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by 은빛바다

중학생끼리 대여섯 명이 어울려 체육관에 우르르 들어온다. 수업을 마친 뒤 곧장 왔는지 가방을 어깨에 걸고 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벽거울을 보며 몸을 푸는 과정에도 그들의 입은 쉬지 않는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서로 툭툭 건드리며 비꼬거나 면박을 주며 장난을 친다.


주위에서 시끄럽다고 야단을 쳐도 잠깐 입을 다물 뿐이다. 다시 킥킥거리고 까불면서 주위에서 쳐다보든 말든 자기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몰라, 네가 알아서 해. 쪼다야.”


“그딴 식으로 말하냐. 싹퉁머리 졸라 없는 녀석.”


듣기에도 거북한 대화를 거침없이 나누면서 욕설까지 붙인다. 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중학교 시절에 천둥벌거숭이로 지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돌이켜보면 참 민망하다.


노관장이 그들을 따로 집합시킨다. 단체로 훈련시키는 게 효과적이다. 서로 경쟁심도 유발하고.


먼저 체육관 다섯 바퀴 돌린다. 뛰는 동안에도 그들은 어깨로 밀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흐물흐물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막는다. 저런 장난질도 이제 끝이다.


일렬로 세우고 버피테스트 30개, 양팔 벌리고 뛰기 30회, 앉아다가 일어서면서 원투 30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노관장은 호통을 치며 처음부터 다시 시킨다.


서서히 숨이 차 오면서 체육관이 들썩일 정도로 소란스럽던 그들의 기세가 사그라든다. 땀을 닦으면서 헉헉거리는 숨소리만 들린다. 그 광경이 고소하기까지 하다.


노관장은 미트를 받고 나서야 그들을 놓아준다. 한동안 체육관 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지르고 앉아 지친 체력을 추스른다.


잠시 후 충전된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 입부터 턴다. 어쩔 수 없는 귀여운 악당이다.


가끔 그들끼리 스파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중학생 경우에는 ‘잽 없이 배만 때리는 스파링’을 주로 한다. 목 아래쪽, 복부나 옆구리를 치는 훈련이다. 상대를 때렸다가 금방 빠져야 하기에 스텝 훈련에도 좋다.


다른 장점은 얼굴을 때리지 않기에 나를 치는 주먹을 끝까지 볼 수 있다. 더구나 얼굴에 상처가 나면 부모님이 굉장히 싫어한다.


글러브를 끼고 링으로 올라가기에 지들끼리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혼자 샌드백을 치다가 돌아보니 링에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는 중이다. 배만 때리는 스파링이 아닌 풀 스파링을 하고 있다.


남자 아이치고는 곱상하게 생긴 녀석이 있다. 피부가 하얗고 콧날이 오뚝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준다. 중학생들이 몰려다닐 때 항상 뒷전에서 엉성하게 어울렸다. 실력이 없어 어느 쪽에든 잘 끼워주지 않는 깍두기 같은 인상이다.


그 녀석이 헤드기어를 쓴 채 신나게 얻어터지는 중이다. 펀치를 맞을 때마다 목이 확확 돌아간다. 거리를 재는 방법도 모르는 초짜다. 엉성한 가드는 계속 뚫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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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무리를 따라 늦게 복싱 체육관에 등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복싱 기술을 배운 녀석이 뛰어난 순발력으로 깍두기를 농락하는 중이다.


보다 못한 노관장이 나서서 중지시킨다. 직접 헤드기어를 벗겨준다.


얼굴이 붉다. 놀란 건 녀석은 반응이다. 동급생에게 그렇게 맞았으면서 계속 스파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파이팅 의지는 좋지만 저건 아무래도 아니다 싶다.


내가 링으로 다가가서 상대 선수인 중학생에게 충고한다.


“아무리 진지하게 스파링을 해도 상대방 자존심까지는 꺾지 말아야지.”


오히려 나에게 반발한다.


“쟤가 원한 거예요. 배우려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직접 맞아봐야 한다고.”


그래? 오호, 어떻게든 더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그래도 친구인데 너무 심하잖아.”


“쟤가 원해서 이러는 건데…….”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여운으로 남는다.


이후로 비슷한 광경을 자주 본다. 깍두기가 얻어터지는데 예전과 다르다. 패링으로 막거나 위빙으로 피하며 때로는 반격도 한다. 실력이 부쩍 오르는 게 보인다. 무엇보다 스파링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이 잘 살아 있다.


이상한 점은 중학생끼리 조금이라도 과격한 스파링을 하면 곧장 말리던 노관장이 차분하게 지켜보기만 한다.


한동안 중학생들이 체육관에 나오지 않는다.


중간고사 기간이다. 한주 정도 조용해진다. 왠지 흥이 나지 않는다. 체육관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다시 우르르 밀려온 중학생은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노관장의 꾸중을 들으면서도 입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버피 테스트를 받으면서도 서로를 돌아보며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투닥거린다.


“시험은 잘 봤어?”


노관장이 묻는다. 순식간에 중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기가 죽는다. 별 다른 대꾸가 없다.


“그딴 얘기하지 말고 훈련이나 해요.”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글러브를 끼며 미트 받을 준비를 한다. 하긴 시험의 ‘ㅅ’ 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칠 시기다.


“너는?”


노관장이 턱짓으로 깍두기를 가리킨다. 왜 저 아이에게만 관심을 주는지 의아하게 여겼는데 옆에 다른 아이가 대답을 해준다.


“애는 아깝게 탐구 과목 하나 틀려서 운이 좋으면 전국 3등은 할 거래요.”


귀를 의심한다. 전교가 아니라 전국 3등?


갑자기 곱상한 외모에서 수려한 빛이 나는 것 같다. 뭔가 다르게 보인다.


자기끼리 스파링을 하는데 여전히 깍두기는 헤드기어를 쓴 채 맞는다. 하지만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은 냉정하고 주먹을 막는 기술은 무척 발전되었다. 몸놀림이 벌써 복싱 선수 같은 티가 난다.


그런 태도에서 조금씩 세상을 자기 의도대로 담으려는 신념 같은 게 보인다.


나는 노관장에게 다가가서 묻는다.


“방금 들었는데, 맨날 두들겨맞는 쟤가 전국 3등이라며?”


팔짱을 끼면서 스파링을 지켜보던 노관장이 흐뭇하게 웃는다.


“확실히 다르죠. 얘기를 나누면 보통이 아니에요. 자기 마음 먹은 건 꼭 해치우려고 해요. 나중에 어디 장관이라도 할 것 같아요.”


훗날 사회로 나온 저 깍두기를 올려봐야 하지 않을까 묘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깍두기는 펀치를 맞아가면서 자기만의 복싱을 배우고 있다.


문득 내가 링으로 올라가서 깍두기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왠지 얄밉고, 그런 식으로 안면을 트면 나중에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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