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인상 깊은 눈(雪)을 만났다.
2009년 문창용 감독은 동양 의학 기행, 불교 의학 편을 찍기 위해 인도 최북단, 해발 3520m 히말리아 가파른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전설의 불교 왕국, 라다크의 삭티라는 작은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 용한 의사 스님 우르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63세의 우르갼을 촬영하는 내내 스승을 따라 전통 의사가 될 다섯 살짜리 제자 앙뚜가 함께했다.
앙뚜의 귀엽고 해맑은 미소와 앙뚜를 향한 우르갼의 밝고 빛나는 눈빛을 보며 감독은 둘의 관계에 강한 호기심을 느껴 8년 간 두 세 달 씩 10차례에 걸쳐 라다크를 오가며 이 다큐 영화를 찍었다.
2010년 여섯 살인 앙뚜가 전생에 티베트 캄의 고승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면서 앙뚜는 린포체로 공식 인정을 받는다. 린포체란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이다. '살아있는 부처'로 불린다.
그때부터 우르갼 스승은 환자 돌보는 일을 접고 린포체를 가르치고 보살피는 데 온 힘을 쏟기 시작한다. 앙뚜는 사원에서는 의젓한 린포체로, 학교에서는 눈싸움과 축구를 좋아하는 개구쟁이로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나 앙뚜가 열 살이 된 2014년, 하나의 사원에 한 명의 린포체만 상주할 수 있다는 원칙 때문에 앙뚜는 사원에서 쫓겨났다.
린포체인 앙뚜는 전생의 사원인 티베트 캄으로 가야 하는데 티베트는 중국과의 오랜 분쟁 때문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가 없었다.
티베트로 갈 수 없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앙뚜를 가짜 린포체라고 놀린다.
앙뚜는 사춘기와 겹쳐져 깊은 방황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스승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고지식할 만큼 책임감이 강한 우르갼은 최선을 다해 린포체를 모시면 부처님 곁으로 홀가분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의 헌신적인 사랑 속에서 앙뚜는 훌륭한 린포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게 된다.
우르갼 스승은 앙뚜가 린포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원을 백방으로 알아본 후 앙뚜가 전생에 살았던 티베트 캄으로 3천 km를 이동한다. 쏟아지는 폭우와 몰아치는 광풍, 눈으로 뒤덮인 혹한 속을 거의 대부분 아무 탈것의 도움도 없이 도보로 움직인다.
순례자의 도시 바리나시를 지나 갠지스 강을 건너 티베트 국경까지 향하는 험난하고 고된 여정이었다. 지친 소년을 격려하고 의식주를 챙겨 주며 변함없이 앞에서 끌고 가는 스승.
다큐를 찍는 8년 간 어느덧 열두 살이 된 앙뚜는 성장했고 오직 앙뚜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 온 스승 우르갼은 일흔이 되었다. 앙뚜는 이제 늙고 병든 스승을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갈 때 어느 한순간 앙뚜가 스승의 손을 잡아 올려주고 있었다. 둘은 서로 함께 있어서 고마운 존재가 된 것이다.
눈보라 치는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고 눈 덮인 산을 넘고 또 넘어 도착한 티베트의 시킴.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을 맞았다. 앙뚜는 티베트의 시킴이란 지역의 한 사원에 남고 우르갼은 다시 라다크의 삭티로 되돌아갈 것이다.
"조금만 더 있다 가시면 안 돼요?"
스승의 품을 파고들며 흐느끼는 소년.
"용기를 내세요."
눈물에 젖은 소년을 품에 안고 막막한 시선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며 슬픔을 삭히는 주름진 얼굴.
늙고 지친 몸으로 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3천 km의 멀고도 험난한 길.
"스승님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정말요?"
"정말요."
"당신을 돕는 게 제 삶이죠."
"저는 믿어요. 훗날 꼭 훌륭한 분이 되실 거라고."
"약속해요. 언젠가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스승님, 다음 생에도 나를 찾아 주세요."
둘은 흐르는 눈물 속에서 슬픈 작별을 했다. 감독도 쏟아지는 울음을 참으며 그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ㅡ 일 년에 단 4개월만 따스한, 영하 20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두 사람은 셀 수 없이 자주 눈싸움을 했다. 그런데 앙뚜가 모르는 게 있다. 라다크의 눈은 잘 안 뭉쳐진다. 앙뚜는 대충 집어서 던지는데 우르갼은 맨손으로 꽁꽁 뭉쳐서 앙뚜 곁으로 부서지지 않게 살짝 던져 놓는다. 그러면 앙뚜는 스승이 자신을 못 맞힌 걸로 착각하고 그걸 주워서 다시 던진다. 나중에 촬영분을 보다가 이걸 발견하고 한참 울었다. 저 또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께 작지만 큰 사랑을 받았을 텐데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ㅡ
문창용 감독의 말이다.
앙뚜의 키에 맞게 허리를 숙여 가며 몸을 낮추어 자신이 만들어 던져 준 눈덩이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아 준다. 그러면서 시종 즐겁고도 행복한 웃음을 주름 가득한 얼굴에 함빡 꽃 피우는 우르갼.
다시 손을 맞잡고 소박한 보금자리로 돌아와 추운 바깥 마당에서 맨손으로 앙뚜의 더러워진 옷과 신발을 정성껏 빨아 말린다. 따뜻한 음식을 마련해서 먹이고 잠자리를 지켜 준다. 책가방을 챙겨 주며 학교로 향하는 앙뚜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어떤 날은 미처 챙기지 못해 빠뜨린 준비물을 챙겨서 가슴에 안고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가 전해 준다. 그것이 제대로 챙겨다 준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서야 긴장을 풀고 안심하는 스승 우르갼.
그 모든 행위가 오직 겸손과 헌신, 섬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큐를 찍는 감독조차 찍는 그 순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섬세한 배려. 어떻게 한 인간이 한 인간을 향해 저리 순수한 섬김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 바로 저 스승 우르갼이 제자 앙뚜에게 하고 있는 행동들이 아닐까?
무거운 동생을 업고 가파른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한 소녀를 보고 지었다는 노랫말을 읽었다.
"얘야, 힘들지 않니?"
내 안타까운 물음에
"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바로 내 동생인 걸요. 내 동생~!"
무거운 짐이 아니라 바로 내 형제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바로 내 형제, 내 형제~!
누가 뭐래도 가던 길을 멈추지 마라. 사랑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모든 이가 네 형제임을 잊지 말아라. 하느님을 찾았으나 뵈올 길 없고 영혼을 찾았으나 만날 길 없어 형제를 찾았더니 셋 다 만났네.
생각만으로도, 깨달음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선물.
어설픈 첫눈이 잠깐 선을 보인 늦가을. 내리는 눈을 보며 사랑할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감사드린다.
우르갼과 앙뚜가 주고받던 그 밝고 빛나던 눈빛들을 기억하리라, 오래오래.
2017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