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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27. 2021

 흐르는 시간

 

 서울에서 세 아이들이 우리의 귀경을 원하고 남편도 70대에 들어섰으니 마냥 이곳에 머물 수만은 없어서 결정한 매매이다. 

 계약이 이루어진 후 대대적인 집안 정리에 들어갔다.


 오래된 큰 항아리에 들어 있는 묵은 간장과 감식초는 십 년도 넘은 어머님의 작품이다. 묵은 간장독 바닥에는 굵은 결정체의 소금 덩어리가 엉겨 있고 감식초 위에는 하얀 유산균 덩어리가 빙산처럼 덮여 있다.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시누이들이 담아 놓은 햇간장, 된장, 미나리 진액, 매실 진액들을 함께 다 들어내어 나누어 옮겨 담았다. 서울 사는 동서 몫까지 두루두루 열심히 나누었다.


 이불, 옷, 그릇, 책, 앨범, 휴지, 세제 등 온갖 일용품들도 하나 빠짐없이 손질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나눌 것은 나누면서 정리했다.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두 시누랑 나, 셋은 기념으로 호미 한두 자루씩도 챙겼다. 베란다 한쪽 어디엔 놓여서 춘곡의 밭과 집을 꿈처럼 고 있을 것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2002년 이후 거의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되어 온 넓은 네 칸의 광. 대문 옆의 마당 한켠을 다 차지하고 있다. 그 속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녹슨 놋그릇 박스, 손때 묻은 수평 천칭 저울, 거의 새카맣게 변색한 나무 됫박, 돌돌 말려 있는 채 그대로 삭아 내릴 듯한 넓은 멍석, 거의 스무 개가 넘을 듯 차곡차곡 포개져 있는 각종 플라스틱 대야들,  물통, 작은 물통, 벽 가득 조롱조롱 못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대나무 바구니들, 쌓아 놓은 박스들, 벽 한 구석에 기대어 서 있는 길고 짧은 대나무 막대기들, 굵은 각목들, 쥐약을 담아 한구석에 밀어 넣어 두었던 양은 쭈그렁 양재기까지.

 모두 고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긴 시간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들이다.


  텃밭 한 복판에 넓은 구덩이를 파고 태울 수 있는 것들을 다 태우고 재활용 처리해야 할 것들은 아파트로 실어 날랐다.

 몇 날 며칠 이 작업이 이어졌다.


 뜯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들은 집 가까이 시는 이웃 할머니들에게 인사 차 방문하여 전해 드렸다. 어머님이 요양병원으로 떠나신 직후에는 모든 장롱 위나 가구들 위에 두루마리 휴지 뭉치가 천정까지 꽉꽉 차 있었다. 시골로 건강식품 팔러 다니는 트럭 상인들의 홍보물품들이었다. 9년 동안 후손들이 드나들면서 편하게 사용하고도 서너 뭉치가 남아 있었다. 이웃 할머니들께 한 뭉치씩 나눠 드리다 보니 한 댁이 모자랐다. 섭섭해하실까 봐 그 댁은 읍내에서 한 뭉치 따로 사다 드렸다.

 깨끗한 옷이랑 쓸 만한 그릇들은 연락을 드리면 바로 들것을 준비해 와서 후딱후딱 실어들 가셨다. 가정용 정미기랑 커다란 독들이랑 대형 플라스틱 물통, 전기장판까지 원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시원스레 넘어갔다.

 냉장고랑 세탁기, 가스레인지 등은 새 주인을 위해 남겨두었다. 특히 여럿이 눈독 들이던 무쇠솥은 시골집의 정취를 위해 끝까지 지켜내었다. 숯검댕 가득한 아궁이를 휑뎅그레 뚫려 있게 할 수는 없었다.


 사진으로 남겨진 남편의 어린 시절과 아버님, 어머님의 일생을 반추해 보는 만남의 시간도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반복해서 걸어가야 할 똑같은 길이기에 불쑥불쑥 애잔한 감상들이 얼굴을 드러내었다. 사진들도 버리고 챙기고 형제들 주인을 찾아 전해 주었다.

 잡다한 일용품들이 다 치워진 집은 점점 더 깨끗해지고 훤해지며 제 인물을 찾아갔다.


 5월 7일 춘곡 집에서의 마지막 날, 여러 날 걸쳐 꼼꼼하고 야무지게 모든 정리를 다 끝낸 남편은 먼저 짐을 챙겨 가야 읍내로 출발하고 나는 혼자 마무리 청소를 끝냈다.

 넓은 시멘트 바닥 마당도 티끌 하나 없이 쓸어내었다. 구석 저 구석 둘러보고 또 둘러보면서.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아파트로 돌아갈 마지막 마을버스 시간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이곳저곳 눈길을 끄는 마당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다시 이 마당을 밟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정하게 꼭꼭 여며 닫아 놓은 마루 문과 창문들 앞, 점점 어두워지는 마당 한복판에서 잠시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함께했던 형제들과 이 집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지막으로 대문을 잠그고 집을 뒤로하는 순간, 감정은 더 격앙되었다.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마침 집 앞을 지나가던 사촌 동서가 깜짝 놀라 묻는다.


 "형님, 와 그람니꺼?"


 "너무 섭섭해서ᆢ."


 "에이, 언제든지 다시 또 오면 되지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시간 맞춰 올라탄 마을 공용 버스 속에서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5월 초, 서울에서 아이들이 한 차례 다녀가고 5월 8일 잔금을 치르면서 완전히 집주인이 바뀌었다. 대문 열쇠의 비밀번호가 바뀌고 텃밭 사이 문도 굳게 닫혔다.

 아직은 주말에만 다녀가는 새 주인의 배려로 한 달 남은 서울 이사 전날까지 길가로 통하는 텃밭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 한 번 들어서기만 하면 서너 시간은 후딱 지나가는 나의 텃꽃밭.


  새 주인은 예초기로 길가 풀도 휙휙 잘라내고 무화과나무도 심었다. 한 달도 채 못된 수박, 토마토, 감자 모종들은 죽죽 줄기를 뻗어가며 꽃들을 피워냈다. 이제 곧 열매를 맺으리라.

 이제는 자동으로 물을 뿜어내는 스프링클러가 텃밭 한가운데를 오똑하니 차지하고 있다. 젊은 새 주인은 뚝딱뚝딱 싱크대를 바꾸고 마당에는 대형 그늘막을 설치하고 벽은 환하게 밝은 하늘색 페인트를 칠했다. 나날이 집도 주인을 닮아 하루가 다르게 젊어져 가고 있었다.


 알뜰살뜰 가꾸었던 부모님과 우리들의 손을 떠나 하루하루 새롭게 훤해지는 집과 밭을 바라보며 새삼 적지 않은 우리 나이가 인식되고 지나온 긴 시간들이 떠오른다.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가장 잘 된 결과라고 마음을 다독인다.


 지나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들러 달라며 어르신이라고 호칭하는 젊은 주인과 작별 문자 인사를 남기고 서울로 떠나왔다. 하루에 네 번에서 두 번으로 줄어든 시외버스조차 이제는 코로나로 끊겼으니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는지.

 눈에 삼삼한 골목길과 집 안팎 구석구석.

 마당과 텃밭.

 이제는 모두 안녕.

 잘 있어, 사랑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ㅡ 조병화  < 의자 7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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