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 날, 단풍나무에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던 날 나는 가끔 다니던 길가에 있는 나무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그 나무의 이름은 단풍나무였다.
여름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의 탓인지 모든 나뭇잎들이 푸릇푸릇 색을 띄우고 있었다.
그렇게 초록색이 가득한 단풍나무들이 있는 길가를 지나갔고 나는 일주일이 지나던 때에 또다시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그 길에 들어서자 빨간 잎새 하나가 보였다. 모든 나무들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는데 딱 한 단풍나무에서 하나의 잎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뭔가 신기했다. 온통 초록빛인 나무들을 비집고 딱 한 잎만이 빨간색이라니 신기하면서도 이뻐 보였다.
그 나뭇잎을 유심히 바라보고 마저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빨간 나뭇잎.. 나는 빨간 나뭇잎과 푸른 나뭇잎에 차이를 두기로 했다. 저 붉은색 이파리는 초록색 이파리와 다르다고.
또 다음 주가 되고, 나는 산책을 하러 익숙한 길가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무언가 조금 달랐다. 하나의 단풍나무가 죄다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
그 하나의 잎새가 나무 하나를 죄다 빨갛게 물들인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이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저 잎 하나가 온 나무를 물들였구나 곧 있으면 이거 리가 모두 빨갛게 물들겠지?, 아니야 온 세상의 단풍나무가 동일한 색으로 변할지도 몰라!
누군가 보면 당연한 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관점을 조금 바꿔서 우리의 사회에 대입해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의견을 내기 어려운 질문에 쉽게 주눅 들고는 한다. 출제자의 의도가 보이는 물음에는 그저 답은 '예'라는 답만 존재한다. 모두가 아니라 는 답을 하고 싶어도 그 답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이 만약 '아니요'라는 답을 한다면 그 건 엄청난 파장과, 결과 또는 대단한 용기가 모두 에 게 심어질 수 있다. 그 단 한 명의 '아니요'라는 답에 그 옆에 있던 다른 한 명은 예와 반대되는 대답에 용기를 얻어 '아니요'라는 말을 한다면 옆의 사람의 옆에 있는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가며 끝내 모두가 "아니요"라고 한마음을 담아, 출제자의 의도가 보이는 질문에도 우리는 그 의도를 빗나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저 붉은색 이파리와 초록색 이파리의 차이점을 두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똑같은 색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이파리가 아닌 거다. 모두 한마음을 가지고 있는 똑같은 이 파리일 뿐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마치 단풍나무처럼 보였다. 한 잎새의 반란이 이토록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 신기 하면서도 대단한 일이다. 단 한 번 용기를 내준 그 이파리 때문에 이 세상 모두의 단풍나무들이 초록색에 서 빨간색으로 물들었으니 그건 어쩌면 우리에 게 자그마한 용기를 가져봐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 누가 푸른빛을 띠더라도 혼자 붉은빛을 띠었던 그 한 잎새의 반란 처럼 말이다.
이미지: ChatGPT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