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Dec 05. 2022

지금, 연애 중입니다. 5

  앗, 놓쳤다, 사탕.

 대림 2주일, 제대에 장식된 커다란 대림초 네 개 중 두 개에 불이 밝혀졌다. 짙은 보라, 연보라, 분홍, 흰색으로 구성된 네 개의 초에 차례차례 불이 밝혀진다. 어둠에서 빛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시간, 대림절을 지나고 있다.


 십 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성전의 좌석이 이미 꽤 많이 채워져 있다. 코로나로 텅 비어 있던 상황이 예전으로 많이 회복된 듯하다. 

 미사가 시작되고 조용해진 시간, 뒷자리에서 약하게 기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참느라고 무지 애쓰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지만  밭은 기침은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예민해져 있는 호흡기가 계속 자극을 받는 모양이다. 이럴 때 사탕이 있으면 딱 좋은데ᆢ. 가끔 미사 때 기침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탕 하나 입에 물면 훨씬 낫다. 목이 촉촉해지며 진정되기 때문이다. 가방에 사탕을 준비해 다니려고 생각하는데 정작 잘 챙기지는 못한다. 아쉬울 때가 많다. 오늘 같은 날이 딱 그런 날이다.

 뒷자리 분은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끝까지 미사를 봉헌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많이 안타까웠다.


 대림 시기인 만큼 신부님 강론 말씀 주제는 회개였다.


 교만하고 오만한 생각, 자기만이 피해자이고 다른 사람의 피해는 전혀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기심.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주제 파악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생각들이 우리에게는 산봉우리이고 또 언덕입니. 돈과 물이 있다고 해서 오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권력을 지녔다고 해서 뽐내는 사람들, 자기만이 옳다고 내세우는 사람, 자신의 재능과 재주만을 뽐내면서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람들. 로 이해하거나 타협할 줄 모르고 오로지 나만이 옳다고 내세우는 편협된 가슴속에 산봉우리가 언덕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돈과 힘, 권력 따위를 과시하는 오만함의 산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어서 하느님을 볼 수도 없고 가난한 형제들의 한숨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가진 자들의 이러한 오만 방자함 때문에, 힘 있는 자들의 오만함 때문에 계층 간의 위화감은 더욱 깊어지고 가난한 자들의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 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만과 오만함 그리고 허영심의 산봉우리들은 하느님을 만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이웃들과의 만남도 가로막습니다. 이런 산과 언덕들이 높이 솟아 있는 곳에 사랑의 주님께서 오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례자 요한이 외치는 회개란 다름이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 솟아 있는 이런 산들과 언덕들을 깎아내려서 평탄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에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삶의 반복과 자세를 바꾸는 것,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굽은 길은 곧게, 험한 길은 고르게 해야 한다


 말씀 전례가 끝나고 성찬 전례가 이어졌다. 예물 봉헌과 감사기도 후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영성체 예식 직전 바치는 기도가 있다. 영성체송. 오늘은 바룩서 5,5 말씀이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하느님에게서 너에게 오는 기쁨을 바라보아라.


 전능하신 사랑의 아버지, 하느님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강한 기운으로 나를 향해 화악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존경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 그런 분이 내 곁에 계시며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 가슴 뻐근해지는 위로의 은총이었.


 미사가 끝나고 1층 로비에 있는 우리농 판매소에 들렀다. 열다섯 개들이 유정란 한 팩씩, 두 팩의 값을 기어코 안나 씨가 치른다. 나는 두 집 손주들을 위한 유기농 과자들을 골랐다. 오손도손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형마트에 들러 배달 주문 구매를 했다. 급한 마음에 먼저 서둘러 귀가했다. 곧이어 안나 씨의 전화가 왔다.

 "형님,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어요. 9층에서 꼼짝 안 해요."

 "그래? 나는 조금 전에 잘 타고 올라왔는데ᆢ"


 나는 8층, 안나 씨는 13층에 산다. 내가 올라올 때 택배 청년 한 명이 같이 탔다. 테이크 아웃 음료가 여러 잔 담긴 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는 9층을 눌렀다. 나는 먼저 내렸지만 9층 배달을 하면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다시 내려오려고 뭔가 과하게 동작시킨 아닐까? 나름대로의 추측이 얼핏 지나갔다. 안나 씨는 13층까지 걸어 올라간다 곧 집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손님들을 걱정했다. 참, 배달시킨 마트 물건들도 있다.


 얼마 후 띵동 초인종 소리가 났다. 곧바로 현관문을 여니 묵직한 비닐 봉지내려놓은 아저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등을 돌린다. 바로 저 앞에 커다란 비닐 봉지 두 개가 더 보인다. 안나 씨네 배달 물건이다.

 무거운 세 개 짐을 양손에 나눠 들고 8층까지 계단을 올라오신 것이다. 두 집 다 3Kg짜리 양파도 한 망씩 샀으니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 50대의 퉁퉁한 아저씨였다. 물건을 안으로 들이고 재빨리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아저씨, 그건 제가 올려갈게요."

 아직 숨을 다 고르지 못한 아저씨는 대답도 제대로 못한. 무릎이 좋지 않으신 듯 아저씨는 뒷걸음질로 8층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밑에는 배달해야 될 또 많은 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뭉치 봉지를 양손에 나눠 들었다. 13층까지 5층을 올라갔다. 시원치 않은 왼쪽 발바닥에 약간의 느낌이 왔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지 뭐야? 안나 씨에게 물건을 전했다.

 "형님, 저를 부르시지 그랬어요?"

 

 그나저나 손님들이 오신다는 시간까지는 엘리베이터가 고쳐져야 할 텐데.

 미사보 주머니 안에 사탕 몇 개도 챙겨 넣었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연애 중입니다.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