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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07. 2023

벚꽃 나들이

  현충원

 4월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니 아직 4월이 오기도 전에 그 일은 시작되었다.

 높아진 수은주의 부추김을 받아 굵은 둥치의 오래된 벚나무들이 퐁퐁 새 꽃망울들을 터뜨렸다. 뜨거운 열을 받아 톡톡 터져 나오는 고소한 팝콘처럼.

 눈길 가는 곳마다 끝없이 펼쳐지는 연분홍 구름꽃들이 뭉실뭉실 무리 지어 피어올랐다.


 7394 대학동기 카톡방에는 곳곳의 벚꽃들이 선을 보였다. 전국적으로 일제히 궐기하는 벚꽃들의 경고가 좀은 겁나기도 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나는 현충원의 축축 늘어지는 수양벚꽃,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며 흐드러진 꽃송이를 자랑하는 수양벚꽃 사진을 올렸다.


 갑작스레 터진 전쟁, 제대로 된 훈련미처 받지 못한 채 황망하게 투입된 전선, 낯선 골짜기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총알받이 젊음들. 꽃 같은 영혼들의 슬픈 한이  속에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축축 늘어져 내리는 수양벚꽃의 흐드러진 꽃송이들이 온몸으로 그들의 처연아픔을 대신 말해주것 같다.

 무서웠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고ᆢ.


 4월 1일, 4월의 첫날이자 첫 토요일.

 성서백주간 가족들은 현충원으로 간단한 나들이를 다. 번잡한 시간을 피해 오후 네시를 택했다. 그 시간까지도 꽤나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붐볐다. 평소 고즈넉한 묘지가 시민들의 봄꽃 나들이 공원으로도 활용되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사자 명단만 있을 뿐 시신은 찾지 못한 영혼들의 위패를 모신 추모당. 입구에 놓인 커다란 비석에 새겨져 있는 추모글은 읽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ㅡ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ㅡ

 박정희 대통령의 단아한 글씨체다.


 만개한 벚꽃길마다 인파가 넘쳐난다. 사진을 찍고 탄성을 치른다. 삼발이를 갖춘 사진기들도 한몫한다. 우리도 꽤 많은 사진을 남겼다. 독사진, 끼리끼리 사진, 단체 사진, 풍경 사진. 핸드폰  단톡방이 사람꽃과 자연꽃으로 그득해졌다.


 정문에서 출발하여 구석구석 둘러보며 지장호국사를 거쳐 숭실대 쪽 후문으로 빠졌다. 후문을 통과한 후 왼쪽으로 꺾었다. 서달산 둘레길을 걸어 이수역 남성사계시장으로 향했다. 초록과 분홍과 노랑, 봄마중 나온 색깔들이 계속 함께하는 길이었다. 저녁나절의 재래시장은 왁자지껄 살아 움직였다. 쌓여 있는 과일, 채소, 생선, 꽃모종,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사람들.


 시장 초입, 대로변 가까운 곳에서 찾아낸 먹자골목의 동태탕집. 오래전에 들렀던 기억을 더듬어 제대로 찾아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집밥 분위기 물씬 풍기는 9000원짜리 동태탕.


 다음 행선지는 성당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다. 마을버스로 움직였다. 시간이 여의치 못하여 함께하지 못했던 두 명도 그곳에서 합류했다. 일곱 명의 완전체가 되었다. 보고 걷고 먹은 후 또 마시는 곳이니 편안하고 넉넉한 웃음과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모두 낮에 보았던 봄꽃들처럼 환했다.


 일곱 명 팀원들이 무지개 일곱 색깔 중 각자의 색을 골랐다. 가장 연장자이신 형제님이 빨강, 보라돌이가 되고 싶다는 형제님이 보라, 그 배우자 자매님이 초록, 노랑 조끼로 오늘 사진의 주인공이 된 자매님이 노랑, 분홍색을 좋아한다는 자매님은 주홍, 막내가 남색, 나는 파랑을 골랐다.


 빨주노초파남보, 우리 성서가족 일곱 명 각자의 고유한 색이 되었다. 3년 간의 성서 통독을 통해 일곱 빛깔 고운 무지개를 띄워 올릴 것이다.


 살랑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걸어오는 봄밤의 정취.

 2023년 4월, 첫날이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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