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스위스 융프라우 & 피르스트

by 시옹
7일의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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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유럽여행이자 첫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었던 2018년 여름, 예정되었던 8개 나라 중 가장 기대했던 곳은 단연코 스위스였다. 온갖 미디어에서 먼저 접한 스위스는 실존한다고 믿기엔 너무 거짓말같이 평화로웠다.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동산 위 마을들과 평화로운 초록빛 전경들로 가득한 나라가 있다니. 기대감에 가득 찬 채 스위스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 열차 TGV에서 내려 처음 스위스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난다.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도시의 매연과 소음에 늘 둘러싸여 살았던 나에게 스위스는 첫 만남부터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 그린델발트의 공기는 태어나서 처음 마셔보는 공기 같았다. 자연이 만들어준 그대로의 싱그럽고 깨끗한 대기, 그리고 사방을 둘러싼 기막힌 설산들. 순간적으로 지나온 영국과 프랑스가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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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의 첫 도착지는 만년설로 유명한 융프라우. 한국인들이 흔히 이용하는 융프라우 한국 총판 '동신항운'의 융프라우 VIP패스를 이용한 스위스 철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선진국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선진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교통의 편리함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전세계와 견줘도 떳떳한 선진국이라 생각한다. 스위스도 마찬가지인데, 'SBB(Schweizerische Bundesbahnen)' 어플 하나면 스위스 내 철도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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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이라고 얘기만 들었을 때는 크게 실감이 안 난다. 하지만 7월 한여름에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융프라우에 도착하니 살갗으로 느껴지는 추위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여긴 365일 겨울이구나.

조금 쌀쌀한 정도가 아니었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철도를 탔던 내가 챙겨 온 후드티를 입고도 이가 덜덜 떨리고 사진을 찍는 손가락이 얼얼해질 정도로 추웠다. 짜릿했다. 여름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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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진한 컵라면 냄새다. 대한민국 국민 라면, 신라면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융프라우 VIP패스 안에 컵라면 바우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야무지게 컵라면을 먹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바우처 없이 컵라면을 구매하면 2018년 당시 무려 7.9유로, 한화 만원이 넘는다. 융프라우의 만년설을 보며 만 원짜리 럭셔리 컵라면을 먹으면, 늘 먹던 맛이 새롭게 느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수출용 컵라면이라 한국 컵라면보다 건더기가 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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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을 뒤로하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갈 수 있는 피르스트였다. 피르스테에서는 주로 더할 나위 없는 경치와 함께 마운틴 카트나 집라인 같은 액티비티를 즐긴다.

하지만 사실 경치를 보며 멍을 때려도 모든 순간이 새롭고 짜릿한 피르스트에서는 오히려 액티비티는 곁들일 뿐이었다. 이 산의 들판에 앉아서 살랑이는 잔꽃들과 같은 공간에 숨쉬는 것 자체가 나에겐 가장 큰 액티비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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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81024_012255734.jpg 피르스트 마운틴 카트 액티비티

우리나라는 산지가 전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악국가다. 분명 나는 산악국가에서 왔는데, 이곳 산들의 모습은 왜 이리 낯선 걸까? 자유롭게 자란 풀들과 그 풀을 마음껏 뜯어먹는 소들. 평화로운 피르스트의 언덕에는 그 소들의 딸랑이는 목걸이 종소리만 청량하게 울렸다. 거대한 산맥 위로 핀 하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어도 넷플릭스가 필요가 없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천국에 대해 묻는다면, 머리에 떠올릴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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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름의 낮은 길었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로 가는 곤돌라는 정확히 오후 6시에 운행을 마친다. 우리나라처럼 관광지는 당연히 늦은 시간까지 운행할 것이라 생각하면 스위스 미아가 될 수 있다.

지저기는 새소리에 일어나 소와 염소들에게 밥을 주고, 자연으로 둘러싸인 채 일을 하다가 일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해질녘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 스펙을 쌓고 있지 않다고, 취미가 없다고,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무언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삶.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치열하게 경쟁하고 끊임없이 자기 성장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삶 밖에 모르는 나에겐 너무 생소했다.

폭풍같이 소용돌이치는 이 어지러운 20대를 마무리하고 난 뒤,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이 들었다.


Jungfrau, Switzerland_ Key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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