정이니까.


서여솔이라는 부드러운 이름과 달리, 서코치 이미지는 고독한 늑대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부터 압도한다. 링 사이드에 앉아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으면 감히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다.


노관장은 만일 서코치가 제대로 복싱을 배웠으면 최소한 동양챔피언까지 했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반전이지만 이런 전투사 같은 이미지와 달리, 서코치의 직업은 주방장이다. 그것도 라멘, 규동, 가라아케를 조리하는 일식집이다.


관원과 놀러 가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 모자를 쓴 모습부터 압권이다. 링에서는 상대 선수를 죽여버릴 것처럼 달려들던 그다.


크로켓을 먹으며 저 주먹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느냐며 놀린 적이 있다.


일식집 사장님이 몸이 안 좋아져 낙향하자 서코치는 체육관의 빈자리로 눈을 돌린다. 박코치의 자리를 달라고 관장에게 부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복싱으로 돈을 벌고, 체육관 관원이야 형 동생으로 지내니 운영이 편하리라 여긴 것이다. 게다가 다 주먹으로 휘어잡고 있으니 그것도 무시할 수 없다.


수석 코치로 임명되자 기강부터 잡는다.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나이 어린 관원에게 먼저 코치에게 꼭 인사하도록 예의를 가르친다. 사실 버릇없는 아이가 코치를 보고도 획 지나가는 게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아마 관원 시절부터 이게 불만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체육관 규율이 잡히는 것 같아 나쁘지는 않다.


이런 서코치가 체육관을 환기시키다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형님, 형님, 빨리요! 도와주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가니 창문 언저리에 말벌이 날아다닌다. 주걱 미트를 휘둘러 밖으로 보내거나 때려잡으면 되는데 서코치는 내 뒤에서 어쩔 줄 모른다. 그보다는 벌벌 떤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말벌이 체육관으로 들어와 러닝머신 사이를 돌아다닌다.


“으아아악! 형님, 어떻게 해요? 잡아보세요. 얼른 잡아보세요!”


그가 내민 주걱미트를 받아 단 일격이다. 러닝머신 계기판에 앉은 말벌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도무지 서코치가 이해되지 않는다.


“너 군대는 다녀왔냐?”


나는 휴지로 쓱쓱 닦으면서 확실하게 정리를 해준다.


“네, 근데 저 바퀴벌레도 못 잡아요.”


링에서 사람은 잡아도, 집에서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못 잡아? 지금까지 서코치의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난다.


“장가 가서 와이프가 벌레 잡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니까 벌레를 잡을 줄 아는 여자를 만나야죠.”


나는 눈을 흘긴다. 저절로 콧방귀가 터지는데 콧물까지 튀어나온다. 에라이~~~. 못난 놈.


***


120kg은 넘을 것 같다. 다이어트 때문에 등록한다. 싸움도 잘하고 싶다. 하지만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쉐도우를 할 때마다 1kg 아령을 손에 쥔다.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은 마치 투명인간과 천천히 포옹하는 것처럼 너무 어색하다. 2라운드를 넘기지 못하고 헉헉거리며 주저앉는다. 무릎 연골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줄넘기도 할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운동을 시켜야 하는지 막막하다.


코치진은 이 신입관원의 훈련 방법에 대해 회의한다. 방법이 없다, 방법이. 별다른 의견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서코치가 맡기로 한다.


서른 살이 되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는 신입은 서코치의 지도를 잘 따른다. 자신도 나름대로 각오하고 체육관의 문을 연 것이다.


서코치도 훈련 프로그램을 짜서 잘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종목을 다양하게 또 짧게 운동하도록 가르친다.


그게 익숙해지면 ‘했어?’로 지도한다.


“러닝 머신 10분 했어? 그럼 1분 쉬었다가 윗몸일으키기 10회 2세트 해. 윗몸일으키기 했어? 그럼 1분 쉬었다가 천천히 사다리 뛰기 5회 왕복해. 사다리 다 했어? 무릎은 괜찮아? 땀 좀 닦고. 좋아, 그러면 물 한잔 마시고 미트 받으러 와.”


다른 관원도 봐줘야 하고, 운동복이나 수건 같은 세탁물도 정리해야 하기에 신입에게만 완전히 신경을 쓸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신입의 체력을 확보한다. 서서히 적응이 되면 훈련의 강도를 높인다.


간혹 지쳐 보이면 서코치가 옆에서 주걱 미트로 박수를 치며 자극을 준다.


그런 닦달을 받으면서 신입은 열심히 따라온다. 식단까지 관리하면서 신입의 체중이 눈에 띄게 빠진다.


서코치의 의도는 성공이다.


안타깝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계기로 터지는 경우가 많다. 서코치가 스파링을 제안한다.


아마 서코치도 링에서 120kg을 상대하기는 처음이라 호기심이 일어났을 것이다. 슬슬 봐주면서 하다가 평소 버릇대로 바디샷을 꽃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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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고목나무가 쓰러진다. 꼬꾸라진 신입의 입에서 마우스피스가 떨어진다. 처음으로 당하는 충격에 신음을 지르면서 고통을 호소한다.


서코치는 그의 머리를 툭 치면 충고한다.


“괜찮아? 그러니까 더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관원 시절이라면 몰라도 코치로 임명되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관원이 낸 회비로 월급을 받는 입장 아닌가.


이건 서코치에게 놀이지만 링에 엎어진 자에게는 수치심으로 남는다. 물론 복싱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강해지고, 나중에 웃을 수 있는 추억이라고 스스로 다독거리며 견디지만, 이 신입은 다르다.


체육관에 발을 끊고, 휴대폰도 받지 않는다. 정신이 나약하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그건 남자에 일반적인 선입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처를 받는 남자 성인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학부모의 민원이 들어온다.


“우리 아이를 너무 험하게 다루는 거 아니에요? 키 큰 코치 무서워서 체육관에 가지 않으려고 해요.”


이런 계기로 서코치는 스스로 물러난다. 관장이 붙잡았지만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아예 체육관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마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다.


코치진 중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친구가 수석 코치를 이어받는다.


***


1년 정도 지났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가는 낯선 얼굴과 마주친다.


어깨에 가방을 건 채 고개를 꾸벅거리기에 반사적으로 아, 예, 하면서 받아줬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코치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나는 당황한다.


늑대 같던 눈매가 완전히 사슴이다. 호수 같다. 헤어 스타일도 바꾸고, 말투도 온순하다. 내가 알던 서코치가 아니다.


“관원으로 운동하러 왔어요.”


반가워서 악수한 손을 놓지 않는다. 그때 뭔가 머리를 스친다.


“혹시 결혼했나?”


서코치는 무척 쑥스러워한다.


“와이프랑 식당 차렸어요. 놀러 오세요.”


“당연히 가야지. 날 잡아서 술 한잔 해야지. 결혼할 때 연락하지 그랬어.”


아마 식당 홍보를 겸해서 다시 체육관에 나오는 것 같다. 한 집안의 가장이면 어떤 방법으로든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던가.


서코치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


나는 몸을 풀기 위해 러닝머신에 오른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바닥이 움직인다. 천천히 걷기부터 시작한다.


여기에서 말벌을 잡았지…….


창밖을 바라본다. 어둠에 내린 골목에 상가 간판이 현란하다. 그중에 서코치가 차린 식당도 있을 것이다.


내 얼굴이 비친다. 싱글싱글 웃고 있다.


아마 서코치는 벌레를 아주 잘 잡는 여자를 만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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