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진태는 이등병이다. 국어국문학과 1학년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입소했다. 빨리 군복무를 마치는 게 나을 거라고 주장했다. 강릉 해안대대에서 복무 중이다.
“추웅성!”
PX에서 군복 입고 경례하는 아들을 만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아내는 손바닥으로 연신 진태의 얼굴을 문지른다. 나도 눈물이 핑그르 돈다.
탁자에 둘러앉아 안부를 묻기도 전에 아내는 보따리를 푼다. 둘러보니 요즘 군대 PX는 치킨에 피자도 판다. 나 군복무 시절에는 쏘세지랑 과자 부스러기가 전부였는데.
진태가 면회 때 초밥을 사 오라고 부탁했다. 선임과 외출했다가 시장 상인끼리 초밥 먹는 광경을 본 것 같다.
강릉으로 떠나기 전에 초밥집에서 특대 세트 2인분을 포장한다. 뿐만 아니라 수산시장에서 진태가 좋아하는 광어회를 떠서 아이스 박스에 담는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쌀가마니를 지고 지구 반대편까지 걸어갈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책이 없으면 망하는 집안이라고 농담을 나눈다.
아내는 진태를 낳기 전까지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자기만의 출판사를 운영하는 게 꿈이었다. 집에서 파주 출판도시까지 출퇴근이 어려워 출판사 근처 원룸에서 생활했다.
주말마다 그 근처 시립도서관에 들렸는데 당시에 사서로 근무하던 나와 눈이 맞았다.
지금 나는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해서 햇살도서관 자료실 정책 팀장으로 근무하고, 장인어른은 아직도 충정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진태가 입대하니 갑자기 집이 허전하다.
아내는 매일 빈방을 청소한다. 할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친구랑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해도 내키지 않는 기색이다.
원래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다. 외식도 즐기지 않는다. 해외 여행이라고는 나와 신혼 때 들린 발리가 전부다. 부지런한 성격이라 항상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다.
20년 동안 부은 적금의 만기가 다가온다. 아내는 그것으로 커피숖이라도 해볼까 슬쩍 의견을 비춘다. 나는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말리느라 애쓰는 중이다.
“강아지라도 키울까?”
산책을 시키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외출할 테니 아내의 운동에 도움이 되리라 여겼는데, 동물 냄새부터 역겨워한다.
집안 일도 바쁜데 언제 사료 챙겨주고 목욕을 시키느냐며 결사 반대다.
“올스타가 뭐야? 노래방 아냐?”
늦은 저녁밥을 챙겨주면서 묻는다. 카드 내역서를 본 모양이다.
나는 퇴근 후 곧장 체육관으로 향한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허기가 짙다.
“내가 복싱 체육관에 다닌다고 했잖아.”
“거기가 올스타야? 이름도 희한하게 지었네. 거기 다니면 복싱 스타가 되나?”
“이 근처에서 제일 시설이 좋아. 가면 되게 화려해.”
“나이 먹고 할 만해? 전부터 배우고 싶다더니. 막 두들겨 맞는 거 아냐?”
“복싱 배우면서 안 맞을 수 없어. 그 체육관 괜찮아. 코치도 잘 지도해주고. 좋은 친구도 만나고.”
“나중에 무하마드 알리나 이소룡처럼 되는 거 아냐?”
문득 아내의 농담이 허전하게 들린다. 둘 다 말을 잇지 못 한다. 동시에 아픈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
진태를 임신하고 입덧이 지날 무렵이다. 아내에게 먹고 싶은 거 물어봐도 괜찮다고만 한다. 남들은 한겨울에 수박을 사오라고 시키던데…….
나는 배부른 아내와 삼계탕을 먹으러 간다. 몸보신이라도 시켜주고 싶다.
식탁에 앉아 주문을 기다리는데 아내가 코를 막고 뒤를 돌아본다.
중년 두 명이 껄껄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금 내 나이 정도 된 것 같다. 분명히 금연 식당이다.
아내가 어쩔 줄 모르다가 뒤뚱거리며 화장실로 간다. 어지러워서 세수를 하려는 것이다.
화가 치밀어오르지만 나는 목소리를 낮춰 그들을 부른다.
“저기,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호탕하게 웃던 중년이 곧장 입술을 닫더니 시큰둥하게 나와 눈이 마주친다. 식탁에는 빈 소주병이 무리를 지었고 그들은 얼굴은 붉다.
“담배 좀 꺼주시겠어요? 제 와이프가 임신해서 담배 연기를 무척 힘들어하네요.”
이 정도 얘기하면 이해할 거라고 여긴 나의 착각이다.
“저거 건방지게 무슨 소리야? 내 담배 내가 피우는데?”
나이도 어린 버르장머리 없는 놈, 어른들 얘기하는데 싸가지 없게,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돌아온 대답이다.
어이가 없다. 나이가 무슨 벼슬인가.
나는 더 강력하게 요구한다.
“여기가 금연 식당이잖아요. 다른 사람을 고려해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잖아요.”
둘이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데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의자 등받이에 걸친 후줄근한 점퍼가 공사판에서 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굳은 살 박힌 손을 들면서 나를 후려칠 듯이 겁박한다.
느닷없는 반응에 나는 당황한다.
“뭐야?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야?”
“당신? 어린 놈의 자식이 말하는 거 봐라.”
화장실에서 돌아온 아내가 화들짝 끼어들어서 말린다. 얼른 나가자고 한다.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한 집안의 가장이다. 아내는 나만 믿으면서 살고 있다.
사장이 달려 나온다. 소란스러워지자 닭다리를 뜯던 손님들이 집중한다.
나는 임신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진다. 아직도 공기를 찢던 그 목소리가 생생하다.
중년이 욕설과 더불어 내 뺨을 날려버린 것이다. 내가 나선 게 그들에게 대드는 동작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어느새 그에게 내 멱살이 잡혀 있다. 잠시 정신이 멍하지만 가장이라는 자존심이 지탱해준다.
어설픈 주먹을 휘둘러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슥슥 피하더니 멱살을 흔들다. 무술이라도 배웠는지 몸놀림이 남다르다.
싸움을 좀 해본 것 같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완력이 강하다. 그제야 대하는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당시 내 표정은 완전히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린 강아지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르겠다.
다른 중년이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린다. 굳이 때릴 가치도 없는 걸 인식한 걸까.
삼계탕 사장이 진정하시라고 나서자 그제야 멱살을 푼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여전히 정신이 없다.
중년은 침을 뱉듯이 다시 말한다.
“어른도 몰라보고 싸가지 없이 말이야…….”
도대체 그 어른이라는 게 뭔가?
아내가 휴대폰으로 경찰서에 신고한다.
그제서야 중년의 태도가 달라지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담배를 꺼달라는 요구가 너무 건방졌다. 마치 내가 ‘거기! 담배 꺼!’ 이런 식으로 대들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겠냐. 어른이 그렇게 당하니 술김에 욱해서 슬쩍 쳤다.
소란을 피우고 폭력을 쓴 건 정말 미안하다. 경찰이 오면 다 보상하겠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 여기 점퍼를 벗어놓고 가겠다. 신분증도 그 안에 있다. 걱정 마라, 안 도망친다. 정 못 믿겠으면 사장님이 같이 가자.
점퍼에서 담배를 꺼내면서 슬슬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경계가 풀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정문으로 달려나간다.
“야! 튀어!”
식비를 내지도 않았다. 점퍼에 신분증은 없었다.
코 푼 휴지도 나보다 자존심이 있으리라.
한동안 아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한밤중에 문득 눈을 뜨니 아내가 없다. 방문을 열었을 때, 베란다에서 쪼그리고 앉아 우는 아내가 보인다.
아마 자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안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했는지, 굳어버린 응어리가 씻기지 않는다. 여전히 그것은 남아 있다.
***
“느그 아버지 권투한다. 밤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질린 모양이더라.”
아내가 PX 면회실에서 고자질한다. 진태가 깜짝 놀라더니 의외라며 싱글거린다.
“그래요? 아버지가 누구를 때리는 게 상상이 되지 않네요.”
젓가락은 쉬지 않는다. 광어회를 간장에 찍어 먹는 모습만 봐도 아내와 나는 가슴이 설렌다.
“그러게 말이다. 늦은 나이에 이상한 바람이 들어서 이런다.”
“저도 그런 거 배워서 군대 왔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아버지 시절에는 태권도 단증 못 따면 휴가도 안 보냈다고 하던데요.”
“느그 아버지 동사무소 방위였잖아.”
경상도 여자 티를 내느라고 꼭 ‘느그’라고 부른다. 촌티 난다고 매번 면박을 줘도 아내는 평생 고치지 못 한다.
“태권도는 아니어도 호신술 하나는 익히고 들어왔으면 좋을 뻔 했어요.”
“못 살게 구는 고참이라도 있냐?”
아내가 정색하면서 묻는다.
“내무반 생활이 다 그렇죠……. 국문과 나왔다고 하니까 더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서요.”
남자만 모인 곳이라 힘의 영향력이 더 작용할 것이다.
책이 없으면 망하는 우리 집안은 왠지 약하다는 인식이 드는 것 같다. 이상한 선입견이다. 출판사나 도서관에서 근무해도 성질 더럽고 싸움 잘하는 인간이 많다.
“저도 제대하면 체육관 다니고 싶어요.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지요.”
“그런 격투기를 배워서 싸움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싸움하기도 전에 얻어맞는 것보다 낫죠.”
아내가 잘 나누던 대화를 멈춘다. 슬쩍 내 눈치를 살핀다. 역시 오래 전의 트라우마를 잊지 않고 있다.
“좀 드세요. 저만 먹는 것 같네요. 술이 없어서 그런가. 좀 아쉽네요.”
소주라도 따라주었으면 좋겠다. 이곳저곳에서 장병들이 충성! 경례를 붙이는 소리가 들린다.
왠지 그 소리가 친근하다. 지난 향수를 일으킨다. 비록 내가 동사무소 방위라고 해도.
“잘 지내냐?”
아버지로서 군인 아들에게 안부를 묻는데 더 필요한 질문이 없다.
“다른 거 있나요? 이등병이 네, 네, 하기만 하면 돼죠. 다음 달에 일병 달아요.”
“필요한 거 있으면 아끼지 말고 써라. 잔액 부족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그리고 잘 참아. 욱해서 사고 치지 말고. 판단 잘해.”
“네, 잘 참을 게요.”
“잘 참아. 사고 치지 말고.”
나는 다시 강조한다. 참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힘이 없으니까.
강릉까지 와서 30분만 얼굴을 보고 들여보낸다. 곧 일병 휴가 나가니까 잘 지내시라고 위병소 앞에서 경례를 붙인다.
“추웅성!”
승용차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시동을 거는데 아내가 침울하게 툭 던진다.
“진작에 배울 걸 그랬어.”
“뭘?”
“복싱이니 태권도니 그런 거. 그래야 어디 가서든 기 죽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건데.”
주차장에서 부대 정문을 바라보는 아내는 눈을 돌리지 못 한다.
“그러게 말이야. 때로는 칼이 펜보다 강한데 말이야.”
나는 기어를 당기면서 서서히 가속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