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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3. 2021

청소

  신성한 노동

 

 9층짜리 나홀로 아파트에 사는 18세대가 다 같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아파트 대청소를 하는 첫째 주 토요일이다.

 전체 세대 중 평균 절반 정도가 동참한다. 참석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월 1만 원씩의 벌금이 관리비에 부과된다. 경비 아저씨도 없고 청소 아주머니도 없으니까 도시에 비해 관리비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아침 8시에 모여 1시간 정도 화단의 풀을 뽑고 단지 마당 구석에 뒹구는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담장 바깥쪽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단체 청소를 끝낸다.

 아침저녁 통근 버스가 정차하는 길가에는 항상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오늘은 봄철 대청소로 아파트 실내 계단 청소도 했다. 명이 3층씩 맡아 물에 적신 대걸레로 닦아 내고 비질을 했다.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바쁜 아침 시간, 다들 총총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 여유가 있는 나는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다가구 주택 길가에 쌓여 있는 묵은 쓰레기들을 청소했다. 수북수북 뭉쳐 바람에 쓸려 다니는 길가의 쓰레기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지나다닐 때마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쌓인 낙엽과 담배꽁초와 흙무더기를 쓸어내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깔끔해진 동네길을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청소를 하면 더러워진 공간이 깨끗해지기도 하지만 또 하나 덧붙여 얻는 소득이 있다. 청소 후 깨끗해진 공간을 바라보는 뿌듯한 기쁨이다.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청소를 하지 않으니까 청소나 그 후의 깨끗함에 대한 기쁨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교실 청소가 사라진 지 꽤 되었다. 아이들을 대신해서 어머니들이 당번을 정해 청소를 담당하다가 이제는 아예 도우미 아주머니들을 고용해 해결하는 듯하다.

 

 내가 다니던 60년대 국민학교에서는 청소에 관련된 모든 것을 어린 우리들의 손으로 다 해 내었다.

 콩나물 교실이라고 불리던 열악한 공간. 70여 명의 학생들이 둘씩 같이 쓰는 책상 위에 걸상들을 하나하나 다 엎어 올리고 그 책상을 마주 들어서 뒤로 다 밀어내고 비어 있는 교실 앞부분 마룻바닥을 먼저 쓸고 닦았다.


 어떤 때는 꿇어앉아 밀랍 양초를 문질러 가며 마른 걸레질도 했다. 개구쟁이 남학생들은 저만치서 달려와 반질반질 매끄러워진 바닥 위로 양말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고. 그것이 끝나면 이번에는 모든 책상을 또다시 앞으로 밀어붙이는 차례. 그렇게 해서 교실 뒷부분 청소가 끝나면 책상들을 또다시 제자리로 옮겨서 걸상을 내리고 앞 옆으로 책상 줄을 맞추었다.


 다음은 물걸레로 책상 위를 닦는다. 창문 밖으로 팔을 뻗어내어 칠판지우개를 탁탁 털 때는 부옇게 피어오르는 분필 가루를 마시지 않으려 숨을 참으며 고개를 외로 꼬았다. 마지막은 공동 쓰레기장에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걸레들을 빨아 널고 청소용품들을 정리하는 순서.

 

 손으로 마구 뭉쳐 꾸깃꾸깃 구긴 신문지로 낡은 유리 창문도 열심히 닦았다. 위험할 수도 있는 창문틀에 올라서서 친구랑 둘이 양쪽에 마주 서서 창문 유리 양면을 입김 호호 불어가며 뽀득뽀득 열심히 닦았다. 뿌옇던 창문이 투명하게 맑아지곤 했다.


 교무실에 들러 청소 완료 보고를 하고 교실로 오신 선생님의 청소 검사 합격 신호가 떨어져야 청소 당번을 끝내고 집에 올 수 있었다.

 간혹 선생님이 남겨 두신 샛노랗고도 구수한 옥수수 배급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시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가장 열심히 한 청소는 지난 2월,  결혼 1년 차인 아들과 며느리가 2박 3일간 다녀가겠다는 연락을 받고 한나절도 넘게 부산을 떤 집안 대청소다.

 화장실 바닥 모서리 변색된 실리콘 접착제를 락스에 담근 휴지로 덮어 하얗게 만들기까지 ᆢ^^.


 제사나 명절을 준비할 때도 제일 먼저 착수하는 일이 청소다. 얼룩진 수도꼭지부터 현관 입구의 더럽혀진 바닥까지 미루어만 오던 구석구석 청소가 후다닥 이루어진다. 발등에 불 떨어져야 효율이 오른다.


 마지막 일도 정리정돈과 청소다. 사용했던 집기들을 깨끗이 씻어 말려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타월과 행주들을 삶아 빨아 뽀송뽀송 말려서 개켜 서랍에 보관하는 일로 행사가 끝난다. 주최하는 맏며느리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작업이다. 정작 방문객들은 별 관심이 없을 텐데도 주부로서의 책임감은 바쁘게 동동거리며 집안 곳곳을 점검하게 만든다.


 해도 표 나지 않고 안 하면 바로 표 나는 일, 청소.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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