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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3. 2022

통영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2010년 처음으로 한산섬에 갔다.

 그해 겨울이 끝나가는 초봄 어느 날, 조간신문에 실린 짧은 몇 줄의 문화 광고 기사에 눈길이 멈추었다. 통영 국제음악제 여행상품 홍보기사였다.

 통영 시티투어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가 잠실에서 출발하여 다시 잠실로 데려다주는 편리한 교통편에 솔깃했다. 낮에는 통영 관광을 하고 밤에는 음악제 프로그램을 감상하는 상품 구성도 매력적이었다.

 1박 2일짜리와 2박 3일짜리가 있었다. 마음은 2박 3일에 머물렀지만 아쉬운 대로 1박 2일을 선택했다. 어렵게 남편의 동의를 얻어 함께 통영 국제음악제 여행을 떠났다.


 관광버스에 올라 차가 출발하자 내 나이 또래의 한 남자분이 마이크를 들고 통영 관광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버스 티브이 화면으로 통영에 관한 영상 자료들을 계속 올려 주었다.


 통영 시티투어 길라잡이, 박정욱 사장님.

 개량 한복 차림으로 여행 기간 내내 열과 성을 다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친절한 안내와 알찬 해설을 진행해 주었다. 통영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넘쳐나는 통영 사랑의 열정이 온몸으로 뿜어져 나왔다. 통영은 그분의 고향이기도 했다.


 1박 2일 중 둘째 날, 한산섬 제승당과 세병관을 안내할 때는 거의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격앙되어 통영 사랑, 나라 사랑,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토해 내었다. 마이크를 들고 설명을 때에도 가만히 서 있질 못하고 발끝을 들고는 거의 통통 뛰어오르려는 듯한 열정적인 몸짓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온 힘을 다 쏟았다. 한적하고 깨끗한 한산섬 제승당 앞에서는 그분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과 통영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들도 모두 울컥 치미는 감동과 함께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세병관(洗兵館) 건물도 독특했다. 웅장한 규모였지만 사방이 툭 트인 넓은 면적의 마루만 놓여 있는 건물. 그동안 보아온 여타의 유적들과는 아주 다른 기품과 위엄이 느껴졌다.

 군사들이 각자 지녔던 무기를 깨끗이 씻어 에다 내려놓고 빈 손으로 오르는 곳.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는 절을 일곱 번씩 올리는 향망칠배의 의례를 행하는 곳.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 본부였던 조선 최초 삼도수군 통제영의 이백여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건물.


 임진왜란 다음 해인 1593년에 설립되어 동학혁명 다음 해인 1895년에 해체된 삼도수군 통제영은 일본의 침략이 남긴 어두운 역사의 흔적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돌풍 아래에서 나라와 백성을 지켰고 이완용은 뒤이은 한일합방으로 나라와 백성을 팔아넘겼다.


 삼도수군 통제영을 줄여서 통영이라고 칭하던 말이 예전의 충무라는 이름 대신 이곳의 지명으로 자리 잡았다.


 통영에 도착한 당일 저녁 시간에는 통영시민회관에서 공연하는 통영 국제음악제의 두 프로그램을 감상했다. 저녁 무렵 어스름해지는 바닷가 길을 따라 통영시민회관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레었다.


 피아노 삼중주로 기억되는 첫 프로그램도 감동적이었지만 두 번째 프로그램인 오페라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는 혼을 쏙 빼갔다.


 독사에 물려 죽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 그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가는 남편 오르페우스. '사랑의 신'의 도움을 받아 저승에 있는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것까지는 성공한다.

 아내 에우리디케의 손을 잡고 어두운 미로를 헤쳐 나오며 얼굴을 앞으로만 향한 채 계속 전진하는 오르페우스. 아내를 지상으로 데리고 나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않아야 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을 향해 아내는 계속 남편의 사랑을 시험하고 진정성을 확인하려 든다. 저승길의 어두운 안갯속에서 남편은 거듭 아내를 안심시키는 말을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길을 촉하지만 아내는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는다.

 드디어 급소를 찌른다.


 당신이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고.


 더 이상 참지 못한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생명을 잃고 죽음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절망의 늪에 빠진 오르페우스의 가슴을 찢는 아리아가 터져 나온다.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사랑하는 그대 없이


 무대 바닥이 모두 찰랑이는 얕은 물로 채워져 있푸른 조명과 짙게 피어오르는 안개가 공간 전체를 신비스럽게 휘감는 환상적인 분위기. 관객들도 모두 그 속으로 잠겨 들었다.


 인간의 연약함이 빚어내는 이별의 안타까움과 위대한 사랑의 힘이 만들어내는 만남의 기쁨.

 아직도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을 대할 때면 그때의 그 감동이 되살아난다.


 영화 <한산>이 주었던 벅찬 감동을 잠깐 뒤로 한 채 20여 년 전의 뜨거웠던 통영 음악제 여행 추억 속으로 가만히 걸어 들어가 본다.

 그 속에 그때 내가 처음 보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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