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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6. 2022

<새벽의 약속>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ᆢ 창세기 2장 24절

 "베로니카,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뭔데요?"

 "ㅇㅇ가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캠핑을 가고 없어. 네 식구 모두 다 같이."


 서로의 긴 역사를 잘 알고 있는 형님에게서 온 전화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ㅇㅇ는 형님 아들 이름이다. 형님은 요즘 며느리의 심한 우울증 치료를 위해 물심양면 애를 쓰며 동분서주 병원을 알아보느라 힘들어하고 있었다.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형님에게 어떤 답을 드려야 할까? 치료 의논을 하려 전화를 했는데 한마디 연락도 없이 캠핑을 가고 없는 아들과 며느리. 형님은 엄청 섭섭해하셨.

 형님은 같은 가톨릭 신자다. 이럴 때 신앙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서 참 좋다.


 "형님, ㅇㅇ를 아주 잘 키우셨네요. 성경에도 있잖아요? 너희는 부모를 떠나 서로 한 몸을 이루어라. 잘하고 있네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어?"

 "네에, 창세기에 있어요. 형님 성경 잘 읽으시잖아요? 함 찾아보셔요." 

 "그래?"

 "형님이 사랑으로 잘 키워 놓았으니까 그런 힘이 있는 거예요."


 형님의 쓰린 속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형님이 정말 많이 사랑하는 아들을 칭찬해 주고 그 힘의 원천은 형님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다른 수다가 좀 더 이어졌다.


 "베로니카, 고마워."


 형님은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짠하다. 혼자서 어렵게 자녀 둘을 키우고 어여쁜 손자 둘에게 무한 사랑을 퍼부어 오신 형님이 어떻게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릴지, 얼마나 속을 끓일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대상은 우리 자신뿐이다.


 에릭 바르비에 감독의 영화 <새벽의 약속>이 생각났다. 로맹 가리의 자서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그는 소설 <유럽의 교육>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분노의 숲> <자기 앞의 생>을 썼으며 미국에서 프랑스 총영사 외교관을 지내고 레시옹 도뇌르 훈장과 2회에 걸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연극배우였던 젊은 유대인 여성이 사생아로 낳은 어린 외동아들 한 명만을 데리고 빈 손으로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이주를 온다. 억척스럽게 밑바닥 삶을 살아낸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 다시 프랑스로 옮겨간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희생헌신을 아들에게 퍼붓는다. 진실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거칠고 과도한 어머니의 사랑에 아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도 크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온갖 험한 일을 다 겪으며 자라온 탓에 일찍부터 철이 들고 어머니를 이해한다.

 어머니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떠나고 싶은 본능적인 갈망에 목마르기도 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보답을 계속 다짐한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으로 정진하여 어머니가 원하던 것들을 이루어낸다.


 "너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고 존경받고 칭찬받으며 위대한 유혹자,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어머니는 세뇌하다시피 아들을 다그치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가난하고 억센 어머니의 거침없는 모습은 때에 따라 아들에게 부끄럽고 창피스럽다는 모멸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하고 그녀의 자랑이 되는 일에 헌신하기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모멸감까지도 그 일에 매진하는 동기로 삼는다.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퍼붓는다. 1938년, 스물네 살에 징집되어 힘든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편지로 아들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그에 힘입어 그는 군 복무 중에도 꿋꿋이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군 복무를 끝내었을 때 아들은 어머니의 소원대로 예술적 성취와 군생활에서의 명망을 얻었다. 오직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열망 하나로 어머니를 향해 당당히 금의환향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반겨주실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심한 당뇨를 앓으시던 어머니는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들이 흔들릴까 봐 죽기 전까지 침대에서 250통의 편지를 썼다. 친구에게 부탁하여 사후에도 일주일에 두 통씩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보낸 것이다.


 마흔네 살이 된 현재, 로맹이 홀로 집필하며 머물고 있는 호텔방을 아내가 방문한다. 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그는 죽을 것 같다는 고통을 호소하며 자기를 택시로 다섯 시간 거리에 있는 멕시코시티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아내는 널려 있는 원고들을 챙기며 무슨 글이냐고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유언장.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글이었으며 바로 <새벽의 약속> 원고였다.


 택시 속에서 그는 고통으로 아내에게 기대어 누워 있고 아내는 그 글을 읽는다. 다 읽었을 때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그가 말한다.

 "어머니가 부탁하신 건 전부 다 했어. 다 했는데 부질없어. 작가, 공쿠르 상, 프랑스 대사. 전부 모르고 떠나셨으니까 내가 약속을 지킨 것도 모르시겠지."

 아내가 대답한다.

 "이 책이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야."


 그는 고백한다.

 ㅡ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삶은 일찍부터 영원치 못할 기쁨을 주네.

 그 후로 끝날까지 만족을 모르리라.

 여인이 그댈 껴안아 사랑을 속삭일 때도 갈증은 여전하니 내 목을 끌어안는 사랑스러운 팔, 사랑을 말하는 부드러운 입술, 하지만 더 큰 사랑을 알고 있네.

 오래전 발견한 달콤한 샘물을 마를 때까지 모두 마셔버렸구나.ㅡ


 두통으로 괴로워하는 로맹을 데리고 아내는 병원을 찾는다. 로맹 자신은 뇌종양이라고 하지만 심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귀에 식빵을 쑤셔 넣은 탓에 중이염에 걸려 머리가 아팠던 것이다.


<새벽의 약속>, 인생의 새벽인 어린 시절부터 굳게 굳게 자신과 맺어온 약속. 그것은 어머니를 위해 사는 것, 어머니의 소원대로 대문호가 되는 것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너무나 버거운 숙제였다. 어머니의 희생 헌신에 '빚진 자'가 된 아들이 평생 힘들게 지고 가는 정신적인 짐은 자신의 육체적 생명까지 갉아먹는 고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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