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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8. 2021

고기로 태어나서 1/2

   힘있는 고기인 우리와 맛있는 고기인 동물

 마음이 사람을 향하면 공감, 사물을 향하면 호기심, 사건을 향하면 문제의식, 미래를 향하면 통찰, 나를 향하면 성찰이 된다.

    ㅡ <강원국의 글쓰기>


 한승태 작가가 쓴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인간의 조건>과 <고기로 태어나서>.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서 쓴 아들의 피땀 어린 작품을 사람들이 한 권이라도 더 많이 읽길 바라는 어머니 양현주 교장 선생님의 뜨거운 모성애 덕분에 이 두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두 권 모두 스토리가 있는 일반 창작 소설이 아니라 사회의 어둡고 소외되고 버려진, 그러면서도 치열한 삶의 현장을 찾아가 그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기록한 책, 사회 소설, 노동 에세이라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치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서술, 생명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근거로 한 건강한 철학, 엄청난 독서와 문화를 경험한 작가의 깊고 넓은 정신세계에서 나오는 통찰과 해학적인 표현 등이 내가 느낀 이 작품의 마력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작가 한승태 작가는 '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작품에는 공감, 호기심, 문제의식, 통찰, 성찰의 다섯 가지 마음의 움직임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단조로울 수 있는 소재로 강한 주제를 풍요롭게 펼쳐 보일 수 있었다.


 먼저 사람을 향한 공감 부분을 말하고 싶다.

 양계장에서 만난 만식 아저씨와 스무 살 차이 나는 캄보디아 처녀의 국제결혼을 보고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한다.

ㅡ평소에 죄다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라고 투덜대던 그 삶, 전화 한 통화로 불러낼 수 있는 친구와 내 이름을 대고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과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 두 잔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을 수 있는 카페가 버스로 3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독하게 외로워서 부화장에 도착한 첫날 저녁 당장 도망가고 싶었던 그 고립감이 종이에 베인 상처라면 수개월 전 처음 만난 외국인 남자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친밀감을 요구받는 위치에 서 있는 그 캄보디아 처녀의 고립감은 마취 없이 외과 수술을 받는 정도일 것이다.ㅡ

 덧붙여 결혼 이주여성 10명 중 3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조사 자료까지 첨부해 놓았다.

 

 꽤 많이 등장하는 중국인 봉휘 아저씨의 이야기도 그 자체로 한 편의 소설이 될 정도다. 열정적인 중국인답게 즐거운 식사는 곧 즐거운 인생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멋진 요리 솜씨로 동료들을 해 먹이고 근사한 피리 연주를 하는 봉휘 아저씨.

  "나, 여기 와서 돈 쓰는 거 하나도 없어. 죄다 집으로 보내지. 우리 마누라가 내 인생을 붙잡고 놔 주질 않아. 내가 성공할 것 같으면 시기를 해서 훼방을 친단 말이야. 내가 그 여자 만나고 한 번도 편했던 적이 없어. 우리 마누라가 마음씨가 고운 사람인데ᆢ. 그 여자가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걱정이. 내가 자기를 버릴까 봐. 그래서 깽판을 놓는 거야. 그 여자가 그런 게 좀 있다고ᆢ".

 병든 아내의 왜곡된 사랑과 그것을 다 품으며 순응하는 남편. 안타까운 순정 소설 한 편을 읽는 듯했다.


 서울을 떠날 핑곗거리로 양계장을 택하여 떠났다가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져서 다시 닭을 키우는 세 종류의 시설인 산란계 농장, 부화장, 육계농장, 돼지를 키우는 세 종류의 시설, 종돈장, 자돈 농장, 비육 농장, 식용 개를 키우는 두 곳을 찾아가는 것은 사물을 향한 호기심을 말해 준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노동력만을 제공하기 위해서 마음을 싹 비워야 하는 끔찍한 작업 환경, 동물이 아무렇게나 낭비돼도 상관없는 물건으로 여겨지고 취급되는 사육 현장에서 자신의 행동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 등에서는 성찰이 녹아들어 있다.

  

  "짖지 마! 짖지 말라고! 내가 너네한테 뭘 어쨌다고 짖는 거야?! 나는 전태일이 누구인지도 알고 촘스키가 어느 대학교 교수인지도 아는 사람이야. 나는 저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나는 너희들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란 말이야!"


 나는 개 농장에서 뜻하지 않게 노예상의 위엄을 갖춰 가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귀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쇠파이프로 케이지를 때리면 개들은 즉시 바닥에 엎드리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ㅡ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사건을 향하는 문제의식과 미래를 향하는 통찰일 것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라는 미명 하에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변명으로 문제의식을 잠재워 버리는 우리 소시민들이 물질만능의 경제적 동물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는 동물도 사람도 자연도 다 고통 속에서 신음 소리를 낸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농축산업 종사자들은 일반적인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않기에 사장이 제대로 된 사료 대신 음식쓰레기를 개들에게 먹일 수 있게 해 줬고 산과 논을 더럽혀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고 노동자들을 혹사시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세상은 사장 같은 사람에게 특혜를 몰아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사장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푼돈을 위해 동물도 사람도 자연도 고통을 받는 것이다.


 '산 채로 썩어 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산란계 농장. 주황빛 전구 아래 만 마리가 넘는 닭이 철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울고 있는, 노린내와 닭똥 썩는 냄새가 가득한 건물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가로 세로 50cm 높이 30cm의 가정용 전자레인지만한 크기의 케이지에 서너 마리의 닭들을 구기고 찌그려뜨려서 집어넣어 키운다. 발광하며 몸부림치는 닭들. 좁아서 스트레스받아 서로를 쪼아대니 털이 다 뽑히고 피부가 벌겋게 멍들어 있다. 통로로는 통통하게 살 오른 쥐들이 오가는 곳.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만 수감시킨 정신병동 같은 곳.

 더구나 알을 쉽게 수거하기 위해 15도~ 25도 정도 케이지를 기울여 놓아 닭들이 편안하게 자리 잡고 쉬지 못해 안정적인 위치와 자세를 찾아 계속 움직여야 하는 곳.

 양계업이 살아 있는 생물을 다룬다고 1차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농장의 설비, 기계, 전기, 운영 시스템을 보면 제조업과 다를 게 없다. 이른바 공장형 동물 농장이다. 난각 번호 4번인 달걀 생산 환경이다.


 부화장에서 감별을 거친 수평아리들은 갈색 마대 자루에 발로 꾹꾹 눌러 담아 기계에 쏟아부어 갈아서 흙이랑 닭똥이랑 섞어서 비료를 만드는 데 쓴다. 상품으로서의 적합성, 즉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산란계들은 자연 수명이 20년인 닭을 한 달 반이 되기 전에 잡아먹어야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공장형 동물 농장에서 사육되는 돼지와 개도 혐오스럽고 두렵기까지 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닭이나 마찬가지다. 똥물을 맛볼 각오 정도가 아니라 쥐약을 맛볼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일할 수 있는 양돈장. 눈비에 그대로 방치된 케이지에 갇혀 썩은 음식물 쓰레기, 어떤 때는 구더기까지 우글거리는 짬밥을 먹고 살다가 올가미에 묶여 절망과 애원의 울음소리를 내며 끌려와 철봉에 매달려 목이 졸려 죽거나 두려움으로 전기봉을 덥석 물어 최후를 맞이하는 식용 개들의 일생.

  인간의 식욕을 채워주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의 출생, 성장, 죽음의 과정이 오직 인간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철저한 계산에 의해 극한의 비윤리적 상황으로 조작되고 통제된다.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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