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새

by 은빛바다

체육관도 사람 지내는 곳이다.


형님 아우 부르며 안면을 트면, 운동을 마친 뒤 가끔 술 한잔 마시면서 가까워진다. 나도 친하게 대하는 동생이 생긴다.


복싱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니 대화를 나누기가 수월하다. 사회에서 무엇을 하든 이곳에서 글러브를 끼면 차별이 없다.


전부 복싱을 훈련하는 관원일 뿐이다.


결혼식이나 부모님 칠순 같은 집안 행사에도 얼굴을 내밀게 되는데, 지난 달까지 같이 운동한 관원 장례식에 참석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스스로 별명을 ‘벌새’라고 불렀다.


남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새인데, 모든 새 중에서 날갯짓이 가장 빠르다. 초당 60회, 1분에 3600회다.


주식이 꿀이다. 빠른 날개를 이용해 허공에서 정지한 채 긴 부리로 꽃 속의 꿀을 빨아먹는다.


동영상을 보면 벌새가 꽃 앞에서 떠 있는데 슬로 모션으로 재생해도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하루 동안 자기 몸무게만큼의 꿀을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먹기 위해서 쉬지 않고 날아야 하고, 날아다니는 만큼 허기가 지니까 또 먹어야 한다.


벌새는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그의 직업을 처음 안 순간, 나는 철밥통이라고 농담을 걸었다가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금테 안경에 광대가 튀어나온 얼굴은 누가 봐도 깐깐한 인상이다. 희한하게 아무리 운동을 격하게 해도 잘 다듬은 머리카락은 한올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3년 동안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자신도 철밥통으로 여기고 들어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야근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행사 지원을 나가야 한다. 매일 개념 없는 민원인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첫 진상이 동생의 인감증명서를 떼러 온 중년이다.


당연히 벌새는 위임장을 요구한다. 그게 없으면 유산상속 등 잘못 도용될 소지가 많다. 놀랍게도 중년은 욕부터 한다.


“내가 친동생 인감증명서 가지러 왔는데 위임장을 받아야 하냐!”


공무원이 규정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건 당연하다. 진상은 몰랐던 사실이 무안해서 더 큰소리를 친다.


“요즘 공무원 왜 이리 싸가지가 없느냐!”


더불어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당신들 월급이 누구한테 나오는 줄 아냐!”


결국 정점을 찍는다.


“여기 책임자 당장 나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하는 이 상황을 벌새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하얗다.


지켜보던 계장이 나서서 벌새에게 사과를 강요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벌새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다.


만일 윗선으로 민원이 올라가면, 부하 직원을 통솔 못하는 무능한 계장으로 찍힐 수 있다.


벌새가 불친절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제야 자존심을 세운 진상이 주민센터 출입문을 열고 나간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벌새의 등을 다독거린 계장이 한마디 남기면서 자기 자리로 향한다.


“공무원이니 참아야지.”


이 정도는 애교다.


기초수급자가 보조금이 안 들어왔다고 벽돌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복지정책과에서 전부 조사해서 수여하는 건데 꼬장을 부리면 다 받는 줄 안다.


들어보니 대한민국에 그런 인간이 정말 많다.


벌새는 흡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혹시 센터장이 지나갈까 봐 창밖으로 경계를 멈추지 않는다. 공무원이 근무 시간에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광경은 사치다.


그러다가 건강이 나빠지자 복싱을 배우러 온 것이다.


샌드백을 치는 벌새의 주먹에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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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덜 배우고 못 사는 찌질이가 민원을 넣어요. 사고를 치고.”


누군가를 빗대서 내뱉는 말투 같아 듣기에 편하지 않다.


벌새는 주위 사람을 낮춰보는 경향을 갖고 있다. 직업이 좋지 않으면 깔본다.


대표적으로 고철상에 다니는 혁진이다. 그가 대화에 끼려고 하면 다른 곳으로 간다. 바라보는 내 속이 편치 않다.


서로 스파링을 뛰라고 권하면 벌새가 피한다. 실력이 안 되는 건 둘째고, 아예 상대하기가 싫다는 식이다.


혁진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압도할 실력이 되면서도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댄다. 그의 소심한 성격 때문이다. 착하기만 한 녀석이다.


간혹 벌새가 툭 던지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악착같이 날갯짓을 해야 꿀 빨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세상이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내 가정을 지킬 수 없어요.”


그러던 벌새가 한동안 나오지 않자 의아하게 여겼다. 박코치에게 근황을 물으니 입원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데요. 관장님한테 연락이 왔나 봐요. 췌장염이래요. 신장이 안 좋아져서 투석에 들어갔대요. 좀 심각한 거 같더라고요.”


병원과 호실을 알고, 관원과 문병을 갈까 시간을 조율하고 있는데, 이틀 뒤 단체 카톡으로 사망 소식이 날아온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몇주 전에 체육관을 같이 나서면서 ‘집으로 잘 들어가시라.’는 인사가 선명하다.


체육관에 관원이 모여 문상을 간다. 혁진이 동행한다.


벌새가 열심히 산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아마 악착같이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유도 역시 그것일 것이다.


검은 상복을 입은 아내와 이제 유치원에 들어가는 딸이 망연하게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아내는 우는 것조차 지쳐 보인다.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조차 버겁다.


장례식장에서 관원들은 묵묵하게 밥만 먹는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옆에 앉은 혁진이 슬쩍 입술을 뗀다.


“형님이 전에 벌새랑 스파링 해보라고 권할 때 붙을 걸 그랬어요.”


“왜? 억울해?”


“아니요…….”


혁진이 쓸쓸하게 말을 잇는다.


“허무해서요.”


영정 사진을 쓱 돌아본 혁진이 입맛이 없는지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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