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Oct 26. 2021

나는 어떡하라고ᆢ

   멀어져 가는 그대, 주인님.

 "언니, 언니!

 주위에 강아지 분양해 갈 사람 없어요?

 좀 알아 봐 주세요."

 친하게 지내던 자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함안에서 지내던 때의 일이다. 돌보아 주고 있던 유기견 중의 한 마리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큰 농사를 짓고 있는 사촌 동서네가 맡겠다고 해서 연결해 주었다.


 시골 들판 한가운데 덜렁 놓여 있는 컨테이너 앞이나 인가에서 뚝 떨어진 외딴 축산 우리 앞에 혼자 묶여 있는 개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밥은 굶지 않지만 상주하지 않는 주인을 대신해서 하루 종일 혼자서 그곳의 안전을 지키는 보초 노릇을 한다. 한여름 내리쬐는 땡볕이나 쏟아지는 빗줄기 하나 피할 수도 없는 땅에다 아무렇게나 푹푹 박아 놓은 말뚝에 홀로 묶여 있다. 그 외로운 모습은 짠하다 못해 적막해 보인다. 밤이면 주인이 집으로 데려가는 것일까? 지나쳐 온 이후에도 한참 눈에 밟힌다.

 

 시골길에서는 주인 없이 떠도는 개들을 종종 본다. 두세 마리가 모여 있으면 꽤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신고를 받은 119에서 출동하여 잡아가기도 한다.


 들은 바에 의하면 가까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승용차에 태워온 개를 한적한 길 위에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달아나 버린다고 한다. 버려진 개는 내빼는 주인의 자동차 꽁무니를 쫓아 정신없이 마구 짖어대며 달려가다 어느 한순간 지쳐서 멈추고 만다. 떠돌이 개, 유기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해놓고는 너무 괴로워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동차 백미러로 본 자기 개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여 잊히지 않아 괴롭다는 것이다. 우울증까지 들먹이면서 도대체 뭘 말하자는 것인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악어의 거짓 눈물이라도 흉내 내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라도 고백하여 양심의 가책을 덜고 싶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키우기는 귀찮고 버리고 나니 미안하고 그립고 뭐 그렇다는 말이고 또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말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자매는 나보다 대여섯 살 어리다. 오빠 명의로 되어 있는 친정집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 살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개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며 수입을 얻고 있었다.


 그 자매가 아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부동산 투자로 성공하여 큰 부를 이루었는데 점쟁이가 그 사람에게 동물을 많이 거둬주면 계속 좋은 운세가 이어질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논으로 둘러싸인 벌판 한가운데에 주위 집들과는 뚝 떨어져 커다란 신축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이 부동산 투자자의 소유인데 그곳에 한 마리 두 마리 유기견들을 모아 들여 50여 마리의 개가 그 집 전체를 다 쓰고 있다고 했다.

 사람은 살지 않고 개들만 있는 그 큰 집으로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들러서 배설물을 청소하고 밥을 챙겨주며 다친 곳은 없는지 아픈 개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 자매가 하는 일이었다. 그 자매는 애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친 애들, 병이 든 애들 ᆢ.


 거의 일 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매일 두 번씩 손수레를 끌고 다녔다. 나도 몇 차례 그 길에 동행했다. 집이 가까워지면 개들의 짖어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대문 앞에서 그 자매와 작별하고 되돌아온다. 그녀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멀리서부터 개들은 철대문 창살 사이로 마구 몰려들어 서로들 밀쳐대며 얼굴들을 내밀고 짖어대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사람들 간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녀는 개들의 이름불러주고 어르고 달래며 쪽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잽싸게 문을 도로 닫고 문고리를 걸었다. 왁자지껄 개 짖는 소리는 한동안 벌판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길을 가는 도중에도 곳곳에 멈춰 서서는 길냥이들의 밥그릇에 먹이를 챙겨주었다. 손수레 안에는 항상 길냥이들의 사료가 실려 있었다.

 그것도 다 돈이 드는 일일 텐데 ᆢ.


 그녀 뒤에는 커다란 개 두 마리도 따라다녔다. 떠돌아다니는 유기견이 불쌍해 한 마리 거두자 또 한 마리가 따라붙어 두 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 미터 반경 안에서 주위를 맴돌며 따라다니는 그 개들은 기와집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자매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모습이 사라지면 그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나 뒤를 따라다닌다고 했다. 그녀의 집 좁은 마당 한 귀퉁이에 주워다 놓은 개집이 그 개들의 잠자리였다.

 동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개들을 끌어들인다고 싫어하며 대놓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 자매는 꿋꿋이 버텼다.


 어느 날 그녀의 집 앞 골목을 지나가다가 그녀를 만났다. 반색을 하며 나를 자기 집 마당으로 끌어들였다. 개집 앞으로 데려갔다. 채 눈도 뜨지 못하는 것 같은 새끼 강아지들이 고물고물 어미개의 젖 근처에 몰려들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섯 마리나.

 나는 지갑 속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어미개 미역국 값이라고 건네주었다. 그냥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또 이 강아지들을 어디에다 잘 분양시켜야 하는지 근심 걱정하는 자매에게 도움이 되못해 미안했다.


 그녀는 그 많은 개들을 보살피느라 때로는 몸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다친 개를 병원으로 옮기고 회복하기까지 보살피느라 지쳐 있을 때가 많았다. 개들은 새끼를 낳아 늘기도 하고 병으로 한꺼번에 여러 마리씩 죽기도 한다고 했다. 힘들어서 이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매번 말하면서도 내가 떠나올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겨울철 개들의 잠자리로 필요하다기에 쓰지 않을 것 같은 이부자리들을 챙겨 벌판 가운데 있는 그 큰 기와집으로 실어다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두 번째 독립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