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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닳코지와 다여사

닳코지와 다여사

2013.8.15


닳코지란, “신발이 닳더라도 코 큰 놈 지갑 주우러 다니는 놈”의 준 말로, 신발 닳을까 봐 아까워서 다니지 않는 사람의 반대말이다. 이건 친구 심병섭이 들려준 말인데, 종가집 자손인 그와의 대화 중에는 종가집에서 오래 묵은 ‘묵은 김치’ 같은 말들이 가끔 나타난다. 참 재미있는 말 아닌가? 

일전에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하던 말이 하도 재미있어서 술김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에 메모했을 정도다. 이제 그 말을 주제로 글을 쓰려니 재미있게 한다고 줄인 말 ‘닳코지’를 만들어 냈다.

병섭은 30대 젊은 시절에, 우리나라가 동구권과 수교도 안 된 시절에 이미 동유럽 국가의 국경을 뚫고 다니면서 무역을 하던 인물이니, 나처럼 ‘다여사’(다리가 여섯 개인 사람의 준 말)와는 전혀 다른 개척자의 삶을 산 사람이다. 그야말로 친구는 닳코지였다.

그런데 나는 왜 ‘다여사’ 즉, 다리가 여섯이뇨 하니, 원래 내 다리 두 개에다 책상다리 네 개를 합치면 그렇다는 것으로, 뭐 이룬 것도 없이 맨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내 스스로 나를 보고 만들어 낸 말이다.

병섭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의 어느 나라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통역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국교도 없던 유럽 여러 나라들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우리 상품의 수출을 했던 일은, 2011년 말 한국 무역 연간 1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룬 기초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닳코지란 늘 적극성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얻어걸려도 걸린다는 말이다. 그 말뜻은 분명 알겠는데, 그런 사례도 분명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나는 신발 닳는 걱정을 먼저 하는 성격이다 보니, 친구의 말을 듣고도 그렇게 하지 못하여 느끼는 바가 많다. 

오늘도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냐, 아니면 책상을 박차고 밖으로 나아가 세상과 부딪칠 것이냐?”로 나는 고민이 참 많다.


다른 친구 사진작가 김봉선의 이야기다. 

그는 60 중반 나이에 한라산에 370번이나 올라갔다 왔지만, 히말라야에도 세 번 다녀왔다. 히말라야는 5,500미터 트래킹을 했는데, 일반인들은 그냥 걸으면 되지만, 그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메고, 일행들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촬영을 해야 하니, 트래 킹이 아니라 ‘트래 신하’였을 게다. 별을 촬영하려면 일행들이 잠자고 있는 시간에도 깨어 있어야 하고, 일출을 촬영하려면 일행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귀국해서 보름이고 한 달이고 그 후유증에 병원신세를 져야 하니, “다시는 안 간다”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하겠는지…. 그러고는 한 두 달만 지나면 그는 “또 간다. 고뱅이(무릎)에 피가 도는 한 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정신나간 놈이라고 말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처럼 신발이 닳도록 쫓아다녀야 사진이 얻어진다. 그도 닳코지다.


“닳코지여, 가거라! 가서 얻어오라. 설령 거기서 어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거라”라고 마음으로 응원해 준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머리 속에서 백 번 히말라야를 그리거나, 네팔의 눈물이 스민 노래 ‘레쌈 삘릴리’를 백 번 천 번 들어 봤자 사진 한 장 얻을 수 없는 일. 

“닳코지여! 나가라 나가서 얻어오라” 나서야 한다. 나가야 사진을 얻는다. 어떤 날씨라도 카메라를 메고 나가지 않으면 작품을 얻을 수 없다. 


다여사인 나는 나름 나를 합리화시켜본다.

“다여사여, 쓰라! 글을 쓰라! 써야 크리에이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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