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우 아빠 Sep 26. 2022

선유도 (심사정)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다

선유도(船遊圖) - 심사정 (출처 : 공유마당 CC BY)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자한편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지혜와 어짊과 용기는 어느 정도의 비율로 사람에게 존재하는지 명확히   없습니다. 누구는 지혜롭고, 누구는 어질고, 누구는 용감하다고 칼같이 나누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성격과 태도가 개성에 따라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부모의 유전자로부터 본성을 물려받습니다. 같은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라도 부모가 가진 유전자의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도 있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 때문에 애태우기도 하며, 별 것 아닌 것을 보고도 크게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위의 구절이 정확이 어떤 상황에서 언급된 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르게 성장한다면 미혹과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공자의 조언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다만,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착하다고 모두 어진 사람이 아니며, 겁이 없다고 전부 용감한 사람은 아닙니다.


 인간은 어떤 성향으로 태어나든지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성격과 재능의 모든 장점을 다 가질 수 없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배움과 실천으로 채워나가면 됩니다. 그것이 자신보다 힘이 센 동물들의 위협을 이겨내고 인류가 살아남은 진화의 유전자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진화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선택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지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어쩌면 지혜와 어짊과 용기는 불필요한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르게 자신의 앞길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따라붙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어진 일을 뛰어나게 잘해도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아서 근심과 두려움을 미리 차단하는 것도 지혜로운 삶의 한 단면입니다. 일을 많이 벌이면 벌일수록, 사람을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근심과 두려움이 발생하는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발생하는 근심과 두려움이 버겁다면 가급적 그러한 것들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면 됩니다.




 심사정은 증조할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낸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영의정은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조선 최고의 관직이었습니다. 집안에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대로 가문의 영광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의정을 배출한 가문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문의 명예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심익창(沈益昌)이 과거 시험의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고, 그 이후에 또 역모에 가담하면서 급격하게 가문이 몰락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심사정은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신분을 물려받았습니다.


 심사정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많았다고 합니다.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아버지 심정주(沈廷胄)로 추측됩니다. 심정주도 아버지 심익창의 영향으로 관직을 얻지 못하는 신분이 되자 문인화가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포도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린 심사정에게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심사정도 과거 시험을 보지도 못하고, 관직에 나아갈 수도 없었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위로를 아버지에게서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친척 심익운(沈翼雲)이 쓴 현재거사묘지(玄齋居士墓志)에 의하면 심사정은 50년간 근심과 걱정에 시달렸지만 단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양반으로 출세할 길이 막히고,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는 명문가의 자손이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파는 일이 수치스럽게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몸이 불편할 때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아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26세부터 그림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지만 가난으로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뛰어난 예술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는 상업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고, 심사정이 양반이었기에 체면상 드러내 놓고 작품의 가격을 흥정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가 사망했을 때에도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의 형편이어서 심익운이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장례비를 마련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선유도(船遊圖)〉는 배를 타고 노는 그림을 말합니다. 심사정의 뱃놀이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방이 보이지 않는 안개로 자욱합니다. 파도가 꽤 거세어 언제 배가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한 상태입니다. 파도를 이겨내려는 사공은 있는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불안에 떨어야 할 두 명의 승객은 너무나 느긋합니다. 근심과 두려움이 없는 자세입니다. 팔을 짚고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어떤 종류의 긴장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배 뒤쪽에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가지런한 꽃병과 책들이 보입니다. 거기에 한술 더 뜬 나무와 학이 분위기를 몽환적으로 끌고 갑니다. 좋지 않은 날씨에 자신들의 물건을 꼼꼼히 챙겨 배에 오른 이들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요? 두 명의 선비는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요?

이전 06화 표모봉욕 (신윤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