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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5. 2021

 삶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기쁨

   관계♡

 

우물, 정확한 깊이도 부피도 모르는 채 맑고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기대하며 풍덩 두레박을 떨구어 내리는 우물. 그 우물마다 품고 있는 수량과 간직하고 있는 수질이 다르다.


 내 삶의 우물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길어 올렸을까?


 내 삶의 우물에 던져 내린 두레박. 그 속에 담겨 올라온 많은 것들 중에 가장 큰 의미를 지닌 것은 '관계', 그러니까 '사람'인 것 같다. 스쳐 지나온 삶의 시간과 장소마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맺어져 온 수많은 관계 속의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서 엮여 온 내 삶의 무늬. 씨줄과 날줄로 만나는 인연 속에서 한없이 가라앉기도 했고 날개를 단 듯 가볍게 떠오르기도 했다. 속상해 울기도 했고 한 점 그늘도 없는 환한 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두렵고 힘들었던 것은 주어진 내 입지가 빈약하여 좋지 않은 영향력 아래에서도 꼼짝 못 하고 그 자리를 지켜야 했던 일들이다. 내 상식과 내 가치관으로는 허용할 수 없는 부당함. 두 어깨에 올려진 온갖 짐들. 그러나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홀로 온갖 걱정 근심 다 끌어안고 좌절하며 우울해했던 일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여 어느덧 내가 연장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묶여 있던 많은 의무로부터 놓여나 자유롭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영향력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같이 따뜻하게 웃으며 내 의지대로 주고 싶은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진정한 사랑을 진정하게 나눌 때 상대가 즐거워하고 나도 뿌듯해지는 행복.

 이것이 내가 내 삶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기쁨이다.


 부당한 관계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않고 끊을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다. 거미줄처럼 칭칭 감아 오는 스트레스를 차단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별로 많이 남지 않은 시간, 그런 가치 없는 관계에 연연하며 내 삶을 더 이상 고통으로 낭비하지 않으리라. 의미 있는 관계, 보람 있는 관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에도 빠듯한 시간과 체력이다.

 

 아직은 조금 더 주어진 시간과 건강 그리고 약간의 물질이 허용된 지금 여기,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함께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기쁨이다.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말씀이 있다.

 우물물은 고여 있으면 안 된다. 인색하게 아끼지 말고 부지런히 퍼 내어야 땅 속 깊은 물줄기로부터 새 물이 흘러 들어오면서 살아 있는 물이 된다.

 

 항상 남의 물을 얻고자만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물을 주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둘 다 나에게는 귀한 인연이리라.

 서로 존중하며 편안히 주기도 하고 또 편안히 받기도 하면서 함께 가는 삶의 여정. 그 우물에 던져 내린 두레박에 항상 맑고 시원한 물이 가득 찰랑이기를 소망해 본다.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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