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는 공평하지 않다
드넓은 초원 사바나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TV에서 본 사바나는 무자비하다. 상처입은 동물은 예외없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고, 약자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고 도망다녀야 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약한 동물이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약육강식의 세계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말한다. 착한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선행을 베풀면 복이 오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기고 악행을 베풀면 벌을 받는 다고. 그리고 믿는다. 세상은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을 확률이 매우 높다. 우리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 태어나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공평할까. 현재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공평할까.
혹자는 말한다. 내가 결정하지 않은 자연선택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의 삶의 많은 것들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그러한 관점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네 삶에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 인생에 영향을 주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90%, 70%, 50%, 10%.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절대로 100%와 0%는 아닐 것이다. 매스텀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금수저,흑수저를 말하는 것이 나오는 것을 보면 50%는 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다. 우리 인생을 만들어 내는 것중 절반이 넘는 것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들 무엇할까라는 비관적 생각이 생길 수도 있다. 공평하다라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TV속 재벌들, 그리고 주위의 부자들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 나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는 비교하는데 서툴르다. 혹여 비교하다라도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공평한데 말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가지고 있다면 인류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세상은 각각의 요소들이 달라야 존재할 수 있고, 그러기에 불공평할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과 재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이런 불공평함이다. 불공평이라는 허들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곳에 도착했을때 우리는 불공평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고마워 보일 것이다.
불공평에게 감사하자. 내옆에 있어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