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Aug 21. 2021

 "더 이상 무엇을 바라시는 거예요?"

그대,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요? 앞에 있는 나를 그녀가 기다립니다.

 공리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애잔한 연기를 선보였던 영화.

<5일의 마중>.

 나는 그 영화 중의 한 대사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 엄마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시는 거예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촌철살인의 명대사로 기억하고 있다.


 중국 문화 대혁명의 시기. 대학 교수 루옌스는 반혁명 분자로 낙인 찍혀 수감 생활을 하다 7년 만에 탈옥을 감행한다. 이유는 그리운 아내를 만나 보기 위해서다.

 혁명당원은 아내 펑안위를 찾아와 남편 루옌스가 찾아오면 바로 신고하여 조국에 충성하라고 경고한다. 무용학교에 다니는 딸 단단에게도 같은 압박이 들어온다.

 어릴 때 헤어진 아버지보다 자신의 앞날의 성공이 더 중요한 단단은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대답한다.


 비 내리는 밤, 어둠을 틈타 남몰래 집을 찾아온 남편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지만 두려움에 얼어 붙은 아내는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눈물 젖은 눈으로 문을 응시하고만 있다. 남편은 할 수 없이 '내일 아침 8시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 넣고 돌아선다.

 딸은 이 정보를 혁명대에 신고한다.

 단단은 자신의 실력으로 어렵게 따낸 학교 발레단 주인공 역을 다른 학생에게 빼앗겼다. 이유는 아버지가 반혁명 분자라는 이다. 단단은 아버지를 원망한다. 엄마에게 절대 아빠를 만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아빠라고도 칭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명령한다.


 남편이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아내 펑안위는 갈등 끝에 남편을 만나는 쪽을 선택한다.

 이튿날 아침, 남편에게 건네 줄 옷과 음식을 마련해 들고 역으로 나갔다. 남의 눈을 피해 다리 밑에 숨어 있는 루옌스. 복잡한 인파 속에서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들고 애타게 남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펑위안.

 둘은 겨우겨우 멀리서 서로를 알아본다. 밀려오는 사람들을 헤치며 애타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지만 이내 뒤를 쫓던 혁명대에게 발각된다. 아내 펑위안은 체포되어 끌려가는 남편 루옌스의 처절한 뒷모습만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서 다.

 얼굴 가득 흘러넘치는 눈물과 함께.


 문화 대혁명이 끝나고 가까스로 풀려난 루옌스는 5일에 집으로 간다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은 아내는 달력의 5일 숫자 위에 동그라미 표시를 그려 둔다. 그리고 5일이 되자 역으로 그리운 남편을 마중 나간다.


 남편 루옌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남편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긴 세월 정부의 박해와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려 온 아내는 심인성 정신병을 앓고 있다.

 남편을 전혀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감시하고 폭행해 온 '펑 아저씨'로 오인하고 강하게 밀쳐내며 가까이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다.

 딸은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가까운 이웃 주민으로 머물면서 루옌스는 아내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 기울인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끝에 매일 방문하여 자신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주기도 지만 별 소용이 없다. 아내는 루옌스를 편지 읽어주는 남자 정도로만 인식할 뿐이다.


 매달 5일이 되면 펑안위는 곱게 단장하고 남편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역으로 향한다. 모든 사람이 다 빠져나가고 출구의 문이 닫히면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그러한 아내를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와 서로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끊임없는 욕망으로 자리 잡는다.


 아내는 돌아올 남편을 위해 남편이 아끼던 피아노를 조율할 생각을 한다. 그걸 알게 된 루옌스는 조율사를 자청하여 그 집에 들어가 자신이 즐겨 연주하던 곡을 들려준다.

 잠시 추억에 빠져 든 펑안위의 표정이 아련해지며 루옌스의 어깨를 짚는다. 감동한 루옌스가 고개를 돌려 그 손을 잡는 순간, 평안위는 깜짝 놀라며 더러운 이 손을 치우라고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른다.


 마지막 기대를 했고 또 그 꿈이 이루어지는 듯한 황홀감을 맛보았던 루옌스의 실망은 그 순간 너무나 깊고도 고통스러웠다. 더 이상 그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된 듯한 좌절감으로 이제는 성인이 된 딸 앞에서 울부짖으며 괴로워한다.


 바로 그때 이 대사가 나온다.


 "아빠, 아빠는 엄마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시는 거예요?"


 "엄마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신다면 엄마는 지금 그렇게 잘 지내고 계시지 않나요?"


 딸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 한마디에 루옌스는 마음을 돌려 먹는다.

 나의 판단과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아내를 사랑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안타까운 긴장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점점 깊어만 가는 갈등과 고뇌로 힘들게 부대끼던 루옌스가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온전한 헌신과 섬김의 낮은 자세로 일상의 평화와 감사를 찾은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잘 살고 있는 딸과 자기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내, 그들의 모든 일상을 지켜 주며 묵묵히 그 곁을 지킨다.


 매달 5일이 되면 변함없이 남편을 맞으러 역으로 나가는 아내.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 옆에 앉아 아내가 바라보는 방향에 시선을 함께한다. 아내가 기다리는 그녀의 남편을 루옌스도 같이 기다린다. 출구가 닫히면 쓸쓸히 일어서는 아내의 안전한 귀갓길을 지켜 준다. 비가 오는 날은 곁에서 우산을 받쳐 주며 그녀의 나들이를 돕는다.


 역사의 희생물이 된 한 가정의 슬픔을 소재로 사실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더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내 방식대로 내가 주인공이 되어 상대에게 집착하는 왜곡된 사랑.

 그것을 깨닫고 방향을 바꿀 때 진정한 사랑의 기쁨을 만날 수 있다는 영원한 진실을 말해 주는 영화다.


 ㅡ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다.

    ㅡ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2021년 8월

작가의 이전글 다시 태어나도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