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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Feb 25. 2023

탄생

순교자의 피, 그리스도의 씨앗.

 2000년 4월 경 어느 봄날, 목5동 본당. 성당 시판에 붙어 있는 안내문 한 장에 마음이 끌렸다.

ㅡ한국가톨릭 문화원, 문화 영성 피정, 박유진 바오로 신부.

 말씀 강론 피정이 아니라 영상과 음향으로 진행하는 영성 수련과 기도 피정이라고 했다. 처음 대하는 새로운 명칭에 막연한 호기심이 일었다.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는 낯선 곳이라 혼자 참석했다.


 봄날답지 않게 흐리고 추운 날씨, 난방이 끊긴 실내는 꽤 기온이 낮아 몸들을 옹송거렸다. 하나, 둘 교우들이 성당 의자를 채웠다. 시간이 되자 젊은 신부님이 연단에 올랐다. 이어서 마이크를 통해 울려 나오던 신부님의 첫 인사 말씀. 23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내 마음에 크고 진한 감동으로 인상 깊게 와닿았던 듯하다.


"인천에서 이곳 목동까지 안개 자욱한 도로를 운전해 오면서 슈바빙을 떠올렸습니다."


 '슈바빙'이라는 한마디 말에 내 마음속 작은 불씨 하나가 반짝 빛을 밝혔다.

 그 당시 내 나이는 40대 중반. 시간은 갑자기 30년 저 너머 아득한 여고 시절로 훌쩍 건너뛰었다. 막연한 동경과 설익은 이성을 자극하고 두드렸던 전혜린의 수필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사모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ㅡ내 일생을 인식에 바치고 싶었다.

 사춘기 여고생들의 우상이 되어 설레는 마음들을 사로잡았던 전혜린. 그가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곳이 안개 자욱한 예술과 젊음의 도시 슈바빙이었다. 청춘의 축제이며 희생도 적지 않게 바쳐지는, 그러나 젊은 목숨이 황금빛 술처럼 잔에 넘쳐흐르고 있는 꿈의 마을이라고 노래했다. 얼마나 매력적인 문장들이었던가?

 그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 전혜린과 거의 동일시되어 다가왔던 그 책의 여주인공 니나의 매혹적인 향기와 함께 아득한 세월 저 너머에 묻혀 있었던 이국적인 지명, 슈바빙이었다.

 이름을 이런 시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더구나 여류 문인도 아닌 40대 후반의 남자 가톨릭 사제를 통해 게 되니 너무나 의외였다. 한나절 진행된 문화 영성 피정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피정이 끝나고 한국가톨릭문화원의 후원회원으로 등록했다. 20여 년이 지난 요즘도 매일 아침 카톡으로 화답송 묵상&기도를 선물 받고 있다.


 이렇게 긴 시간 인연을 맺어온 한국가톨릭문화원에서 이번에 큰 업적을 남겼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신부님의 전기 영화를 제작하였다. 민영화사와 공동 제작이다. 감독은 박흥식. 개신교 신자이다. 제목은 <탄생>.

 2022년 11월 16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첫 공식 시사회를 가진 후 11월 30일부터 국내 상영에 들어갔다. 우리 본당에서는 2회에 걸쳐 단체 관람 전석을 구입하여 교우들에게 반값으로 제공하였다. 성서백주간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였다.


 1839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 모방 신부는 조선 최초의 신학생인 최방제(?~1837), 최양업(1821~1861), 김대건(1821~1846)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 파리 외방 전교회로 유학을 보냈다.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최방제는 그 해 11월 위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라 안팎으로 외세의 침략이 계속되고 아편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기인 1845년 8월 17일 김대건은 상해에서 조선 최초 신부 서품을 받고 조선 근대의 문을 열어줄 위대한 모험을 펼친다. 상해에서 출발하여 충남 강경으로 입국하기까지 당국의 심한 박해를 피해 가며 라파엘호 서해 횡단 난파 위기 등을 겪는다. 거센 풍랑을 만나 의식을 잃고 떠내려간 곳, 제주도에 현재 용수성지 기념성당이 세워져 있다.

 영어, 스페인어, 라틴어, 중국어, 프랑스어 5개 국어 구사가 가능한 엘리트로서 신부는 물론 통역가로도 활동한다. 몇몇 대신들의 부탁으로 옥중에서 세계지리에 관한 책을 제작하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였다.


  가톨릭 사제가 된 그는 19세기 조선 근대화 역사에 있어서 신분과 계급의 폐쇄적인 나라에 평등과 존엄을 전파하여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평등과 진리를 꿈꾸는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기를 소망하였다.

 체포되어 처형당하기까지의 3개월 동안 조정에서의 강력한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거절하여 6차례에 걸쳐 심한 고문을 받았다.

 최종 죄명은 '천주죄인'으로 목을 베어 달아 놓는 효수형을 선고받아 1846년 9월 16일, 25세의 젊은 나이로 새남터 처형장에서 순교하였다.

 사제 서품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ㅡ 내가 외국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종교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ㅡ

 신부님의 유언이다.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교황 성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우리나라 다른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되었다. 

 2021년에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도 선정되었다. 마더 테레사 이후 가톨릭인으로서는 두 번째 인물이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역작인 바르셀로나의 명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채광창 스테인드글라스에도 A.KIM,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새겨져 있다.  

 2019년 가을 그곳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귀한 흔적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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