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아이

by 은빛바다

가끔 희한한 인간이 복싱 체육관에 등록한다. 허세만 가득하다.


일진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새파랗게 어린 고등학생이다.


아직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나는 그 녀석을 똘아이라고 부른다.


***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체육관에서는 체력훈련을 한다.


푸시업, 윗몸일으키기, 사다리 뛰기, 아령 들기 등 릴레이식으로 돈다. 관원 체력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박코치에게 빨리 뛰라는 닦달을 들으면서 5세트를 마치고 나면 탈진 상태가 된다.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 훈련을 마치면 다들 땀을 닦으면서 하이 파이브를 한다.


관원은 바싹 당겨서 운동하고, 코치진은 이것을 통해 관원을 통제하는 위치를 굳히는 것 같다.


먼저 관원을 일렬로 세우고 몸을 푼다. 이때부터 체력 훈련에 대한 압박감으로 다들 비장해진다. 남자건 여자건 수요일에 온 관원은 무조건 이 훈련을 거쳐야 한다.


똘아이의 등장은 여기부터다. 박코치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반발한다.


“이런 거 꼭 해야 해요? 싸움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아빠가 복싱 해봐야 진짜 싸움에는 전혀 필요 없대요.”


관원 중에는 똘아이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성인들이 열을 맞추고 있다. 이모 삼촌 뻘이다. 그런데 똘아이 때문에 진행을 할 수 없다. 다들 머쓱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열을 맞추라는 지시를 계속 거절하자 드디어 참다 참다 노관장이 나선다.


“너 따라와!”


곧장 똘아이를 끌고 테라스로 간다.


체력 훈련 2세트를 끝날 즈음에 똘아이가 나온다. 곧장 가방을 챙겨 체육관에서 나간다. 기가 죽은 채 고개를 푹 숙인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3일 정도 지난 뒤 박코치에게 미트를 받는 그를 발견한다.


나중에 내가 노관장에게 묻는다.


“그 자식 테라스에서 어떻게 했어?”


“남자답게 계급장 떼고 붙자고 했죠. 나중에 치료비 물어달라는 군소리 말고.”


“그러니까 뭐래?”


“어버버 하더라고요. 저런 자식은 무조건 세게 나가야 해요. 길거리에서 큰소리치는 깡패도 겁먹지 마세요. 허세예요. 걔네들 싸움 못 해요. 당장 붙자고 하면, 왜 이러시냐고 하면서 슬쩍 뒤로 빼요.”


“그거야 노관장처럼 실력이 있으니까 대드는 거고.”


“하여간 기를 팍 꺾은 다음에 천천히 달랬죠. 집에 가서 자기 부모님한테 헛소리하면 그것도 골치 아파요. 성질 더러우면 애 손목 잡고 체육관으로 찾아와요. 아직 어리잖아요. 철들기 전까지는 그러려니 해야죠.”


나중에 이 똘아이는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에게 탈탈 털린다. 스파링을 구실로 링으로 올라가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몇번 스파링을 통해 똘아이는 자기 서열을 안식한다. 그 중에는 옆구리를 쳐서 다운을 시킨 박코치도 있다.


링 사이드에 주저앉아서 멍해진 똘아이의 얼굴은 누가 봐도 깨소금 맛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한 양이 된다.


싸움은 좀 해본 것 같다. 나름대로 때리는 기술을 알고 있다. 혼자 터득했겠지만, 어떻게든 걸리라는 식으로 주먹을 크게 휘두른다.


마치 야구에서 사이드 암 투수가 공을 던지듯 옆으로 크게 돌린다.


별 거 아닌 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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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소인 턱이나 옆구리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체중이 실리지도 않아서, 팔꿈치만 세우면 다 걸린다. 아니면 상체를 약간 비틀면 등에 맞는다.


저런 주먹을 맞아서 KO 되는 경우는 없다. 아마 학교에서 성질을 부리며 저렇게 주먹을 휘두르면 겁을 먹은 아이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았는가 싶다.


일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일종의 허세충.


폭력에 대해서는 친밀한 것 같다.


주위에서 자주 싸움이 일어나고, 그걸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허세를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큰소리를 쳐야 주위 사람들이 수그러드는지 안다.


내가 보기에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도 미심쩍다.


항상 체육관 코치진이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인사 잘하라고 가르친다. 운동부에서는 그게 전통 같은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내가 체육관에 들어가면 사방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나는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면서 탈의실로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나이 대접을 받는 게 부담스럽기는 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제 똘아이도 그중에 있다.


똘아이가 이 체육관에 처음 들어와 낯선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꼈을 테고, 아마 큰소리를 치며 뻗댄 이유가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성질이라도 부리면 서열이 올라가는 것 같으니까.


아직 어린 아이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거의 30년 전이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시기, 완전히 춘추전국시대다. 중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주먹이 모여서 1짱을 노린다.


***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점심시간이다.


새로 사귄 친구와 도시락을 먹는데 뒷문이 왈칵 열린다. 돌아보니 우락부락한 녀석이 기세 좋게 반을 훑고 있다. 고함을 지른다.


“여기에서 제일 싸움 잘 하는 놈 나와!”


돌아보면 당시의 그런 행동에 낭만이 있었다.


일순 정적이 교실을 채운다. 무슨 의도인지 안다. 그 자식은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과시하고 있다.


“없어? 알았어!”


다시 문을 쾅, 닫는다.


“미친놈.”


교실에서 누군가 툭 내뱉는다. 저런 일에 자존심을 걸 필요가 없다. 학교는 공부하러 나오는 곳이다. 무엇보다 피곤한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똥개가 지나갔나 여기면서 다시 밥을 먹는다.


갑자기 뒷좌석의 녀석이 숟가락을 내던지더니 벌떡 일어나서 뛰쳐나간다. 참으려다가 폭발을 한 것이다.


“야! 너 이리로 와! 방금 뭐라고 했어.”


복도에서 우당탕 싸우는 소리가 난다.


한동안 서열을 가르느라 매일 공터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결국 1짱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뿐이다.


요즘처럼 삥 뜯는 일진도 아니었고, 그냥 지들끼리 서열 놀이를 했다. 부딪치지 않고 무시하면 아무 상관도 없었다.


지금 그 자식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어디를 가든지 우두머리를 원하지 절대로 꼬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꼭 주먹이 아니더라도 싸움은 필수다. 그에 따른 허세도 필수다.


***


아마 똘아이는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 체육관에서도 서열이 올라가리라고 여긴 모양이다. 링에 올라가면 금방 실력이 드러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언젠가 똘아이에게 음료수를 건네면서 물은 적이 있다. 이제 첫인상과 달리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는다.


“관장이 맞짱 뜨자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


녀석이 부끄러운지 몸을 꼬면서 대답한다.


“그때요? 이게 아닌데, 어떻게 하지? 나는 고등학생인데? 그게 머리에서 떠올랐어요.”


위기가 닥치자 금방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고등학생이라는 도피처를 찾은 것이고. 밑바닥인 자기 서열을 인식한 것이다.


똘아이가 눈치채지 않게 나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다.


사회로 나오면 서열은 그런 주먹이 아니다. 입고 다니는 옷이고, 시계와 구두며, 타고 다니는 승용차다. 그 다음은 뭔지 알까?


그때는 네가 아무리 허세를 떨어야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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