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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2. 2021

2021년 구정 연휴

    불량품 명절

 

 "어머니, 죄송스런 일이 생겼어요."

 결혼 삼 년 차인 며느리의 낭랑한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왜, 무슨 일이니?"

 "아빠 친척분이 화요일 장례식에 다녀가셨는데 그분이 코로나 확진자래요."

 "그래? 근데 우리는 월요일에 문상 다녀왔잖아?"

 "아빠가 지난 일요일에도 그분을 만나 저녁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분이 오늘 감기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다가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대요. 아빠 엄마랑 우리 둘 모두 코로나 검사를 해놓고 있어요."


 수요일인 2월 10일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월요일, 8일 아침, 며느리의 외할아버지께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서울 성모병원에 빈소가 마련되어 우리 부부는 그날 밤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사돈 두 분을 만나 뵙고 반갑게 안부를 나누고 저녁 식사도 함께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고인을 장지에 모시는 절차까지 모두 끝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날, 바깥사돈은 양성 반응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기침과 열 증상이 나타나 코로나 전문 지정 병원인 경찰병원에 입원하셨다. 다행히 안사돈은 음성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렇지만 2주일간 자가 격리 조치가 떨어졌다. 아들 부부도 음성 결과가 나왔지만 사흘 내내 장례 절차에 함께했기에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아들은 우리더러 매일 2회씩 체온을 재 보시라. 아연과 비타민D가 포함된 영양제가 집에 있으니 찾아서 복용하시라, 기침, 가래, 콧물, 후각 소실, 두통 등을 체크하시라 등등 계속 연락을 해 왔다.

 일단 바깥사돈이 코로나 환자로 판정이 났고 우리도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구정에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던 모든 계획이 다 백지로 돌아갔다. 장을 봐 두었지만 음식 만들 일이 사라졌다.


 구정 명절 당일, 홀가분한 심정으로 느긋하게 일어나 남편과 둘이서 간단하게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촛불 밝히고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위한 연도를 바쳤다. 명절마다 손주들까지 모이면 열두 명이 되는 시끌벅적한 모임의 안주인 노릇을 해 오다 갑자기 한가해졌다.

 

 3년 전 개신교 며느리를 보고 곧이어 함안으로 내려가면서 20년 가까이 우리 집에서 모시던 제사를 모두 성당 미사 봉헌으로 바꾸었다. 시누이, 시동생들도 흔쾌히 찬성하였다. 아버님, 어머님 모두 임종 전 세례성사를 받으셨으니 다행이다.

 함안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부산, 마산에 사는 시누이들과 함께 집 앞 선산에 모셔져 있는 두 분의 산소에서 간단히 절을 올렸다. 올해는 코로나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을 수도원에 예물과 함께 미사 봉헌을 신청했다.

 바깥사돈의 쾌유와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간구하는 생미사 봉헌도 함께 부탁드렸다.


 잡채를 해 오겠다던 첫째도 섭섭하지만 오전에는 시댁을 다녀오고 오후에는 자기네 식구들끼리만 명절을 지내게 되었다. 둘째네도 사위만 가까이 사시는 본가로 가서 오전 나절 잠깐 형님과 부모님 두 분, 네 명만 모여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우리 집 아들과 며느리는 자가 격리로 꽁꽁 묶여 버리고ᆢ.

 뭔가 부속품 여러 개가 빠져 버린 불량품 명절이 된 것 같다.

 다행히 평소에 자주 보니 서운함은 덜하지만 명절 기분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손주들 손에 세뱃돈 쥐어 주는 재미도, 어설프게 엉덩이 치켜들고 고사리 손 모아 세배하는 모습에 웃음 짓는 도 모두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손주와 중3이 되는 손주에게 전해줄 축하금과 격려금도 계좌 이체와 전화 통화로 해결했다.


 "예쁜 ㅇㅇ야,

 중학교 생활 힘들고 어려울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내준 축하금 기억하면서 힘 내고 열심히 해~~!!"

 "네에~~."


 "멋진 ㅇㅇ야,

 벌써 중3이네. 곧 고등학생이 되는구나. 열심히 수고해~~!!"

 "네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도 한 편 찾아보았다.

 톰 행크스 주연, <뉴스 오브 더 월드>.

 나이 든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정의롭고도 묵직하면서 따뜻한 삶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다.

 남북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키드 대위는 전쟁이 끝나자 텍사스 주 곳곳을 다니며 각종 신문에 실린 뉴스를 읽어 준다. 혼자 고향을 지키던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고향집은 텅 빈 폐가로 변했다. 이곳저곳, 낯선 지역들을 유랑하면서 하루 일과가 끝난 밤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든 동네 회관이나 주점에서 세상 소식을 알려 주는 것이다. 거기서 받는 조금씩의 수수료로 일상을 이어간다. 이동수단은 한 마리의 말이다. 그 여정에서 어려운 처지에 처한 고아 소녀를 만나 돌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아들이 다시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온다.


<고속버스 터미널 1번 출구에 무료 검사소가 있어요. 아주 간단히 끝납니다. 12시부터 4시까지 합니다.>


 아무 증상도 없고 괜찮을 것 같지만 주위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떨쳐 버리기 위해 일단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다. 더구나 매주 수, 목요일에는 둘째네 외손주들과도 만나야 하니 ᆢ.


 음력설 명절, 구정날에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될 줄이야 ᆢ. 검사소 앞은 붐비지는 않았지만 한산하지도 않았다. 계속 두세 명 정도 대기 상태로 검사 희망자들이 줄을 섰다. 우리도 조금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었다. 먼저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를 띄워 안내원에게 보여 준 후 신청서를 작성했다. 넓고 높게 설치된 투명 아크릴 판 뒤에 서서 동그랗게 뚫린 양 쪽 구멍으로 두 팔만 내밀고 있는 검사원의 손이 내 코 안쪽에서 3초간 채취물을 뽑아내었다. 잠깐 동안 시큰하니 쓰라렸다. 또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분비물을 닦아 냈다.

 순간 '아, 양성으로 판정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휙 스쳐갔다. 내 채취물이 담긴 조그만 비커를 건네받아 왼쪽 검사대에 앉아 있는 다른 검사원에게 전해 주고 모든 절차가 끝났다.


 "이런 코로나 시기에 검사 한 번 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남편과 둘이서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돌아서 나왔다. 어느덧 또 서너 명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친김에 산책길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대기 미세 먼지 상태는 '매우 나쁨. 위험합니다. 외출을 삼가시오.'라고 뿔 달린 도깨비가 험상궂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왕 마스크를 써야 하니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저녁에는 둘째네 가족들과 미처 안부 전하지 못한 몇몇 친지분들과 전화 통화를 나누었다.


 다음날 오전 10시 11분. 핸드폰에 메시지가 떴다. 남편도 동일했다.


 [웹발신]

 ㅇㅇ구 보건소입니다.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임을 안내드립니다.

 앞으로도 마스크 착용 및 개인위생 수칙 준수 부탁드립니다.


 장 봐 둔 재료들을 급히 다듬어 몇 가지 반찬들을 만들었다. 음식을 아들 집 아파트 문 앞에 가져다 두고 문자를 넣는 일은 남편 몫이다. 아파트 같은 통로의 13층에 아들네가 살고 8층에는 우리가 산다. 

 두 부부는 바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카톡 문자를 보내왔다. 저녁에 카톡이 한 통 더 들어왔다.

 "어머님, 아버님~

 챙겨 주신 덕분에 오늘 저녁 건강한 음식으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2021년 설 연휴 나흘이 이렇게 지나갔다. 다행히 바깥사돈은 증상이 많이 좋아져서 20일경 또 한 번 검사를 끝내고 퇴원하신다고 한다. 안사돈은 25일까지, 아들 내외는 23일까지 자가 격리로 집콕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는 발병의 위험도 있지만 강한 전염력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무섭게 여겨진다.

 며느리는 우리들의 위로와 격려에도 불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안사돈도 전화를 하셨다.

 "코로나 검사까지 받으시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본인이 더 힘드실 텐데 주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힘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강 건너 불 보듯 긴가민가했던 코로나 상황을 이리 가까이 대하고 보니 모든 일이 무사히 마무리된 것이 다시 한번 감사하게 느껴진다.

 1초 앞을 예견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는 우리의 연약함. 그 연약함을 지켜 주시는 큰 사랑의 힘에 감사드린다.


 바깥사돈께서 남편에게 보내오신 메시지를 덧붙여 본다.


 *많이 놀라셨죠?

 장례까지 잘 마쳤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양성 반응 통보를 받아 방문한 지인들, 회사 직원들에게 많은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지금까지 맘 졸였는데 다행히 상주인 조카 한 사람만 양성으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뵈어서 무척 반가웠는데 혹시나 폐를 끼치지나 않았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저께 경찰병원 입원실에 들어와 계속 체온, 혈압, 혈당을 체크받고 있는데 간단한 기침약과 해열제 복용 후 거의 정상입니다. 별 이상 없으면 20일경 퇴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꾹 참고 잘 견디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심려 끼쳐 죄송하고 문상 와 주셔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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