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부부 여섯 명의 카톡방에서 한 형제님이 남편의 안부를 물어 왔다. 남편은 컨디션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답글을 올렸다.
정말 정말 힘든 수술 후 정말 정말 힘든 회복기를 어렵게 어렵게 지나가고 있다.
부부 사이 환자인 어느 한쪽의 굳센 의지와 다른 한쪽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로 힘든 회복의 과정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는 순애보 투병기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 둘도 주어진 이 과정을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수술 후 딱 한 달째였던 8월 12일, 목요일 밤은 최악이었다. 우울과 불평과 좌절의 스트레스로 촤악 가라앉은 분위기. 우리 둘 모두 완전 역부족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퇴근 후 하룻밤 자고 가려고 들른 아들. 예상치 못했던 이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침대 위에 기진맥진 눈을 감고 있는 아빠를 한참 동안 말없이 지켜보고 서 있더니 따뜻하게 이것저것 챙겨 드리며 격려하기도 하고 우울하게 토해내는 온갖 말들을 다 들어주고 말을 아껴가며 꼭 필요한 말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나에게도 부탁과 응원의 말을 잊지 않았다.
늦은 밤, 자기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집으로 가야겠다고 나섰던 발걸음을 아파트 마당에서 다시 돌려 하룻밤 자고 출근했다.
환자인 아빠를 감싸 안고 보호자인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아이들이 최선을 다한다.
그 고마운 마음들을 배려해 주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잘 살아내는 것이 우리 둘의 의무다.
14일이었던 어제저녁은 처음으로 응급실엘 갔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싱크대 물소리에 섞여 남편의 말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도 좋지 않고 힘도 없다 보니 무슨 내용인지 가까이 가서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렵다. 고무장갑을 낀 채 방으로 향했다.
측정해 본 열이 38.4도, 조금 전에는 39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요 며칠 한여름 무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 제법 시원한 소슬바람이 스며들자 오들오들 춥다고 소매 긴 옷을 걸치고 하던 중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시커먼 불안의 구름이 덮쳐왔다. 남편은 일단 침대에 좀 눕겠다고 했다.
때 마침 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사연을 듣더니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며느리는 바로 입원했던 병동으로 연락을 해보는 모양이었다. 둘 다 무조건, 지금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귀찮아하며 거절하는 아빠에게 폐렴과 수술 상처 부위의 염증 발생 위험이 크다고 설득을 한다.
하던 설거지도 그대로 내팽개쳐 둔 채 입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간단한 짐을 챙겼다. 일단 좀 기다리며 지켜보겠다고 내켜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집을 나섰다.
택시로 병원에 도착하니 9시를 조금 넘었다. 응급실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차례가 되자 코로나 검사와 흉부 엑스레이 촬영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앞에 있는 선별 진료소에서 두 가지 검사를 하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침상을 배정받고 수액 공급부터 시작하여 소변검사, 피검사, 심전도 검사 등이 실시되었다. 열은 37.4도로 측정되었다. 내가 할 일은 침상 옆 작은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앞으로 어떤 일이 진행될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토요일 밤, 응급실 안으로는 계속 환자들이 들어오고 의료진들의 발걸음은 바빴다. 간혹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Code blue, code blue." 방송은 긴박감을 더 높여 주었다. 병원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외운 바로는 심장 정지 암호이다.
1시가 조금 넘자 응급실 내 전광판에 떠 있는 남편 이름 옆에 각종 검사 완료라는 알림과 함께 '귀가'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한참을 기다려 모든 것이 정상에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정말 다행이다. 수납을 하고 나니 3시 10분에 나오는 약을 받아서 귀가하라고 한다. 항생제와 위장약 두 가지 처방전이 나왔다.
병원 앱을 통해 각종 검사 결과를 지켜본 아들은 혈액 검사에서 요로 감염의 증상이 아주 조금 발견된 것 같다며 수분 섭취에 소홀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집에 돌아오니 4시. 병원에 바로 대기 중이었던 택시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늦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피곤하기만 할 뿐 쉬이 잠이 오지는 않았다.
일요일 아침, 조금은 더 차분해지고 평온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11시 미사 봉헌을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코로나 이후 채 4분의 1도 못 되는 인원만 참석할 수 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서 발열 체크와 QR 코드 입력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났다.
"검열 나왔으니까 조금씩 더 떨어져 서세요."
곧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분이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나눈다. 최근 서초구 종교 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고 하더니 검열이 강화된 모양이다.
별생각 없이 미사에 참석했는데 오늘이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광복절이기도 하다. 마스크로 입을 감싼 성가대원들의 입당 성가를 들으며 뭉클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들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선물로 받았다.
202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