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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5. 2021

힘 빼기

   제대로 배우기

  

"수영을 배우니까 육아에도 도움이 돼요."

 40대 초반, 일곱 살짜리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젊은 아빠가 하는 말이다. 아내는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맞벌이 부부다.


 함안 종합 체육관 실내 수영장에서 받게 된 초급 수영 강습. 매달 첫날, 등록된 강습생들의 출석 호명 시간에는 스무 명 정도의 이름이 불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출석 인원은 줄어들어 중순 부터는 한 레인에 열 명 안팎의 수강생들이 수업을 받는다. 하루도 빼먹지 않는 성실한 사람, 직장 사정으로 격일제로 출석하는 사람,  며칠씩 빠지는 게 일쑤인 사람 등등 구성원들의 수업에 임하는 태도들이 제각각이다. 나이도 성별도 다양하다. 같은 레인의 같은 등급이지만 실력 차이도 크다.

 나는 출석률은 상위에 속하지만 실력은 하위에 속한다. 하지만 재밌다. 시골에 내려올 때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수영이라는 운동을 아주 쾌적한 환경에서 배우고 즐기게 되었다. 큰 선물을 받았고 큰 횡재를 누리게 된 듯하다.


 수심 1m 15 cm에서 시작해서 가장 깊은 곳이 1m 35cm, 길이가 50m, 레인이 7개인 넓고 환한 실내 수영장.

 같은 레인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얼굴을 맞대고 물속에서 짬짬이 담소를 즐긴다. 수업 시작 전후 또는 앞사람들의 출발이나 뒷사람들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이다.


 "왜요?"

 다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젊은 아빠를 바라본다. 다음 말이 이어진다.

"수영의 제1관건이 힘 빼는 일이잖아요. 계속 몸에서 힘 빼는 연습을 하다 보니 집에서 아이들한테도 집사람한테도 힘을 빼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집안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렇겠네요."


 '와아, 바로 저거야, 저걸로 글 한 편 써 봐야지 ᆢ '


  동안 젊은 아빠의 그 말이 내 맘 속을 맴돌았다.

 힘을 빼는 것. 이것은 수영뿐 아니라 모든 운동에서도 핵심 난제이다.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안 되는 어려운 과제.  제대로 힘을 뺄 줄 알 때 힘을 써야 할 곳에 힘을 쓸 수 있고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만 이것을 체득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조건 온몸에 힘을 주고 잘해 보려고 기를 쓴다.

 그래서 뱅뱅 제자리걸음을 한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긴 세월, 많이 부대끼고 많이 좌절하면서 나를 내려놓고 힘을 빼는 것이 살아남는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 알아도 몸에 익히는 일은 여전히 요원하기 십상이다.

 나이 듦이란 힘을 뺄 줄 아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를 드러내려고 용쓰는 힘,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고집부리는 힘, 시기 질투 교만 이기주의 등에 꽉 붙잡혀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힘. 이 모두 어둡고 어리석은 힘들이다. 이런 것들이 소통과 공감의 건강한 관계 형성에 얼마나 많이 방해가 되는 걸림돌들인가?

 갈등과 분리만을 조장하는 이 왜곡된 힘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나이 듦이 주는 선물이며 이루어야 할 과제인 것을.


 나의 끝이 하느님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그 힘들에 붙잡혀서, 그 힘들의 노예가 되어 그 힘들을 쓰고 있는 것조차 몰랐을 때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던가?

 주위의 만만치 않은 환경들도 적지 않게 작용했지만 결국 그 모든 갈등과 고통의 근원지는 나 자신이었다. 알량한 나의 힘으로 나를 지키느라 몹시도 긴장하고 있었고 쉽게 상처 입었고 그 상처가 너무 아팠기에 상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를 지키느라 남에게 친절한 척했고 매사에 성실했다.


 그 결과는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진정한 기쁨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오히려 완전히 지쳐 버린 상태로 시름시름 시들어 갔다.

 한마디로 말해 진정한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에 급급하여 몸과 마음에 힘을 잔뜩 준 채 공허한 위선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 위선의 삶은 쓸쓸했고 힘들었고 조금은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 나를 내려놓는 것이 꼬인 문제들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이제는 외면할 수 없다.

 육체적, 정신적 힘이 약해지는 노화의 길을 걷고 있으니 내려놓는 일이 훨씬 쉬워진 것 아닐까? 자녀 양육, 부모 봉양, 형제 건사 등의 의무에서 많이 놓여 났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내려놓기가 있다.


 <백 살을 살아 보니>라는 책을 쓰신 김형석 교수님은 우리 삶의 소중한 것들이 일과 독서 그리고 베푸는 삶이라고 했다.

 이제 일도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소중한 가치를 찾아 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노년의 고독을 독서와 벗하며 성찰의 시간으로 삼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더불어 사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나누라고 했다.

 

 65세부터 80세까지가 인생의 전성기이니 축복처럼 주어진 여생을 더 열정적으로 일하며 살고 싶다는 그분의 꿈.

 내려놓아 홀가분해진 마음자리에 그 귀한 꿈을 초대하여 감히 내 꿈의 귀감으로 삼아 보고 싶다.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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