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Jul 28. 2022

사랑하면 바뀐다

  Chagall and the Bible

 십여 년 전, 2년 간 잠깐 적을 두었던 성당의 4인방 교우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그 당시 본당 주임 신부님이셨던 강신부님의 사제 서품 30주년 축하식이 문정2동 성당에서 있다는 소식이었다.


 둘째와 셋째의 통근과 통학 때문에 목동을 떠나 사당으로 옮겨와 있던 때였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낯선 에서 본당의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 순례에 동행했다. 보름 가까운 시간을 30여 명이 함께 보내면서 여러 교우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본당 주임  신부님의 지도 아래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열렸다. 그때 만났던 네 명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1년 가까이 모임을 가지다가 지금 사는 이곳으로 나는 이사를 떠나왔다.

 

 그때 우리들이 고통 겪고 있었던 심리적 갈등의 주된 부분은 거의 모두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어려움이었다. 한창 자라나는 자녀들에 관한 걱정, 생각과 행동 심지어 가치관까지 나와는 많이 다른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대립 등에 대해 힘들고 괴로운 마음들을 털어놓았다. 서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나를 만나는 시간들이었다.


 큰 깨달음이나 변화, 발전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냥 그 시간에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이후 짬짬이 각 가정의 경조사에 함께하며 안부를 나누어 왔다. 이번에는 2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되었다.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대접받았다.


 성당을 나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부터는 본격적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속에서 그동안 나름 성숙했고 안정되어 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자가 처한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며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새로이 직업을 가지기도 하고 전공 공부를 더 하기도 하고 열심히 영성 기도 쪽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나도 대화 속에 녹아들어 귀를 기울이다 보니 덩달아 편안해진 듯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잘 걸어온 60대 여자들의 조용한 변화가 평화로웠다. 주어진 삶을 수용하고 사랑했기에 맺어 온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과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들도 소개받았다.


 사랑하면 바뀐다.

 지난 4월, 친구의 초대로 함께 관람한 샤갈展의 도슨트가 들려준 말이다.

 <Chagall and the Bible, 샤갈 특별전>

 삼성역 마이아트 뮤지엄.


 샤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국내에서 개최된 샤갈 전시회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파랑, 빨강, 주홍, 노랑ᆢ. 샤갈 특유의 강렬하고도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으로 적나라한 감정을 드러내어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


 이번의 특별전은 제목처럼 특별하게 다가왔다. 러시아의 유대인 집단 거주 지역 비테프스크와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던 그는 마흔다섯 살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받은 영적인 경험에 매료되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주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성서의 전개 과정을 충실히 반영한 위대한 미술 작품들을 탄생시킨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그만의 비법인 톡톡 튀는 색채를 버리고 과감히 동판화 작업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출발을 한다. 성서에 대한 열정으로 성서에 담긴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25년에 걸쳐 성서 삽화 동판화 105점 연작을 완성한다. 이러한 샤갈의 대변화와 위대한 업적에 대해 그날의 매력적인 도슨트는 결론을 내렸다.


  사랑하면 바뀐다.


 나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 가야 하나?


 모든 생명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그것을 물들여야 합니다.

 샤갈이 남긴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지켜보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