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하고도 고운 사연들

인내와 사랑

by 서무아

다재다능하신 분, 많이 읽고 많이 쓰시는 분, 한없이 선량하고 따뜻하신 분. 안신영 작가님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말들이다.

브런치 이웃이 되어 글로써 서로의 삶을 나누고 댓글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발행을 쉬고 있는 동갑내기 브런치 작가 B님을 포함하여 다섯 명 작가님들이 서래마을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했다.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한결같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짙어졌다. 한 번 인연 맺게 되면 누구에게도 그 변치 않는 성실과 신뢰로 모락모락 쉼 없이 마음방의 온기를 피워 올린다.


작년 내내 꼭 한 번 만나자고 벼르다 약속한 날이 지난 12월 4일, 이사한 이튿날이었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직장 근무를 하시니까 나보다 훨씬 시간 내기가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휴무라기에 오후 4시로 약속 시간을 잡았다. 만나고 보니 그것도 잘한 일이다. 그 전날까지 전자책을 발행하느라 거의 밤을 새워 가며 엄청 바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브런치 작가님의 댁까지 찾아가 도움을 받아가며 전자책 발행을 성공했다고 한다. 열정이 귀하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전자책 구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어수선하게 이삿짐이 널려 있는 거실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동네 식당으로 가는 길. 어둑해지는 겨울 저녁 시간. 싸락싸락 하얀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은 점점 굵어져 식당에 들어설 때엔 서로 모자와 외투 위의 소복한 눈을 털어 주었다. 따끈한 두부 요리를 앞에 두고 그동안의 일상을 나누었다. 선하기만 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순하게 녹아내린다. 안타까운 때도 많다.


식당 문을 밀고 나오니 이게 웬일인가? 펑펑 쏟아지는 눈으로 온 길이 하얗게 뒤덮여 있다. 꽤 쌓인 눈 밑으로 발자국이 폭폭 새겨졌다. 연년생인 우리는 자매처럼 다정하게 눈 속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이튿날, 집에 들른 아들의 도움을 받아 전자책을 구입했다. 노안을 배려해서 전체를 복사해서 종이 책으로 뽑아 주었다.

30페이지에 11개의 수필이 실려 있다. 책 제목이 독창적이다. <엄지발가락의 자유>. 제일 첫 작품으로 실려 있는 1994년 문화일보 신춘 사계 봄 수필 당선작의 제목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관계의 상대방에게 전혀 방어기제를 쓰지 않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의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고운 심성과 굳은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괜히 당선작에 선정되었겠는가? 겉으로 표현된 고운 문장들의 행간에 담겨 있는 힘듦을 누구나 읽어낼 수 있으니 표현력이 뛰어나다.


서문부터 마음에 와닿았다.

"사각의 링 위에 올라선 것처럼 버티고 견뎌야만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쉬이 눈길을 옮길 수 없는 문장이었다.


11편의 글에 담겨 있는 숨결은 인내와 사랑이다. 그 큰 두 내적 에너지로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 속에서도 늘 맑고 알찬 일상의 열매를 맺고 있다.


바쁜 중에도 늘 손을 움직여 수많은 선물꾸러미들을 만들어 낸다. 남을 기쁘게 해 주는 금손이다. 공예과를 나오셨다는 것에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우리집 서랍에 꽤 많이 쌓여 있는 작가님의 선물, 크고 작은 각종 파우치들과 머플러, 예쁜 보석 팔찌와 레이스 달린 손수건들.

이번에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 온 독특한 선물은 A4 용지 프린트물이 들어가는 큼직한 수제 퀼트 손가방이다. 가볍고 포근한 감촉이 정겹다. 뛰어난 색상과 디자인으로 올겨울 내가 가장 즐겨 들고 다니며 자랑하는 손가방이 되었다.


어디서 뭘 하시더라도 잘 해낼 거라고 굳게 믿는다.

오래도록 옆에서 서로 함께 잘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