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밀실 철학 09화

존재론적 자기와 윤리적 자기

나를 위한 제어 장치 - 혼란스러울 때 참고하시오.

by 김윤후


뒤죽박죽 머릿속. 부조리. 감정의 혼란. 그 수많은 정신나간 소용돌이를 겪고 나서 나는 최종적으로 나 자신을 제어할 장치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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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을 보면, 윤리적 자기와 존재론적 자기가 있다. 이러한 구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만의 소우주(?)적 삶과 학교에서의 삶을 구별해서 본 나의 오래된 관()에 기인한다. 그래서 학교의 일(시험 등)은 나와는 일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학교에 있어야 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만의 삶에 대한 망상도 커지고 또 커졌다. 현실보다 머릿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들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현실과 나의 머릿속에서 교차하여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머릿속 완벽에 대한 표상과 감정의 소용돌이는 현실과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했다. 다만 나는 그 모든 기분 좋은 상처들이 나의 영혼을 채워주는 것만 같아서 그저 날뛰게 내버려 두었다. 다만 풍부해지는 것은 질서를 요구한다. 정리되지 않은 것은 언제나 바로 무질서하기 때문에 한계를 지닌다. 레비스트로스가 "어떠한 분류도 무질서보다는 낫다"라고 한 것처럼, 나의 세상은 바로 무질서 했기 때문에 아무리 내용물이 많아져도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어색해졌다.


나의 밀실은 미궁이 되었고,

나는 광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타자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타자욕망은 나중에 더 말하고, 무엇보다 나는 나의 밀실과 광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불구가 되어 버린 나를 위해, 눈이 멀어버린 나를 위해, 걷는 법을 잊어버린 나를 위해, 일종의 메뉴얼(?)을 원했다.


이리의 욕망을 충족해주고

사람의 행복을 보장해주고 싶었다.


무의식에서 들려오는 유혹과

의식의 성숙함이 이끄는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존재론적 자기의 충만과

윤리적 자기의 필요를 모두 충족해주고 싶었다.


여기서 존재론적 자기는 원래 있던 삶이다. 원초적이고 창의적이고 본래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이다. 존재론적 자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에로스로 도래할 것을 환영하고, 자장가와 음유시인으로 과거를 살아있게 하며, 명철한 지성으로 소멸과 흐림에 반항하여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 즉 존재론적 자기는 삶을 순간으로 즐기면서 전체를 관조하는 자다. 그는 대지의 신이요, 지성과 열정이 융합한, 낮과 밤, 태양과 달, 얼음과 불이 서로 하나가 되어 노래가 되는 것이다. 얼어 붙은 불이자, 불타는 얼음이자 늙은 아이이자 어린아이 같은 늙은이다. 그는 심야와 정오이자 에로스로 번역된 로고스이자, 로고스로 번역된 에로스이다. 그는 모든 것이다.

다만 그는 그저 배 만드는 예술가일 뿐이다.

모든 것을 아는 자는 그저 알 뿐이며, 세상 끝을 간 자는 허무주의자가 되며, 모든 것이 된 자는 바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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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리적 자기는 기술적 차원이다. 윤리적 자기는 현실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한다. 입시, 공부, 인간관계 같은 현실의 문제들을 다루는 차원이다.


존재의 욕망과 윤리의 부름 사이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마디즘적 영혼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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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함부로 이렇게 나누고 여기에 빠져드는 것은 위험하다. 다만 길을 너무 잃었다고 생각할 때 이 노트를 참고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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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존재론적 자기가 스스로를 향유하기 위한 매체를 정리한 것이다.

존재론적 자기는 풍만하다. 다만 무질서하다. 그래서 그것은 그릇을 필요로 하는데, 여기서 '그릇'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매체'이다.


'자장가와 음유시인으로 과거를 살아있게 하며'는 과거를 향유한다.

여기서 자장가는 음악이다.

음유시인은 EPIC과 같은 새로운 세계관과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다.


'명철한 지성으로 소멸과 흐림에 반항하며'는 현재를 향유한다. 즉 세상과 면하는 것이다.

명철한 지성은 말 그래도 명철한 지성이다. 이는 유튜브와 podcast 등을 통한 세상의 목소리와 콘텐츠, 아이디어를 접하고, 독서를 통해 이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여하고 관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직접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것이다. 타자를 위한 글쓰기, 타자와 면해있는 그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FLOKI 유튜브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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