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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 독후감

by 서무아

이렇게 세차게 쏟아지는 여름밤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애틋하게 떠오르는 한 얼굴이 있다. 자서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유명한 이미륵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무던이>의 주인공 무던이다.


무던이는 가난한 과부 소작농 수압 댁의 무남독녀 외딸이다. 그 마을 대지주의 아들인 우물이는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 방학이면 언제나 이곳 밤골로 내려온다. 열한 살 동갑내기로 만난 무던이와 우물이는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어 같이 논다. 방학이 끝나 서울로 떠난 우물이에게 무던이는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애틋한 연정을 느끼지만 그것은 한 작은 소녀의 가슴속에 비밀스럽게 묻혀 있는 한 점 불씨일 뿐이다.


무던이의 무던하고 착한 심성과 풋풋한 아름다움에 이웃 동네 부잣집 아들 일봉이는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의 열렬한 구애로 둘은 결혼을 한다. 무던이는 홀로 남게 된 가난한 어머니를 뒤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시댁으로 향한다. 그녀는 품성 좋은 남편의 따뜻한 사랑과 후덕한 시어른들의 넉넉한 보살핌을 듬뿍 받으며 순탄하게 평온한 신혼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더 남편인 일봉을 믿고 사랑하고 따르게 된 무던이는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변한, 우물이에 대한 연정을 별생각 없이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그 한순간 행복하고 따뜻했던 젊은 신랑 일봉의 마음은 심하게 출렁인다. 설상가상, 사랑하는 아내가 잠꼬대로 옛사랑, 우물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젊고 예쁜 아내에 대해 피어오르던 모든 사랑의 마음을 닫아 버리고 부모까지 버려둔 채 집을 나가 버린다.


영문을 모르는 시어른들은 무던이를 싸고돌며 바깥을 떠도는 아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써 보지만 일봉은 멀리서 간혹 인편에 소식을 전해 올 뿐 다시는 무던이를 보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어른들도 점점 무던이를 부담스러워하며 애지중지 귀하게 키워 온 효성스럽고 착했던 아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장대비 쏟아지는 어느 여름밤. 무던이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혼자 몸으로 그 집 대문을 나섰다.


오매불망 사랑하는 무남독녀 외딸을 옆 동네로 시집보내고 외로이 작은 집을 지키는 가난한 과부 수압댁. 얕은 잠에 빠져 있는 그녀의 집 마루 끝, 한 여자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깊은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보따리상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이후로 아무도 무던이를 본 사람이 없었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모든 등장인물들의 소박한 삶 속에 외부의 어떤 고난도 시련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알콩달콩 익어가던 신혼부부의 달콤한 사랑이 어느 한순간 여지없이 깨어져 버렸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순수한 한 젊은 여자의 귀한 생명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상대방의 처지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너그러움은커녕 '나'라는 우상을 절대시하고 섬기느라 바늘 하나 들어갈 여유조차 없어져 버린 좁디좁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 하나 챙기기에 급급한 이기적인 본능은 결국 다른 이의 생명까지 삼켜 버린다.

따뜻한 유채색으로 빛날 수 있었던 삶의 순간들을 차가운 무채색으로 확 덮어버리는 가난한 모습. 일상의 평범한 순간마다 얼마나 쉽게 어리석은 질투와 시기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지. 그리고 어김없이 따라오는 그 뒤의 캄캄한 터널을 얼마나 힘들게 견뎌내야 하는지.


인간 마음의 허약함과 옹졸함,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이 운명처럼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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