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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Feb 15. 2023

글의 힘

  세계는 하나

 "아이구, 그런 걸 뭐 할려고 돈 주고 사 니까?" 

 "빈 박스가 수도 없이 나오는데 ᆢ."

 아침 수영을 다녀오는 길, 우편 취급국에 들러 택배 상자를 구입했다. 동네 골목 조그마한 상가의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납작하게 눌러진 5호짜리 우체국 박스 두 개는 크기도 무게도 제법 되었다. 두 팔을 앞으로 깍지 껴서 품에 안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데 경비실을 막 나오던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친근한 말투에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목요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요, 오늘 당장 써야 서요."

 우리 아파트 재활용 분리 수거일은 목요일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주말 이틀 동안 수시로 옷장을 들쑤시며 남편 옷과 내 옷들을 살펴보았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접경에서 일어난 지진 참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터키 항공 한국 지사에서 시작한 지원 활동 안내 카톡글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은 헌 옷 보내는 일이 뭐 그리 크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길고 자세한 안내글을 다 읽고 나니 동참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었다. 누가 썼을까? 참 잘 쓴 글이다.


 ㅡ옷을 모아 정리하여 박스에 담아 보내는 일이 제법 시간과 노동,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현지에서는 모인 성금이 분배되어 물품 발주, 구매, 배분 등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요긴하게 쓰는 데는 이런 물품들을 보내는 것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ㅡ

 추운 날씨라 겨울 의류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어차피 즐겨 입지 않으면서 막상 버리기에는 아까워 망설이고 망설이며 끼고 던 옷들을 하나 둘 과감하게 정리했다. 골라낸 옷들은 일단 안방 한 귀퉁이에 모았다. 부피가 큰 겨울 옷들이라 금세 수북이 쌓였다. 옷체통에 던져 버리기에는 아까웠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니 마음 가볍게 덜어낼 수 있었다. 쉬이 실천하지 못했던 미니멀 라이프를 흉내 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선물 받아 고이 간직했던 기다란 캐시미어 머플러들과 실크 스카프, 혁대, 쓰지 않는 털모자, 개봉도 하지 않은 담요 등도 미련 없이 옷장에서 출시켰다. 안내서에 적힌 대로 제법 시간과 노동,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박스를 조립하고 테이프를 붙여서 차곡차곡 정리해서 담는 일에 한나절이 휙 지나갔다. 5호 박스 두 개가 꽉 찼다.


 베란다 창고 안에서 오랫동안 쉬고 있던 카트를 꺼내 왔다. 박스 두 개를 포개어 실으니 꽤 높고 묵직했다. 오백여 미터 골목길과 대로를 소리도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끌고 갔다. 이럴 때 승용차라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남편이 발병 진단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은 21년 간 애지중지 몰았던 그랜저 승용차를 폐차 처분한 일이다. 어느 날 혼자서 후딱 해 치워 버리고 왔다. 어차피 나는 그 차를 잘 쓸 실력도 없었다.

 다행히 날씨는 포근했고 나 혼자서도 그 정도는 무리 없이 해결할 체력이 되었다.


 박스를 구입할 때 무거운 수하물은 2층까지 좁은 계단으로 갖고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1층 입구에다 카트에 실린 박스 두 개를 그대로 두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요 며칠 똑같은 주소로 가는 이런 종류의 택배 물건이 많이 접수된다고 한다. 오늘도 좁은 사무실 벽 한쪽으로  많이 쌓여 있었다.


 직원이 이동 저울을 가지고 내려왔다. 무게를 달고 운임을 메겼다. 9kg, 11kg, 둘의 운임비 13000원. 박스 2개 구입비 4600원. 도합 17600원. 터어키 항공이 앞장서서 하는 일이니 이렇게 적은 부담으로도 가능하다.

 이미 전표가 부착되어 쌓여 있는 박스들 옆에 내 박스들도 나란히 자리 잡았다. 가뿐해진 카트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내 발걸음도 가뿐했다.


 지난 9일에는 가족 카톡방에 올라온 카카오 같이 가치 앱을 통해 소액을 기부했다. 댓글달기 1000원 적립 행사에도 버벅거리며 참여했다. 주일 미사에서는 튀르키예 구호를 위한 2차 봉헌금 바구니가 놓였다. 신속 정확한 통신 수단들이 큰 힘을 발휘한다.


 이틀이 지난 수요일인 오늘쯤에는 그 옷들이 비행기에 실렸을까? 늦어도 이번 주 안으로는 그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물건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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