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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23. 2021

빛과 그리고 그림자  2/2

   분노의 동굴, 우울의 늪

 구정 설날.

 길고 긴 하루 일과가 끝났다. 이것저것 챙겨 큰애네 네 식구까지 떠나보내고 자리에 누우니 종아리 근육이 터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엄청난 통증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밤새 잠을 설치다가 이튿날 아침 7시경 걸어서 5분 거리를 남편이 운전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간단하게 척추 사진을 찍고 진통제가 들어간 수액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가 얼얼했다. 약을 먹고 통증이 좀 사라진다 싶어 집안일을 좀 보살폈더니 통증이 엄청 더 심해졌다. 쉬는 수밖에 없다. 약은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라고 한다.


 사흘 치 약을 다 먹고 나니 통증은 사라지고 온 몸이 노곤하고 피곤하기만 하다.

 만성 피로증.

 서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근육이 뭉쳐서 쥐가 내린 것이라고 한다. 지난 1월 26일 둘째가 약사고시 국가시험을 치른 후라 천만다행이다.


  남편은 '이때다.' 하고 또다시  나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성당 봉사하는 일 그만두고 친구들 만나러 다니는 것도 자제하라고. 평소에도 나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부분이다. 내가 어렵게 입을 뗀다. 그게 내 삶의 활력소고 내가 숨통을 트는 일인데 권유하고 주선해 주지는 못할 망정 태클 걸지 말아 달라고. 바로 벌컥 화를 내는 남편은 자기 혼자 좋자고 이런 말 하는 줄 아느냐? 당신이 안전하고 당신이 건강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둥 계속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는 일방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나는 신혼초부터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어온 이런 지적질들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부당한 간섭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전혀 없는 인권 침해다. 계속 반복되어 오며 가정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 갈등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낀다.


 도우미 없이 일곱 식구, 70평 집을 꾸려가는 매일의 가사 노동에 비하면 손주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낮시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 외출하는 그 일들은 전혀 육체적 부담을 주는 노동이 아니다. 나에게는 그야말로 오아시스다. 마음 통하는 이웃들과 성경 말씀 나누고 오래된 친구들과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지지하고, 얼마나 좋은데. 왜 그 꼴을 못 봐주는 걸까?

 60을 넘은 아내가 무겁게 장바구니 들고 다니는 일은 당연하고 즐겁게 사람 만나는 일은 금기사항이라니ᆢ.


 점심 챙겨 주러 간 아들 집에서도 남편은 똑같은 말을 다시 꺼낸다. 엄마가 성당 일에만 푹 빠져서 건강이 더 나빠진다고.


 아들이 말한다.


 "그건 아니고요, 아가들 돌보는 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은데요."


 남편은 섭섭해하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다음 날인 목요일 저녁, 밤 10시도 훌쩍 넘은 시간. 하루 일과가 대충 끝나고 책상 앞에서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는데 남편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깔려 있는 이부자리를 밀치고 책상 옆자리 방바닥에 자리를 잡는다. 부엌 옆에 달린 쪼끄만 방인데다 갈 곳 찾지 못한 피아노까지 버티고 있어 공간이 협소하다. 뭔가 오늘 하루 스트레스받은 일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뜸을 들이며 본론이 나오지 않길래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에게 집중하고 있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러저러하니 내가 성당 활동하는 일과 친구 만나러 외출하는 일에 대해 더이상 통제하지 말라. 남편은 또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더 아플 수도 있고 중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고. 순간 나는 앞에 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조금 세게 쳤다. 왜 사람 말을 그렇게 못 알아듣냐? 아프다고 안 가고 일 있다고 안 가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냐? 그리고 갈 만하니까 간 거다. 충고는 할 수 있지만 통제나 간섭은 하지 말라.

 서로 귀는 막고 입만 열어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분노에 가득 찬 남편은 앞으로 나랑 같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선언한다.

 내일 둘째 졸업식에 가기로 한 것과 아침마다 손주들을 유치원에 승용차로 등원시키는 일을 안 하겠단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휙 가 버렸다.


 아빠에게 불려 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둘째가 말했다.


 "엄마, 최선을 다하시겠지만 힘들면 언제든지 저희들에게 말씀하세요."


 이렇게 또 하루 밤이 지나간다.

 남편은 분노의 동굴로 들어가고 나는 우울의 늪으로 가라앉는다.


 이튿날 아침, 남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어제 낮에 친구들과 마신 술기운이 약간 있었고 2월 말로 완전히 끝나는 정년퇴직 문제로 마음이 심란해서 좀 지나쳤던 것 같다. 안 하기로 했던 말 취소하고 아가들 유치원에 태워다 줄 것이며 그 차에 같이 타고 가서 손주들 내려주고 졸업식장 가서 둘째 점심 사 주고 오자.


 오늘, 2018년 2월 23일 금요일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둘째가 결혼 후 다시 약학대학에 도전하여 준비부터 졸업까지 7년의 세월이 흘러 그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다.


 한 달 전, 약사고시를 치렀다.

시험도 치기 전에 대한약사회로부터 근무 요청을 받았다. 4주 실습 기간 동안 좋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약사고시 합격 여부에 상관없이 시험이 끝난 직후부터 바로 출근을 시작했다.

 수석 합격 운운하던 사위는 다른 수석합격자가 발표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부당해. 육아하며 시험 준비한 사람에게는 가산점이 주어져야 해, 아가 한 명당 ㅇㅇ점씩."

 "당신이 수석합격자야."


 돌이켜 보면 긴긴 세월이다.

 참으로 치열한 시간들이었다.

 오늘은 3년 간의 한 지붕 한 솥밥 생활에서 이제 곧 독립해서 분가할 딸네 집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반환하는 날이기도 하다.


 큰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위는 아침 일찍 딸과 같이 졸업식장으로 가서 사진 촬영만 하고 집 일을 처리하러 갔다. 우리는 손주를 등원시키고 대학으로 갔다. 교문 앞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 프리지어 꽃다발도 한 묶음 샀다.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10년씩이나 어린 동기들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약학대학의 벅찬 학업 과제물과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약학 고시까지 치르며 이 마지막 고지까지 있는 힘을 다해 성심껏 달려온 둘째다.

 고맙고 대견했다.

  80명 중 10명이 받는 우등상도 받았다.


 단상 위의 푸석해 보이는 딸의 얼굴을 보니 어젯밤까지도 부모 일로 스트레스를 안겨준 것이 마음 아파서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딸이 환하고 밝은 얼굴로 유쾌하게 동급생 동생들과 어울리고 교수님들과 인사 나누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빨리 마음을 돌려 먹었다.


 식이 끝나고 우리와 만난 둘째는 엄마 아빠 아니었으면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말했다.


 두 번째 학사모를 쓴 딸이랑 남편이랑 셋이서 학교 교정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 촬영을 하고 서울역 앞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했다.


 빛과 그림자의 역동이 너무도 심하게 요동치일상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시간은 뒤로 뒤로 꼬리를 감추며 얼마 남았을지 모르는 길이를 줄여가고 있다.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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