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과 인연 맺은 많은 순간들이 잔잔한 내 기억의 바다에 떠오를 때면 어지럽던 마음도 가난하던 마음도 조용하게 가라앉고 풍성하게 채워진다.
꼬맹이 적, 열아홉 살 차이 나는 큰오빠가 월급날 사다 주셨던 위인전 두 권, 링컨 전과 노벨 전. 자주색 표지의 링컨 전은 내 몫이었고 초록색 표지의 노벨 전은 네 살 위인 작은오빠 몫이었다. 내가 교과서 외에 가져 본 생애 최초의 내 책이었다. 누런 색 갱지로 된 얄팍한 그 두 권의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5학년 때쯤부터 학급 문고라는 이름으로 교실 뒤, 청소함 위에 여남은 권의 귀하디 귀한 동화책들이 놓였다. 70여 명이나 되는 한 학급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어느 날, 망설이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청을 드렸다. 집으로 빌려갈 수 있는지 ᆢ. 흔쾌히 허락을 받아 책을 끼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은 가슴이 설레었다.
친구네 집에 갖춰져 있던 계몽사 빨간 표지의 세계명작 동화 전집 50권.
당시 라면이 처음으로 황홀한 맛을 선보이며 막 생산되기 시작했다. 귀한 음식이었던 라면을 계란 떨어뜨려 같이 끓여 먹으며 많은 날들을 친구네 집 따뜻한 방에 배 깔고 엎드려 뒹굴며 함께 그 책들을 읽었다.
입시로 진학한 중학교, 고등학교의 완전 개가식 도서관과 사방 벽을 따라 원목 책꽂이에 질서 정연하게 가득 차 있던 책들. 넓은 신천지에서 마음껏 책 속을 거닐었다.
놀러 간 친구 집에 좌악 꽂혀 있었던 민음사의 세계 문학 전집.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사회에 나와 첫 월급으로 제일 먼저 그 책을 월부로 구입했다. 쳐다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뿌듯했던 초록색 표지의 그 전집.
대학 도서관의 서늘한 입구에 놓여 있는 도서 목록 분류 카드 박스를 뒤져 부지런히 대여해 읽던 책들.
한 작가에게 꽂히면 딸려 나오는 관련 작품들을 왕창 읽어내며 그 세계 속에 푹 잠겨 일상은 덤으로 살다시피 했다.
동네 버스 정류장 앞에도 조그만 책방이 하나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푼돈으로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자주 들락거렸다. 언제부턴가 사장님이 깨끗하게 후딱 읽고 가져온 책은 돈을 받지 않고 다른 새 책으로 교환해 주시기도 했다. 말이 적고 책 앞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단골 고객인 나를 예쁘게 보아주셨던 듯하다.
그 자그마한 책방의 소박한 책꽂이들 앞에서 전혜린을 만났고 루이저 린저와 이미륵을 만났다. 머릿속과 마음속에 온통 그들을 품고 살았다.
헤세와 니체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박경리 선생님과 조정래 선생님, 한수산, 박범신, 황석영, 박완서 ᆢ.
이분들이 그려내는 문학 세계 속의 인물들은 내 좁은 일상생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뜨겁고 애틋한 이웃들이 되어 내 마음을 온통 차지하며 나와 함께 살아 숨쉬었다.
서른한 살 때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 아주머니 둘과 의기투합하여 셋이서 신나게 뭉쳐 다니며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앙.
내 신앙의 80%는 영성 서적을 통해 이루어졌다.
신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은총을 받고 그것을 나누는 신앙의 품. 세계의 뛰어난 신학자들과 훌륭한 성직자들과 열렬한 평신도들의 앎과 삶을 펼쳐 보여주는 감동적인 책들은 신앙이라는 풍성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길잡이들이었다. 만남과 나눔이 녹아 있는 꿈의 광장이었다.
책과 맺은 그 시간들이 사람들과 맺었던 인연들보다 더 깊고 오래갔기에 나는 좀 더 조용하고 안전한 나만의 세계에 안주할 수 있었던 듯하다.
거의 문학 작품에 치우친 편향된 독서였지만 독서를 통해 문장에 대한 이해의 속도와 정확도가 자연스레 높아지니 문자로 치르는 각종 평가 시험에서 유리한 자리에 설 수 있었다.
10여 년 논술 교실을 하면서는 수입의 1/10은 책 구입에 쓴다는 나름의 규칙으로 책을 편안히 원 없이 구입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야 하니 역사, 과학, 철학 쪽으로도 조금은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의 세계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생활과학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접근이 용이했다. 최재천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60대 중반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자서전 쓰기 강좌를 들으면서 또 하나의 힘이 보태졌다. 바로 글쓰기다.
읽기만 했지 일기 외에는 다른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글을 쓰려고 마음먹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늘 이 글도 자서전 쓰기 모임의 2월 과제이다.
2021년 7월, 인풋 input 이 많으니 아웃풋 output 에도 도전해 보라는 아들의 권유에 힘입고 도움을 얻어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글쓰기는 더욱 힘을 받았다.
오만여 명에 달한다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다양한 글들에서 감동도 얻고 심리적인 지원도 받으며 내 글을 써 나갔다. 글쓰기는 좀 더 단단해지고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갔다.
막연한 불만과 불안, 불편하고 못마땅한 심정으로 내 삶이 어둠 속에서 흔들릴 때 글을 통해 풀어내면 차분히 정리가 되며 나를 조금씩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댓글로 전해지는 작가님들의 공감과 격려도 큰 힘이다. 잘하니까 칭찬한다가 아니라 칭찬하니까 잘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이해되었다. 브런치는 글쓰기에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친구이다.
읽기와 쓰기를 즐기는 것, 이것이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며 내 삶을 안정되게 바로 잡아주는 큰 힘이다.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백여 편의 글들은 나의 소중한 자산이며 서로의 글들을 반갑게 읽고 공감해 주는 글밭 이웃들은 나의 따뜻한 사랑방 손님들이시다.
읽기와 쓰기가 있는 한 무료함도 허전함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감사한 일이다. 뒷바라지해 주신 어머니와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나를 읽기와 쓰기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 많은 인연들에게 감사드린다.
2022년 3월 5일
** 큰오빠의 딸, 나보다 12살 어린 띠 동갑 조카가 카톡으로 답글을 보내왔다.
브런치에서 이 글을 읽은 모양이다.
고모는 책을 참 많이 읽으셨던 기억이 나요.
언제나 부산에 오면 바닥에 90도 각도로 누워 미소를 지으며 책 속에 빠져든 고모를 볼 수 있었어요.
그럴 땐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책이 쥐어져 있기도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지ᆢ.' 이렇게 다짐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