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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디자이너 Mar 29. 2021

엄마의 아우라

치유 넷.

엄마의 삶의 여정



 엄마에게 후광이 보였다. 책을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타로의 ‘여황제’ 같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마의 지나온 삶과 외모, 말투에 단서가 있지 않을까? 그것들이 모여서 ‘엄마의 아우라’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빛을 엄마에게 발견한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35년 전인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엄마가 미싱으로 옷을 만들거나, 텃밭을 매거나,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에도 엄마에게 빛이 보였다. 엄마 몸의 외곽을 따라 알 수 없는 빛이 반짝였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내게 특별했다. 나는 평소 엄마가 하는 말에 어떠한 대꾸도 없이 공손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늘 새벽 5시면 일어나 밥을 준비했고, 두 명의 언니와 나의 머리를 정갈하게 땋아주고, 우리가 학교에 가면 집안일을 하고, 짬을 내어 뒤뜰에 고추와 깨를 수확해서 고춧가루와 들기름을 짜서 팔고 살림에 보탰다. 엄마의 하루는 48시간 같아 보였고, 늘 쉬지 않고 몸을 썼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외모에도 신경을 썼다. 집에서도 투피스로 된 긴치마를 입었고, 어깨까지 닿는 파마머리를 매일 아침 드라이로 만지고, 연하게 풀 메이크업을 했다. 44 사이즈를 몸매를 항상 유지하며 당신의 옷을 만들어 입고, 자식들 옷도 손수 만들었다. 직접 디자인한 어깨에 뽕이 많이 들어간 공주 같은 옷을 입은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평소 엄마는 말을 아꼈다. 그래서 말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꼭 해야 할 말만 차분하게 했을 뿐 따지거나 짜증을 내거나 흥분하지도 않았다. 차갑거나 무뚝뚝해 보였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의 흉을 본 적도 없었다. 이런 엄마에게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소문난 잉꼬부부로 사이도 좋았었다. 친목회에서도,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엄마 나이 40살에, 아버지가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고, 바람난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엄마는 모든 걸 놔버렸다.  





  살림도, 밭일도, 우리를 돌보는 일도 뒤로한 채 엄마는 온종일 전화기와 미싱만 붙들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얼굴은 시커먼 기미로 뒤덮었고, 점집을 의지하며 여기저기 부적을 붙이고, 우울증으로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 어떨 땐 집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밤새 옷을 만들기도 했었다.





 이제 예전 엄마는 없었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짜증이 솟구친 날에는 나의 작은 잘못에도 나를 때리거나 욕설을 했다. 엄마의 분노가 온 집안을 가득 메웠다. 엄마는 남편이 미워지니 자식새끼들과 살이 닿는 것도 싫다며, 가시 같은 말을 했다. 그때쯤 엄마가 아끼던 집안 곳곳에 식물들은 하나둘 죽어갔다. 결국 이혼만은 하지 않겠다던 엄마는 아버지의 끈질긴 협박과 폭언과 폭행 끝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자신의 짐만 싸서 집을 나갔다. 엄마 나이 43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는 집을 떠났다.

 



 엄마와 떨어져 산 지 3년 후, 자식들이 새엄마와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엄마는 1년간 힘겨운 양육권 소송을 했다. 재판에 이기면서 4남매를 엄마가 데리고 왔다. 내가 중3이었고, 엄마는 46살이었다.




  살림만 하던 엄마는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액세서리 가게를 하다가 돈이 되지 않자, 결국 재고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여관을 인수했다. 매일 여관 청소를 하고 이불 빨래를 하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엄마는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다. 긴 웨이브 파마를 하고 투피스를 정갈하게 입고, 청소하러 방마다 다니면서도 10센티가 되는 통굽에 매일같이 올라탔다.





  엄마는 그렇게 여자임을 놓지 않았다. 7년간 여관 일을 하면서도 엄마의 외모는 고생이라고는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피곤한 기색 없이 단단했다. 내 눈에 엄마는 절대 늙지 않을 것처럼 젊고 예뻤다.





  그러던 중 큰 사건이 생겼다. 아버지는 엄마가 운영하는 여관을 탐탁지 않아했고, 엄마에게 매일같이 전화해서 애들 교육상 좋지 않게 여관을 한다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엄마는 여관을 정리하면서 사채를 써서 무리하게 노래방과 노래 주점을 인수했고 이자가 급속도로 불면서 엄마는 해서는 안 된 선택을 했다. 사채를 엄마의 목숨과 맞바꾸려고 한 것이다.





  많은 양의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 했으나, 다행히 알고 지내던 아저씨의 도움으로 생명에 지장 없이 회복했다. 그 후 아저씨는 나의 새아버지가 되었다. 이후 사채업자들이 자식들에게 접근하려고 하자, 엄마는 장사하던 가게를 모두 사채업자에게 주저 없이 넘기고 손을 털었다.  

  




  엄마 나이 56세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리고는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구제 옷 장사를 시작했다. 새벽같이 재활용 의류 창고에 가서 5~6시간씩 쓸만한 옷을 찾고, 킬로로 헌 옷을 사다가 팔았다. 잠은 가게 평상을 깔고 잤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가게 옆에 있는 함바집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원룸을 얻어 생활했다.





  그때쯤 엄마는 엄마와 평생 한 몸이었던 거들을 벗었다. 가슴과 배와 엉덩이를 꽉 조이던 올인원은  여기저기 구멍 나고 뜯어져 있어 제 기능을 못 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늘 허리까지 길게 풀고 다녔던 엄마의 긴 머리를 하나로 틀어 올렸다.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세미 정정들과 투피스를 버리고,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과 주머니가 많이 달린 작업용 조끼를 입기 시작했다. 10cm 통굽에서도 내려와 운동화를 신었고, 허리엔 힙 색을 차고 다녔다. 그 가방은 엄마의 은행이었고, 전 재산이었다. 엄마는 시골 장사꾼이 되었다.





  그래도 어려운 자리만큼은 한껏 차려입던 엄마의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 엄마 나이 61세, 내 대학원 졸업식 날 엄마는 전혀 꾸미지 않은 화장기가 없는 푸석한 얼굴에, 낡은 검은색 패딩을 입고, 어깨에 둘러메는 네모난 큰 가방을 메고, 얼마나 입었을지 모를 무릎 나온 바지에, 빨지 않아 때가 꼬질꼬질한 낡은 운동화를 구겨 신고, 새아버지와 나타났다.


언니들은 엄마에게 이런 자리 오면서 꾸미지도 않았다고 한 마디씩 했다.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엔 나도 친구들에게 엄마와 새아버지를 소개하는 것이 창피했다.



  그런데 그날 한껏 멋을 낸 사람들 사이에서 새아버지를 향해 활짝 웃고 있던 엄마에게서 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보았던 엄마의 아우라가 다시 보였다. 삐뚤어진 누런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시골 아줌마 같은 모습이었지만 엄마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나는 한참을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모습을 언제 보았던가? 내가 어릴 때 엄마가 거실에서 고무나무를 닦아주는 그때의 모습처럼, 아주 오랜만에 평온을 찾은 듯 보였다. 그 당시 엄마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엄마가 새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엄마가 새아버지와 사귈 때 동네에서 우연히 엄마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새아버지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고, 그 뒤에 헬멧을 쓴 엄마는 아버지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이던 오토바이가 출발하자 엄마의 입 모양에서 '와아' 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오토바이에 탄 엄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헬멧 밖으로 나온 엄마의 긴 머리카락과 옷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엄마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들이 가루가 되어 날아가길 바랬다. 그간 4남매를 키워내기 위한 엄마의 헌신, 친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엄마가, 새아버지와의 시작된 사람의 힘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새아버지는 작은 키에 변변한 직장도 없어 자식들이 탐탁지 않아하는 아버지상이었음도, 새아버지는 분명 하늘이 엄마에게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새아버지 앞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엄마의 낯선 모습을 보며 서 말이다.    



  한 시간이 넘게 책을 보고 있는 칠순이 넘은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한테 보이는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식들을 향한 사랑의 힘일까? 힘든 세월 인내한 연륜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를 알 때쯤 나도 엄마와 같은 아우라를 갖게 될 수 있을까?




  지금 엄마는 타로의 '여황제'처럼 화려한 드레스도, 별을 많이 단 왕관도, 황금봉도, 멋진 의자도, 아름다운 자연에 머물고 있지 않지만, 엄마는 나의 영원한 여황제다. 나는 그녀가 4남매를 키우며 꾸역꾸역 살아낸 삶을 존경한다. 




...

내 아픔을 털어내니 엄마의 삶을 쓸 수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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