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2.(금)의 일기
아홉 번째 책, 한강의 「흰」을 다 읽었다.
한참을 서성이듯 생각을 되짚었음에도, 나는 ‘인간다움’이 가진 모순과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결론지을 수 없었다. 나 자신 또한 그것에 포함되기에, 더욱이 어려운 것일까. 더 나아가 어떻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일까.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여유 없이 가득 찬 내면을 품고서, 어떻게 타인까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질식할 것 같은 분노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죽여왔는지 알아.
폭력과 희생이 둘 다 인간다움이라면, 나는 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걸까. 문득, 이 작가는 그 해답을 찾았을지 궁금했고, 이내 부질없는 질문임을 깨달았다.
이 작가도 싸우고 있구나. 답이 없는 의문을 끊임없이 안고서—하얀 돌 같은 침묵을 움켜쥐고—살아간다는 것으로 방증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인간답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서늘함을 가득 담은 침묵의 울림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살아간다는 무게가 이런 것이었다고, 그게 새삼스레 가슴을 짓눌러서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다지도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름답다고 느껴서 몹시도 슬펐다면, 당신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형용하려나. 나는 당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릅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내려앉은 듯 아팠다.
반드시 버림당한다는 것을 그렇게 투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얼마나 외로워야, 고독해야, 공허해야, 미련이 남아야, 미안해야, 애정이 남아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사람이란 이 정도로 처참히 불안정한데—어떻게 그런 온전한 마음을 품을 수 있나요.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본디 이런 것이라면, 그것 참 성질에 맞지 않네요.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아요. 하얗지만 아주 하얗지는 않아서, 고약한 나는 그 점이 좋은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