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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19. 2022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2013.8.27


느닷없이 웬 고추잠자리 타령이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 이제 여름이고, 이내 가을이 되면 고추잠자리야 온 하늘에 날겠지. 

길을 지나다 보니 어느 러브 호텔 이름이 ‘고추잠자리’로 되어 있어서, 기발한 아이디어라서 기가 차고 어처구니없다. 

 1978년에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니, 저녁이 되면 길 저편에 불을 환하게 밝힌 건물이 이따금 보여서,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 궁금하여, 동행한 일본인들에게 물어보니, 그게 그 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러브호텔이라는 것이고,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면 번호판도 가려주고, 투숙객 얼굴도 안 보고, 비밀을 지켜준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불륜을 비밀스럽게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장소라.... 그 말을 듣고 "이 녀석들 멀지 않아 망하고 말지..."라 생각하면서 혀를 찼던 적이 있다. 그런데도 망하기는 뭘….

 그러더니 언제부터 슬금슬금 우리나라가 러브호텔 천국이 되어 버렸다. 우스개지만, 아마도 그 많은 모텔 짓는데 들어간 돈이 너무 많아서, 3만 달러 시대에 빨리 진입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다 아는 불륜 조장소 같은 그거 규제하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주 자연스런 필요악 정도로 생각이 굳어진 것 같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하다가, "독재는 물러가라" 하다가, 사회생활도 정치판도 많이 바뀌어 수많은 개혁을 했지만, ‘도덕 재무장’ 같은 것은 아예 얘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우리도 한 번 들어가 보세”라는 마음을 가졌는지, 이 땅에 조선시대 ‘바른 생활 선생님’은 안 계시는지, 아무도 그런 것 규제하자는 사람은 없이, 동방 풍기 방기국가가 되어버렸다.

 펜션같은 여가를 즐기는 일은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휴식처를 제공하여 재생산의 활력을 제공하고, 또한 소비도 부추기니, 그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러브 호텔을 능가할 정도로 많지만, 부도덕과 불륜은 경제나 정치도 사회도 아닌 불건전한 마음을 부추길 뿐이고, 이제 동방예의지국 어쩌구 하는 말은 골동품상에나 가 봐야 찾을 수 있을 만큼 이미 사라진 지 오랜 이 나라를, 언제 건전한 생각을 갖도록 되돌릴 수 있을지 오지랖 넓게 걱정한다.

  목 좋은 곳은 방 하나가 하루 세 순배를 돈다나? 러브호텔은 이제 사람들의 투기의 대상으로까지 변질되었고, 요즘은 서울에 출장을 가서 잠잘 곳을 찾아도 초저녁에 러브호텔에 들어가기는 좀 어려워 밤 늦은 시간에나 들어갈 수 있다. 옛날의 여관이 줄어들어 잘 곳이 마땅치 않고, 호텔은 비싸니 시설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한 러브호텔에 들어가게 된다. 나도 출장 때 여러 번 이용해 봤지만, 참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더라. 


고추잠자리….

어쨌거나 아주 상상력이 기발한 사람이 지은 듯한, 이름 경진대회에서 그랑프리를 탈 것 같은 고추 잠자리 - 그 이름 한 번 자알 지었다.


*2022년 현재

몇 년 전부터는 간통죄가 없어졌다.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참 어렵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어떤 사람은 이러는 나보고 말하겠지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하나?”라고.

일단, 모텔이 뭐 전부 다 불륜의 장소가 아니라는 뜻은 내가 확실하게 나타냈다. 글 중에 내가 출장을 가서 숙박을 한다는 내용에 나와 있으니, 오해는 없을 줄 안다.

서울 복판 우리집 부근에도 모텔이 하나 있는데, 다시 보고 깊이 생각하니 이 이름도 기발나다. ‘야 자’다. 오래 전 뭐 “야 타!”가 유행하던 말이 생각나는 ‘야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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