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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일상의 정서

일상의 정서

2012


30년 전. 일본 히타치 시에서 본 가로수 모습은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그곳은 플라타너스가 길 양 쪽에 늘어섰는데, 계절이 추운 때라서 잎은 다 떨어져 없었지마는 가지치기한 나무들의 모습이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일본 특유의 아름다운 가지치기 기술을 본 듯 그 기억이 생생하여 그 후 우리나라에서 가로수 가지를 자른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이 겨울에도 아무 모양도 없는 가로수를 보면서 실망이 크다.

 차라리 가지를 치지 않고 마음껏 자라 터널을 이룬 청주시 입구의 플라타너스 길을 보는 게 훨씬 낫지, 서울이든 지방이든 높은 바가지 차를 타고 그저 뭉텅뭉텅 가지를 잘라버리는 작업 광경을 보노라면 속이 편치 못하다. 작업자들은 미적 감각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맘대로 잘라버리거나, 금년에 새로 난 가지들만 골라 다 잘라버리거나, 어떤 때는 아예 나무 높이를 싹 낮추려고 몸통을 싹둑 자르기도 한다. 

적송 같으면 소위 목이 잘렸으니 죽어버릴 텐데, 생명력이 강한 플라타너스는 어디를 잘라도 거기서 또 새 가지가 움터 오른다. 

가로수를 아름답게 가지 자르기 하는 일이 어려운가? 

전문회사에 맡기면 작업예산이 많이 들어서 그럴까? 언제쯤 우리도 히타치市 같은 가로수 예술감각을 일상으로 들여올 수 있을까? 생활 속의 여유요 멋인 이런 정서는 소득 4만 달러쯤 되어야 누릴 수 있을까나?


우리 생활 곳곳에는 여러 종류의 미적 감각, 예술적 형상, 아름다움에 대한 부족이 많이 눈에 띈다. 일상에서의 정서라…. 

요즘 많이 달라지고는 있다. 전선 지중화로 도시가 쌈빡해지고, 간판도 울긋불긋 자극적인 모양에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색과 크기로 바뀌고 있다. 전봇대나 전기설비에 종이가 붙지 못하게 돋을돋을한 돌기를 가진 플라스틱으로 전봇대의 눈높이 부분을 감싼다.

지하철 선반 위에 신문을 두지 못하게 하거나, 디자인 서울이라 해서 도시를 디자인 개념으로 격을 높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어 다행이다.

집안에서부터 정서적 감각을 살리기 어려운 생활을 하는 우리가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되지만, 앞으로 일상에서부터 품위를 높이는 노력을 좀 더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런 작은 노력을 조금씩 더 하는 가운데서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오래오래 전에 우리 조상들은 곡선과 직선의 조합을 아름답게 만든 첨성대나 기와지붕, 도시를 만들고 가꾸었다. 건축물 하나에도 담장에도 예술이 있고, 문화가 있고, 스토리가 있었다. 

풍류와 멋을 알고, 여유와 품위를 지녔던 것인데, 언제부터이겠는가? 조급하고, 조잡하고, 빡빡하고, 제멋대로인 물건이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은!


아름다움은 과한 것에 도를 지키게 하고, 격한 것에 숨을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정서는 사람을 여유의 세계로 안내하고, 그 자체가 삶의 품격이요 가치이기 때문에, 예술품이 꽉 들어찬 유럽을 보면 문화의 선진국이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날, 비록 벌거벗은 나무지만 푸른 잎 대신 아름다움을 뻗친 가지를 생각하며 생활 속의 정서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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