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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4. 2021

내 삶의 주춧돌

  어머니


 3남 4녀, 7남매의 다섯째인 셋째 딸 늦둥이로 태어난 나. 많은 가족들이 적은 수입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항상 나를 존중해 주시고 변함없이 지지해 주셨던 어머니.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 이 나이 되어 삶이 온통 헛 살아온 껍데기인 양 따뜻한 손 하나 내밀어 주는 사람이 없는 듯한 허허로움에 주르르 눈물 한 줄기 떨어뜨릴 때

 '내 인생의 주춧돌은 역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어머니'이구나.'

 반복되는 확인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또 한 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분이기에, 한 번도 제대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해 드리지 못했던 분이기에.


 어머니의 맹목적인 과잉보호 속에서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자라나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교조적 인간으로 성장한 탓일까?

 옹야 옹야 떠받들어 주는 어머니의 한결같은 헌신 때문에 교만한 성격으로 자라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2002년 86세의 나이로 어머니는 저 세상으로 떠나셨고 지금 나는 휑하니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듯 외롭고 서럽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세월들이 참 많이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존중받는 데 너무 익숙했던 탓일까?

 나의 소통 능력 부족과 내 중심의 미숙한 대인 관계 능력 때문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것 같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라고 나무라시면서도 말없이 시위하는 고집 불통, 나의 비위를 다 맞춰 주시고 투정을 다 받아 주셨던 어머니.

 항상 나에게 져 주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 속에 던져져 실망하고 좌절했던 시간들. 내가 그러했으니 상대적 입장이었던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나로 인해 상처 입힘들어 했으리라.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는 고백 성사의 마지막 문구진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나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했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로 화해를 청하고 싶다.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뻣뻣하고도 구태의연한 가치관과 태도로 삶을 대하는 나, '언젠가는 알아주겠지'라며 구차한 변명이나 설명은 생략한 채 일방통행해 버리는 나,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관계 하나 제대로 풀어가지 못하고 외로워하는 나를 보면서 모든 것 다 받아 주시고 항상 자랑스러워하셨던 어머니의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이 새록새록 더 그리워진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아도, 그간의 살아온 정리로 보아 눈빛 하나만으로도 순순히 공감하고 따뜻이 품어주는 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 옛날, 밥투정 끝에 달아나는 나에게 한술 밥 더 먹이려고 애타게 이름 부르면서 쫓아오시던 어머니를 끝내 이겨 먹었던 나의 불효.

 그 잘못들을 이렇게 아프게 기워갚나 보다.


 내 인생의 주춧돌인 어머니.

 언젠가는 나의 세 아이들도 나를 자신들의 인생의 주춧돌로 여겨주는 날이 올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은 헤아릴 여유도 없이 나 자신의 긴장과 갈등에 휩싸여 힘들게 지나온 긴 고통의 시간들.

 어느덧 나는 미성숙하고도 이기적인 문제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 발등의 불이 너무 뜨거웠기에.


 밀려오는 회한을 접고 지금의 섭섭한 마음을 내려놓으며 이제부터라도 상처 입었던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내게 주어진 길을 성심성의껏 걸으려 한다.

 그동안 내 중심적인 좁은 안목으로 아이들에게 깊이 상처 주었던 과오들을 조금이라도 기워 갚을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언젠가는 나도 아이들 인생의 주춧돌로 자리매김할 날이 오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내게는 어머니가 쏟아 주셨던 크고도 넓은 그 사랑이 남겨준 커다란 선물이 있다.

 회복탄력성.

 많이 힘들어하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주춤거리긴 하지만 넘어지지는 않는다.

  위대한 유산의 힘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집중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리라.

 세 아이들에게 부족하나마 따뜻한 지지자였던 엄마로 기억되기 위해 부단히 깨어 있으며 노력하리라.

 내 인생의 보물인 세 아이들, 각자의 단란한 가정 속에서 최선 다하고 있는 고마운 아이들에게 이 말을 거듭거듭 반복하리라.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엄마는 정말 몰랐어. 너희들이 그렇게 힘들어했는지를.


 정말 미안해, 정말 고마워, 정말 사랑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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