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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24. 2021

두 번째 독립  1/2

   분가

 함께 살고 있는 둘째네의 이삿날이 정해졌다. 3월 12일 월요일. 세입자는 이미 집을 비웠고 보름 간의 수리 뒤에 이사하기로 날을 잡았다.

사위랑 딸 두 부부는 한 달 전부터 이미 집안의 평면도를 뽑아 계속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집을 수리해야 할 범위 결정, 시공 업체 선정, 벽지 선택, 가구 배치도 작성, 새로 구입하거나 교체해야 할 가구들과 가전제품 알아보기 등등. 그러나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느라 진도는 잘 나가지 않는 듯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일이 생기면 자료들을 그냥 그대로 두고 자리를 뜬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굴러 다니는 평면 도면과 메모 노트.


 아이들과 함께 살려면 아무리 어질러져 있어도 정리 정돈하지 말고 물건들을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뭐라도 하나 없어지거나 찾지 못하면 바로 나에게 의심의 눈길이 날아온다.

'할머니가 없애 버렸죠?'

 완벽하게 정리 정돈해 놓고 바로바로 찾아다 대령할 능력이 없으면 치우지 말고 손대지 말고 모르쇠로 버티는 게 상수다. 온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과 장난감과 옷들에게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손주들이 왕성한 창작욕으로 그림 그려 내느라 날마다 적지 않게 폐지로 쏟아져 나오는 A4 용지들. 아낀다는 개념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접거나 잘라내거나 구겨 놓은 색종이들도 함부로 버리면 바로 '나쁜 할머니'가 된다. 내 눈에는 쓰레기지만 손주들에게는 자신들만의 귀한 작품이고 애착이 담긴 놀잇감들이기 때문이다. 진짜 쓰레기다 싶은 것만 눈치껏 버리면서 먼지만 없애는 것이 청소의 관건이다.


 정리 정돈하는 비결과 최대한의 단순한 삶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몇 권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이사를 앞두고 새로 구입한 책도 있다. 그 책들의 한결같은 주제는 '어떻게 잘 버리는가?'이다. 그렇지만 버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 옷도 왕창, 신발도 왕창, 3년 간 끼고 있던 아이들의 책과 장난감도 왕창, 제법 많이 재활용 처리하였건만 짐은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 않다.


 아이들을 돌보는 짬짬이 정성을 쏟는 딸의 이사 준비에 나도 같이 마음을 모은다. 딸네 냉장고를 청소하고 꼭 필요한 음식들과 과일로 냉동실과 냉장실을 채운다. 웬만한 묵은 음식들은 모두 우리 냉장고로 옮긴다.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페트병 20여 개에 쌀을 꼭꼭 눌러 담고 병 두 개에는 찹쌀을 담고 간장 된장 고추장 쌈장 고춧가루 볶은 깨 등등은 깨끗한 빈 유리병에 가득 채워 담는다. 합쳐져 있던 살림들을 분리하여 부엌 한 곳에 모아 둔다. 선물로 받아서 고이 모셔 두었던 예쁜 그릇과 찻잔들도 아낌없이 다 꺼내어 딸네 살림에 끼워 넣는다. 딸은 이제 성장하는 가정을 꾸려 나가느라 시간에 쫓길 것이고 나는 조용하고도 한가한 살림이라 씻고 손질할 시간이 많을 것이다. 손에 익은 정겨운 것들을 깨끗하게 잘 간수하여 아껴가며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누어도 두 집 살림이 다 넘쳐난다.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을 부지런히 분리 수거장으로 날랐다. 덮던 이불들도 다 빨아서 손질하고 부족하다 싶은 것은 집에 있던 것들로 얼추 채워 넣었다.


 학업과 직장과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젊은 부부 사이에 긴장과 피로가 쌓이기 십상이다. 그것이 해소되지 못하고 계속 쌓이면 에너지를 잃고 지친 일상이 되기 쉽다. 함께 사는 동안 주말 중 하루는 반드시 두 부부가 아이들에게서 해방되어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이사를 앞둔 우리 집에서의 마지막 일요일. 둘이 나가서 수리된 집도 둘러보고 미사도 봉헌하고 저녁도 함께 먹고 오라고 하니 이제 이게 마지막 기회라며 무척 기뻐한다.


 우리는 손위 어르신들 중심으로 빠듯한 경제생활을 하느라 부부 사이를 챙기지 못하고 자식들도 별로 챙기지 못한 세대이다. 그러다 보니 아쉬운 회한들이 많다. 아이들이라도   건강하고 탄탄한 부부애를 중심으로 자녀들과의 단란한 가족 사랑을 키워 가며 따뜻하게 살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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