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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25. 2021

 시간 여행

 2020년 4월 15일, 수요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날이다. 이곳의 투표장은 경남 함안군 가야읍 명덕고등학교 체육관이다. 넓은 학교 운동장 한 모퉁이에 체육관 입구가 있었다. 이미 30m 정도 되는 긴 줄이 꼬리를 잇고 있다. 시골답게 거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류를 이룬다. 도시의 등 꼿꼿이 편 노인분들과 달리 오랜 노동으로 다리가 성하신 분들이 드물다. 비틀거리며 힘들게 약해진 다리를 옮기거나 보행 유모차에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오는 노인들이 많다. 오랜 세월 갖가지 사연들로 가득 찬 긴 시간 여행을 지나오신 분들이다.


 이 선거에 본인의 판단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주위 사람들의 권유나 회유에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기우가 잠깐 스쳐 지나간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활달한 아주머니 한 분이 봉고차로 노인 네 분을 모시고 왔다. 두 분씩 나누어서 양 쪽으로 차례차례 부축하여 설명하면서 투표장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마지막 많이 연로하신 할머니는 결국 투표에 실패하신 모양이다. 제대로 투표 과정을 마치지 못한 채 힘든 걸음걸이로 투표소를 벗어 나오자 보호자 역을 하던 아주머니가 아주 안타까워한다.


 "그러키로 자알 가알치 드맀는데ᆢ"


 어리둥절한 표정의 할머니는 더 난처해하며 다시 그 아주머니의 팔을 잡고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코로나 19로 인해 투표장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풍경을 이룬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에서 꽤 긴 줄로 서 있다가 투표 도우미들이 건네주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받아 든다.

 투표소 입구에 들어서면 이마를 내밀어 체온을 측정하고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 제시와 함께 잠깐 마스크를 벗는다.

 투표 번호를 찾아내어 다시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용지를 받는다. 네 칸으로 설치된 투표소의 빈칸으로 각자 찾아 들어가서 기표를 한 다음 통에 넣고 나오는 것으로 투표가 끝난다.


 출구에 세워놓은 커다란 쓰레기봉투에는 이미 앞사람들이 벗어던지고 간 일회용 비닐장갑이 그득하다. 그 비닐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4천여 만 명의 60여 프로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두 장씩 잠깐 쓰고 버린 비닐장갑. 오늘 하루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 낸 비닐 쓰레기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이 될까?


 듣기로는 이 비닐은 재활용도 안 되고 의료 폐기물로 취급되어 그대로 소각된다고 한다. 하긴 코로나 전염 방지용이니까.

 석유화학 산업으로 저 많은 양의 비닐장갑을 만들어내는 과정부터 폐기 처리되는 과정까지 인간이 자연에 대해 저지르는 죄가 너무 크다. 그리고 그것은 왠지 코로나 19보다 더 무서운 재앙으로 다가올 것 같다.

 

 오늘은 5일장이 서는 장날이다. 투표를 마치고 읍내 장터로 향했다. 학교 옆 골목길을 오르면 바로 말이산 고분군이 나타난다. 고분군을 가로지르면 읍내 장터로 연결된다.

 잠깐 지나가는 고분군 푸른 풀밭 위에도 쓰레기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담뱃갑을 비롯하여 각종 다양한 모양의 페트병들, 캔, 반짝이는 사탕 껍질, 새하얗게 널려 있는 일회용 물티슈, 희고 까만 마스크들까지 마구 나뒹군다.


 이 고분군 발굴과 보전을 위해 몇십 억 단위의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는데 이리 쓰레기가 난무해서야 되겠는가?

 고즈넉하고 웅장하고 조용한 고분의 우아함, 기인 시간 여행의 역사를 침묵 속에 품고 있는 장엄함이 이 시대의 천박하고도 이기적인 소비주의에 날카로운 생채기를 입는 것 같다.


 평화로워만 보이는 들녘들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썩지 않는 폐비닐들과 재활용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는다. 잡초 번식을 막겠다는 편의주의로 밭 전체를 비닐로 덮어 씌우고 농사를 짓는 농법이 한국 말고 다른 곳에도 있을까 싶다.


 봄에 씌운 비닐이 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에 삭아들다가 가을 추수 끝에 그대로 방치된 채 차가운 겨울바람에 시달린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 걷어낸 폐비닐 뭉치들이 여기저기 더미를 이루어 버려져 있다. 흙 속에 파묻힌 채 찢어진 검은 비닐 조각들이 바람에 마구 나부끼는 모습은 흉물스럽다.

 해가 바뀌면 또다시 갓 생산된 새 비닐이 온 땅을 덮으며 빛나는 햇살 아래에서 반짝인다.


  소꿉놀이 수준에 해당하는 텃밭 돌보기를 하는 나는 풀을 뽑거나 수확물을 거둘 때 따로 빈 용기를 하나 더 가지고 다니며 손톱 만한 폐비닐이나 플라스틱, 유리조각도 다 따로 주워 담아낸다. 그러나 고강도의 노동에 지친 농부들은 들판에 버려진 폐비닐에 무감각이다.


 오가며 형편 되는 대로 주워보지만 완전 역부족이다. 두꺼운 비료 포대도 하천이나 길가에 마구 버려져 있다. 오래된 농약 플라스틱 병들도 여기저기 풀더미 속에 파묻혀 있다. 이리 오염된 땅에 언제까지 건강한 생명체가 자랄 수 있을까?


  자기 얼굴에 묻어 있는 조그만 흠결도 조심조심 정성껏 닦아내는 그 마음으로 자연을 흠집 내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사랑으로 치워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 이전에 그런 쓰레기들을 아무 생각 없이 휙휙 던지거나 방치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다.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이쪽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경제 성장만을 외치는 정치가 아니라 올바른 도덕과 규범이 있는 제대로 된 가치관을 제시하는 정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성히 자란 초록의 풀들 속에서 앙증맞게 화려한 붉은색을 선명하게 자랑하는 양귀비꽃들이 점점이 뿌려져 있는 아름다운 둑.

 그 둑에도 정기적으로 예초기로 풀을 베어 내는 공공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 작업이 끝난 후면 여기저기 예초기의 예리한 칼날에 마구 잘려나간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비닐 등의 조각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작업 인부들은 풀만 거둬 갈 뿐 그런 쓰레기는 그냥 그대로 방치해 둔다. 그 인부들 모두 이 지역사회의 주민들일 것이다.

 풀만 담는 포대 안에 그런 것을 넣을 수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담당 공무원이 조금만 눈을 떠도 그런 문제점은 해결될 수도 있으련만 아쉽기만 하다.


  오며 가며 눈에 띄는 대로 열심히 주워 가까이 있는 아파트의 재활용 분리 쓰레기장으로 날랐다. 그곳 비닐 쓰레기 수거 포대에서는 눈에 띄는 짱짱하고 깨끗한 비닐 봉투들골라내어 텃밭 야채 나누는 봉투로 쓰기도 했다. 넉넉하게 모아 시골 이웃들에게 나눠주면 아주 좋아라 한다.


  서울 생활에서도 사용 가능한 비닐을 깨끗이 정리하여 재래시장 길바닥 야채 상인들에게 건네준다.

 웬일인가 하여 약간 경계하는 빛을 보일 때도 있지만 미소 띠며 깨끗하니까 편하게 쓰시라고 말을 걸면 금세 반기는 표정이 된다. 돈으로 환산하면 몇 백 원도 안 되지만 나는 계속 그렇게 산다.


 우리들의 잘못된 긴 시간 여행 이후 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을 어떻게 되돌려주게 될까?


 아주 편편치 못한 마음으로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치렀다.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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