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팔려 가는 것 같다

by 은빛바다

박코치는 몸이 일반인과 다르다. 안에 벽돌을 든 것처럼 어디를 만져도 단단하다. 별명이 ‘신이 내린 몸매’다.


출렁거리는 내 뱃살과 비교할 가치도 없다. 몸에 붙는 스판 운동복을 입고 회원의 미트를 받을 때면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 같다.


특히 자세를 교정해 주는 진지한 얼굴은 남자인 내가 바라봐도 마른 침을 삼키게 한다. 피부가 새하얗고 눈썹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짙다.


자연히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때문인지 여성반을 따로 맡아서 운영한다. 시간에 맞춰 모인 10여명의 여성 회원은 괜히 틱틱거리는 경우가 있다.


“코치님, 벼랑에서 줄 잡고 올라갈 수 있어요?”


“왜요?”


“어제 TV 보니까 태능선수촌이 나오더라고요. 천장에서 내려온 줄을 잡고 팔힘만으로 올라가던데요.”


“그건 저도 해요.”


박코치는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다.


“그럼 해보세요.”


“여기에 줄이 없잖아요.”


“턱걸이라도 해보세요.”


헬스 기구를 가리킨다. 천장에서 내려온 계단식 철봉이 있다.


여성들은 뭔가 보여주기 바란다. 거절하면, 그들은 빈정거리며 지시를 듣지 않는다.


압도해야 훈련을 진행하기가 쉬워진다.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박코치는 그것을 안다.


가장 높은 철봉대를 아래로 간다. 내가 힘껏 점프해도 손끝에서 한참 미치지 않는 곳이다.


박코치는 살짝 상체를 숙이면서 무릎을 굽혔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솟아오르면서 철봉을 잡는다. 탄력이 스프링이다. 게다가 한손이다.


“와우~~~!”


여성의 탄성이 체육관을 가득 메운다. 그들 중 한 명이 왜 히죽거리며 웃는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상태로 박코치가 한손 턱걸이를 한다. 하나. 둘. 셋, 넷. 여성 회원들이 한 목소리로 올라가는 숫자를 센다. 열 개에 이르자 초조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알았으니까 그만하세요.”


박코치가 철봉에서 내려오더니 손을 턴다. 사람이 빛나 보인다.


“훈련합시다. 다들 벽거울 보고 일렬로 서세요. 스트레칭부터 합니다. 다리 벌리고 손은 허리에 얹고 목을 왼쪽부터 돌려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이번에는 반대로 돌립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여성 회원들은 고분고분 잘 따라 한다.


그에 반하여 나 같은 관원은 쭈글이가 된다. 같은 거울에 비치는 것조차 싫다. 속으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저거 괴물이네, 어떻게 한손으로…….’


처음 복싱을 시작할 때 줄넘기 3분이 힘들다.


다른 회원은 ×자로 쌕쌕이로 한 발씩 번갈아가며 온갖 재주를 부리지만 나는 지루하고 힘들고 숨이 턱까지 찬다.


더구나 92kg인 내가 줄넘기를 하면 오뚝이가 통통 뛰는 것 같아 민망하다. 출렁거리는 뱃살은 어떻게 감출 수 없다.


기초 체력 과정이라 안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줄넘기를 하는 동안 수시로 타이머에 눈을 돌린다. 넘던 줄이 발에 걸리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줄넘기가 끝나면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인상을 쓴다.


요게 박코치의 눈에 거슬린 것 같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는데 박코치가 다가온다.


“힘드나?”


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강철을 찢어 버리는 것 같다고 할까.


내가 아니라 옆에 선 정환에게 묻는 것이다. 체대 지망생이다. 평소 운동하면서 인사를 나눴는데, 박코치에게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다.


“아닙니다.”


금방 정환의 태도가 꼿꼿해진다.


“안 힘들구나? 오늘 운동을 적게 했네. 따라와!”


정환을 데리고 간 박코치가 체육관을 돌며 체력 훈련을 시킨다.


한손으로 20KG 바벨을 높이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고,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제자리 뛰기를 시키고, 버피테스트 원투에, 암워킹까지 다시 내 앞으로 온 정환은 당장 쓰러질 정도로 헉헉거린다.


“힘드나?”


박코치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조금 힘듭니다.”


“이 자식, 고작 이걸로 힘들다고. 체력이 약하구만. 훈련을 더 해야 돼. 따라와!”


정환은 아까 했던 동작을 고스란히 1세트 반복한다.


다시 내 앞에 선 정환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힘든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입을 꽉 다문 채 코로만 숨을 쉰다.


“힘드나?”


대답이 없다.


“말 안해? 힘드나? 안 힘드나?”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하라는 건가.


“대답이 없네. 운동 선배가 우습게 보이냐? 따라와!”


내 앞에서 이런 행동을 벌이는 이유를 짐작한다. 나이가 많은 나에게 충고하기가 어려우니 자기 후배를 족치면서 알려주는 것이다.


운동하면서 힘든 기색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그건 다른 회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환이 풀려날 때까지 나는 한쪽 구석에서 벽거울을 보며 쉐도우 복싱을 한다. 또 쭈구리가 된다.


괜히 박코치의 눈치를 보며 더 열심히 팔을 뻗는다. 기분도 편하지는 않다. 나 때문에 정환이는 무슨 봉변인가.


박코치가 지나가다가 슬쩍 지도를 해주며 풀어준다.


“형님, 스트레이트 뻗을 때 고개 돌리지 마요. 가드 내리지 말고요. 힘든 표정 짓지 말고요. 습관 됩니다.”

“응, 아, 알았어…….”


나는 순한 양이 되어 고분고분 대답한다. 속으로는 욕을 씨우적거린다. 나 때문에 정환을 죽일 것처럼 몰아세우더니…….


이 계기로 나는 절대로 운동 도중에 힘든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티격태격하면서 친해진다고 하더니 가끔 박코치와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된다. 가까이 마주 보니 더 매력적이다.


그 사건을 언급하면 체육관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되는 형님한테 뭐라고 지적하기 어려워서 그랬다고 털어놓는다.


내가 훈련을 어설프게 하면 여성 회원이 그걸 보고 배운다고 한다. 일반 회원이 이해할 수 없는 코치만의 상황이 있는 것 같다.


“여성 회원 지도하기가 제일 힘들어요. 특히 중학생들. 절대로 빈틈을 보이면 안 돼요.”


이해는 간다. 남자는 무섭게 호통치면 따라오지만 여성은 딱히 방법이 없다. 허술하게 대하면 여기 체육관 코치가 시원치 않다고 뒷마다를 까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너는 복싱하지 말고, 연예인으로 나가면 성공할 거 같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쪽으로 빠져.”


“에이, 형님도 제가 어떻게 그런 걸 해요. 그쪽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꽤 순박한 청년이다.


시골학교 복싱부에서 시작해서 대학 스카우트까지 받았는데, 실업팀으로 가기에는 빽이 부족했다.


꿈은 코치로 경험을 쌓다가 돈을 모아서 복싱 체육관을 차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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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에 맞춰 원투가 자연스럽게 나가는 수준이 된다.


원투, 투원투, 원투원투.


미트에 주먹이 팍팍 꽂히는 쾌감을 느끼면서 나는 복싱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태운다. 이제 벽거울을 보면 프로 선수 같은 자세가 나온다. 흐뭇하다.


정수기의 물을 벌컥대는데, 한 여인이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눈에 익다. 박코치에게 턱걸이를 시킨 그 여자다. 근래 잘 안 보였다.


그녀가 두리번거리더니 나에게 다가온다. 창백한 얼굴이다. 짧게 부탁하고 돌아선다.


“박코치 만나면 1층 카페에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싸하다. 뭔가 감이 온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박코치에게 전달한다.


“에이, 형님 장난치지 마세요.”


“사실이야. 1층으로 가 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체육관을 나선 박코치는 그날 들어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서른은 넘었겠지 추측한 그녀는 42살이다. 박코치와 17살 차이다.


누나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다가 덜컥 임신을 시킨다. 박코치가 술에 취했는데 먼저 손을 잡아 당기더란다.


며칠 동안 고민한 박코치는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동안 그녀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 복싱 체육관을 차리기로 계획을 세운다. 해피 엔딩이지만, 내 입장에는 박코치가 아깝다. 이런 순진한 시골 촌놈.


박코치가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에 이유를 묻는다.


“책임을 져야죠. 그나마 누나가 체육관을 차릴 여력이 되니까 다행이죠.”


더 할 말이 없다. 네가 팔려가는 기분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걸까. 박코치가 미트를 받아주는데 나는 자꾸 타이밍이 엇나간다.


마지막으로 체육관을 나서기 전에 고향에서 잘 살라고 가볍게 포옹한다. 그 동안 정이 좀 들기는 든 것 같다.


더불어 축하한다고 덧붙인다. 25살에 아버지라니…….


모르긴 해도 지금 둘이서…… 아니, 아기랑 같이 셋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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