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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19. 2022

재깨미 올라 봤소?

재깨미 올라 봤소?

2019.4.10


여자들은 뭐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재깨미 오르는 일'은 옛날 시골 유소년들의 아픔이었지요.

"재깨미 오른다"는 말 아시나요? 

재깨미란, 기왓장을 깨어 부숴서 가루로 만든 상태의 물질을 말하고, 그 가루는 명절 때 놋그릇 닦을 때 짚에다 묻혀서 썼지요. 지끄므는(지금은) 명절에 시골에서 놋그릇 닦는 일도 드물 거고, 기왓장 갉기(가루) 대신에 다른 약품이 나왔으니 소년들이 재깨미 오를 일은 거의 없어서, 우리 어른들조차 재깨미라는 단어 자체를 거의 잊어버리다시피 됐지요.


혹시 남자님들. 옛날에 깐날에 재깨미 한 두번씩 올라본 적이 없다면, 내 감히 말하는데, 그대는 '촌냐'(또는 ‘촌니나’)라고 보기 어렵지요.

명절 준비하느라고 어멍이-고모-할멍이다 모여서 놋그릇 반질반질하게 닦으니 소년들이 주변에서 뛰놀다가 재깨미를 만지게 되고, 뭐 그러다가 소변본다고 고추를 만졌다가 그만ㅡ아차ㅡ아이고ㅡ저런! 고추 끝이 퉁틍 붓는 것을 재깨미 올랐다고 말하지요.

 고추를 안 만지면 되는데, 참 나 원. 남자들은 그게 안 돼서….

그렇게 틍퉁 부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냥 퉁퉁 붓는다니까 글쎄. 어쩌냐? 실물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나훈아처럼 보여주는 척이라도 할까? 

그래도 며칠 지나면 낫긴 다 나아요. 아무 처방도 안 했고, 그냥 내비뒀을 뿐이고, 하여튼 간에 그 때 다 나았으니 어른이 되도록 탈 없이 살고 있지요.


이제는 나도 손자 고추 따 먹는 흉내 내면서, "아이고 우리 간지(강아지) 꼬치(고추) 맛있다"라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으니 뭐, 재깨미 오르는 얘기 좀 한다고 해서 아직도 민망스럽게 생각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노인들은 이제는 없겠지?

 가만있어 보자 내가 왜 갑자기 재깨미 얘기를 꺼냈지?

응! 손자 녀석 기저귀 갈다가 옛날 생각이 났고, 무엇보다 '재깨미'라는 재미난 아픔의 추억이 서린 우리 말이 아주 영영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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