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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09. 2023

버거운 감성

 Sensitivity

 위로와 기쁨과 고통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이 고통이야말로 주님의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영혼의 아픔 없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ㅡ 최인호 유고집 <눈물>.


 눈물샘은 언제 어디서 가장 약할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깊은 눈웃음 앞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과 그림, 조형물, 시, 소설, 영화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든 마음 앞에서 

떠나간 사람들이 남긴 조그마한 흔적 앞에서 

절제하려 애쓰는 타인의 뜨거운 눈물 앞에서

내가 겪는 아픔 앞에서

 ㆍ

 조금씩 약해지는 눈물샘은 인내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눈시울을 적시며 희미한 정체를 드러내다 기어코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샘이 되고 만다.


 올해의 부활 典禮는 前例없이 진하게 다가왔다.

 마음먹고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성서통독 과정 때문일까? 코로나로 3년 동안이나 위축되었던 교회 행사가 다시 예전의 장엄함을 회복하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처해있는 이 상황이 하느님의 은총이 절실한 자리인 때문일까?


 토요일 저녁 8시부터 봉헌된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는 장엄했다. 모든 교우들이 뒤돌아서서 바라보고 있는 캄캄한 성당 입구에 조그마한 빛 하나가 나타났다.

 빛의 예식.

 하나씩 들고 있는 파스카 유리컵 초들에 차례차례 불꽃이 옮겨 붙었다. 성당 안은 빛으로 가득 찼다.


 하얀 전례복을 입은 스무여 명의 초등학생 복사단들과 황금빛 제의를 차려입은 신부님의 행렬이 중앙통로를 지나갔다. 신부님이 조심조심 흔들며 들어오시는 향로에서는 연기와 향이 피어올랐다. 축성예식이다.


 제대초에도 불이 밝혀졌다. 미사 대부분이 노래로 이어지는 창미사 속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어 빠져 들었다. 두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ᆢ.


 다음날인 주일 낮 11시, 주님부활대축일 낮미사. 오늘도 창미사이다. 30명 남짓한 성가대의 활약이 뛰어났다. 아멘을 노래하는 빠르고도 활기찬 합창 속에서 소프라노 솔로 한 명의 특출한 찬양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아멘.

 라틴어 가사로 부르는 성가에 담긴 간절한 마음을 어찌 저리 높은 음과 매끄러운 발성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낼까? 마스크를 쓰고서도 어떻게 저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아름다운 봉헌이었다. 함께하는 다른 단원들의 화음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빛 속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전례 내내 선포하시는 복음 말씀과 성가대의 찬송에 마음이 꽂히더니 마침내 뜨거운 눈물로 이어졌다. 멈추기가 어렵다. 손수건에 내 마음을 맡겨 버렸다. 눈물 속에 미사가 끝났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데레사 형님이 가만히 내 뒤로 다가와 1층에서 차 한 잔 하자고 말을 건넸다. 뒷줄에 서 계시더니 내 낌새를 눈치채셨나 보다. 나는 손수건을 눈에 댄 채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마냥 눈물을 흘릴 수도, 방긋 미소를 지을 수도 없다.

 형님이 다정하게 속삭이셨다.

 "그래, 힘들지? 밖에서 꼭 한번 만나자.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겨우 눈을 맞추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형님의 다정한 눈이 바로 앞에서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베로니카, 좀 앉았다 와. 산다는 게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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