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처 못다 손질한 쪽파를 다듬어 파김치를 마무리하고 투표장엘 다녀왔다.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장을 보고 오후에는 춘곡 텃밭으로 향했다.
함안군 가야읍에 소재하고 있는 이곳 아파트에서 3.7km 떨어진, 승용차로 5분, 도보로 50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다.
남편이 퇴직하고 아이들 셋이 다 출가한 2년 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나름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 출발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집을 나서서 에디야 커피숍과 연세 연합 병원, 엔제리너스 카페를 지나 새빨간 여름꽃 화분으로 뒤덮인 다리를 건너 좌측 농로로 접어든다.
15분가량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농로를 걷는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는 논 벌판. 겨우내 숨 죽여 있던 벌판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논 한 귀퉁이에 마련되어 촘촘히 어린 모가 자라고 있는 모판. 그 싱싱함이 하루가 다르다. 경운기로 써레질해 물이 하나 가득 찰랑이며 고여 있는 논들. 아직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지난가을 베어 낸 벼 포기 뿌리가 노랗게 말라붙은 채 굳은 땅으로 남아 있는 논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기역자로 크게 꺾인 농로가 끝나는 지점, 인적은 거의 없고 차들만 심심찮게 휙휙 지나가는 텅 빈 아스팔트 길 위로 올라선다. 5분 정도 걷다가 다시 농로로 접어든다.
멀리 얕은 야산의 초록빛이 어느덧 짙푸르다. 그 농로가 끝나는 앞 저만치 조그만 시멘트 다리 위에 얌전한 필체의 한글로 <춘곡교>라 써 놓은 돌 표지판이 서 있다.
양쪽으로는 벚나무들이 주욱 늘어서서 봄이면 화사한 꽃으로, 여름이면 무성한 나뭇잎으로 터널을 이룬다. 1k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아름답고 정겨운 길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바로 동네 어귀에 다다른다.
그늘 풍성한 느티나무 아래에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다. 비와 햇빛을 가려 주는 지붕도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거의 두세 분 이상 항상 앉아 계신다. 하루에 네 번 운행되고 읍내까지 10분 정도 소요되는 마을 공용 버스 정류장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평상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노라면 어떤 어르신은 신작로에 버스가 오는지 봐 주시느라 나 대신 길 끝을 바라보며 서 계시기도 한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는 통과 의례에 10분은 필요하다. 간혹 목례만으로 지나치기도 하지만.
조금 안쪽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굳게 잠긴 노인 회관이 있다. 100m 정도 서쪽으로 쭉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춘곡 우리 시골집과 텃밭이 나타난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봉수로 279번지. 대지 70평, 건평 15평, 텃밭 143평이다. 총합 213평.
1977년, 우리가 결혼하기 직전,아버님은 동네 일꾼들과 함께 손수 이 집을 지으셨다.
장남인 남편이 해양 대학을 졸업한 후 2년 간 승선한외항선 1항사 직급으로 받은 월급으로 농가 세 채를 사들여 이 집을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길가에 반듯하니 자리잡아 안전하고 편리하다.
그 해 9월에 결혼한 우리는 부산에서의 결혼식을 마친 후 이 새 집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돗자리 위에서 폐백 예식을 치렀다. 벽지 풀이 채 마르지 않은 듯 밀가루 풀냄새가 솔솔 풍기는 작은방이 첫날밤 잠자리였다.
집에 도착하니 항상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늘 조용하고 적막하던 넓은 마당이 왁자지껄하다.
이틀 전 매매 계약금을 치른 새 주인, 네 가족이 또 다른 친구 가족 부부와 함께 와 있다. 커다란 흰색 진돗개 한 마리도 수돗가에 묶여 있다.
지난 일요일, 4월 12일 부활절 날.
부동산 중개업자의 소개로 집을 한 바퀴 휙 둘러보고는 바로 구매 결정을 내린 매입자다. 그 자리에서 가계약금을 송금시킨 후 다음날 바로 정식 계약서를 작성했다.
잔금까지 치르고 당장 매매를 성사시키자고 서둘렀지만 5월 초쯤 우리 아이들이 한번 다녀갈 것 같아 5월 8일로 잔금 날짜를 늦추었다.
그런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농사 때를 놓칠 수 없어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새 주인은 벌써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감자 씨를 파종해 놓았다.
집이 팔렸다는 실감이 났다.
다들 집이 쉽게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들 했다. 마산 아주버님은 빈 땅으로 둘 수는 없으니까 올해도 농사를 지을 생각으로 며칠 전 밭 전체 로터링 작업을 하셨다.
한 동네에서 크게 농사를 짓는 사촌의 힘을 빌렸다. 사촌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경운기를 몰고 와서 밭 전체를 후딱 갈아주고 갔다.
그 위에 그동안 만들어 저장해 둔 퇴비와 경마장에서 구해온 말 똥 거름들을 뿌려 두었다. 며칠 후면 콩을 심고 들깨 모종을 옮겨 심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누가 보아도 바로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 예쁜 밭이 되어 있었다.
정작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났던 남편은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지만 30여 년간 부모님과 형제들이 살았던 곳. 작지만 야무지고 꼼꼼하게 지어진 본채와 네 칸의 널찍한 광. 쓰기 편한 수돗가와 장독대. 햇볕 풍성한 마당. 담 따라 길게 가꾸어져 있는 소박한 꽃밭. 그 위에 걸쳐져 있는 길고 굵고 오래된 철사 빨랫줄. 대문 반대편 마당에 있는 크고 묵직한 철문을 열면 바로 나타나는 넓은 텃밭.
이제 우리와의 인연이 끝나고 새로운 젊은 주인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꿈에 부푼 새 가족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 하루를 즐기며 앞날을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