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성장 시기에 따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제 막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즈음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또 이제 막 자기 정체성의 늪에 빠져 고민하기 바쁜 청소년기에는 "장래 희망이 뭐야?"라는 황당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할 때 나란 존재에 대한 의문을 쌓는다. 나는 엄마가 더 좋은데... 아빠한테 죄를 짓는 건가? 나는 아직 뭐가 될지 모르겠는데.. 내 인생은 망했어. (실제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장래희망을 적으라는 설문조사 후 내게 뱉어낸 고백이다. 물론 나도 대학을 간 후에도 내 장래희망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채식을 한다고 공개를 하면 사람들은 다시 곤란한 질문을 쏟아낸다. "왜 고기를 안 먹어?" "환경운동가야?" "채식을 하는 이유가 뭐야?""그런데 아이들은 고기를 먹이고?" 이런 질문들을 받다 보면 나 자신은 엄청난 모순 속에 고립되곤 한다. 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야지 채식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내가 왜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고민과 방황 속에 허우적대던 나의 20대가 막을 내리고 결혼과 함께 나의 30대를 시작한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육아와 공부와 시험과 일의 쓰나미를 견뎌내느라 난 항상 존재에 대한 공허함을 안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남편이 필리핀 세부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고 나에게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좋은 핑계가 생기고야 만다. 이제 나도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아내 노릇을, 그리고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구나!
그런데 인생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내 인생의 새로운 그라운드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아니었다.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이상 혼자 상상했던 이상적인 그림 안에 살 수 없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직시하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가 가슴 깊이 새겨지고,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고통을 느끼며,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고 다스릴 방법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렇게 요가와 명상을 시작하고 예전부터 좋아했던 법정 스님과 류시화 작가의 책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인용된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읽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사과만 먹고 나의 몸을 정화시켜 본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배고픔 만이 음식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하는, 미각이라고는 전혀 발달하지 않은 나에게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깨끗한 식단은 최고의 선택지임에 분명했다. 다시 채식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이왕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기로 한다. 당시 필리핀에는 집안일을 도맡아 주시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매끼를 챙겨야 한다는 주부로서의 의무감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자연식물식은 나에게 이상적인 식단이 되어 주었다. 매일 일기장에 내가 먹은 음식들을 그려 넣고, 뭔가 몸과 마음이 같이 가벼워지는 최고의 경험을 하며 이제는 비견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에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지금 내 옷장에 가죽 재킷이 있고, 오리털 점퍼도 있다.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비싼 천연 가죽 신발도 있다. 매일 단백질 섭취를 위해 계란을 하나씩 먹고 있고, 우유가 가득 담긴 라테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