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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7. 2021

아침 손님

   철 따라 바뀌는 ᆢ

 

 7월 9일부터 21일까지 열이틀 동안 남편의 수술과 치료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그 사이에 확 달라진 한 가지가 있다.


 활짝 열려 있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 어느 순간 갑자기 터져 나오는 듯한 요란한 소리, 왁자지껄 떼를 지어 쏟아내는 매미들의 울음 소리다.

 서로 내기에 지지 않으려는 듯 높은음으로 정신없이 울어댄다. 매엠 매엠이 아니다. 찍찌르르 찍찌르르 폭포수처럼 쉬지 않고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


 잠이 확 달아난다.

 분명 열이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요란한 매미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시간이 다정한 듯 상큼하고 부드러운 새소리 합창이 시작되 이전 시간보다 30분은 더 빨라진 듯하다.

 여름의 대표주자인 폭염도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귀 기울여 가만히 들어 보면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  매미 소리에 묻혀 미미하게 들렸을 뿐, 그전부터 아침을 알려 주던 온갖 새소리들도 그대로 다 살아 있다.

 매미가 무대를 석권하기 전까지이불속에 그대로 누워 눈을 감은 채 귓전으로 날아드온갖 새벽 새소리들을 즐겼다. 부드럽게 화음을 이루고 박자를 맞추며 정겹게 울어대던 대자연의 소리들.

 

 여리면서도 꽤나 날카로운 소리, 동글동글 귀엽고도 깊은 울림을 담은 소리, 다양한 소리들이  갖가지 귀여운 새들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며 생생하게 귓전으로 날아든다. 살아 쉬는 생동감을 전해 오는 소리들에게 반갑게 쫑긋 귀를 다. 휘부염하니 새벽이 밝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부지런히 울어대며 열려 있는 창문을 넘어 새날이 시작됨을 알려 온다. 넘쳐나는 생명력이 담겨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남향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바로 코 앞에 있는 짙은 나무숲과 그 속의 새소리를 만난다.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급경사를 이루는 조그만 언덕에 빼곡히 키 큰 나무들이 자라나 초록 일색이다.

 봄이면 아카시아 하얀 꽃뭉치들이 소담스레 늘어지며 은은한 향기와 함께 우아한 장관을 펼친다.

 햇볕 창창한 맑은 날에는 반짝이는 잎들을 자랑하며 하늘을 향하고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날에는 바람결 따라 빗발 따라 이리저리 온몸을 내맡기고 흔들리며 큰 파도가 일렁이는 듯 출렁출렁 넓은 초록빛 바다가 된다.


 주어지는 모든 여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내공, 쏟아지는 모든 자극에 점잖게 반응하는 여유는 바라보는 이에게 넉넉한 위로를 준다.

 이 작은 숲으로 작은 새들이 모여들어 보금자리를 이루고 있나 보다. 여름 한극성 떠는 매미까지.

 이제 곧 가을이 오면 여린 풀벌레들도 쌍쌍이 짝을 지어 그곳에 안전한 생명터를 마련하리라. 그리고 그들만의 노래를 보태겠지. 새들도 매미들도 잠이 들어 고요해진 밤무대가 그들의 화려한 공연장이 될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선물이다.

 뾰쫑뾰쫑, 빼쫑빼쫑, 쮜이익, 악악악, 아아악, 도도동, 찌르르르, 째애액. 또도도독, 아앙, 휘익, 휘이익, 찌직, 찌리리릭, 찌링, 삐요옹, 삐리이리 ᆢ.

 사람의 언어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각기 고유의 특이한 음색을 다양한 리듬감에 실어 노래하는 갖가지 새소리들이 고요한 새벽 공기 속에 넘쳐난다. 짧고 강한 단음을 반복하기도 하고 악기 연주의 한 소절쯤 되는 길이까지 길고 부드럽게 뽑아내기도 한다.

 열 종류도 넘는 새들이 모여 서로 화답하는 듯하다. 서로 질세라 자기만의 소리로 밤새 안부를 물으며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모양이다. 오늘 하루의 계획까지도 나누는 것일까? 활발하고도 진지한 소통의 장으로 여겨진다.

 짙은 녹음 속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풍성한 화음을 이루며 잔치를 벌인다. 경쾌하고 상큼한 소리의 잔치. 다이어트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조촐한 잔치.


 언덕 위 수십 년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의 풍성한 잎이 하루가 다르게 더 짙어지고 있다. 요즘 들어 한 차례씩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거의 매일 잠깐씩 쏟아져 내리는 한 줄기 굵은 비도 짙은 초록을 불러오는 데 한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도 아열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깊고 짙은 나뭇가지들 속에서 무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온갖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는 새들의 움직임을 상상해 본다. 나와 너의 살아 있음에 대한 반가움으로 서로를 격하게 반기고 격려하는 작은 모습들이 떠오른다. 저 발랄하고 독창적인 소리들에 어울리는 생기 있고 기쁜 몸짓들이리라. 마음으로나마 나도 그 몸짓들을 한번 흉내내어 볼까나?


 점점 대로변의 차소리 소음들이 커지면서 선물로 주어진 오늘 하루의 일상이 열리고 있다.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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