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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29. 2024

칭다오, 악마개가 쥐를 잡아먹는 회사

호구여도 괜찮아 #14

나는 어린 시절, 가끔씩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사람들이 나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이다. 불안해하며 아래를 보니 바지를 안 입고 나온 것이다. 나는 머리가 쭈뼛쭈뼛 서며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나에게는 첫 직장이 그렇다.


십오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의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의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했고, 베이징에 사옥을 가진 회사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나의 첫 직장이 악마개가 쥐를 잡아먹는 회사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나의 과거를 사랑하지만,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월급을 봉투에 담아 주며, 기사 자리를 두고 독을 넣은 차를 선물하는 회사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다.


그런데 경비 아저씨는 왜 사장님 허락도 없이 악마개를 두 마리나 회사에서 키웠을까?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던, 나의 첫 직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말 여기가 회사 맞아요?


2010년 3월, 중국 칭다오시, 스물여덟의 나는 작은 페인트 회사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출근길, 마치 취업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회사 차량은 중국 산동성 깊숙이 위치한 이름 모를 장소로 나를 데려갔다. 작은 화학 회사들이 모여 있는 산동성 공장 지대 한편,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 정도 되는 회사에 도착했다. 단층 건물의 사무동, 네 평 남짓한 구내식당, 그리고 그 뒤로는 페인트를 만드는 제조 공장과 맞은편 창고가 각각 자리하고 있었다.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네 명의 직원이 나를 반겨주었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총 15명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다정하고 똑똑한 분이셨지만 자칭 '헤비 스모커'로, 화학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서 항상 담배를 물고 계셨다. 기술은 팡(胖: 뚱뚱) 과장, 총무/인사는 주(酒: 술) 대리, 영업은 내가 맡았으나, 사실 모든 것을 사장님이 책임지는 전형적인 소기업이었다. 나는 30분 정도의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다.




기술을 맡은 팡(胖: 뚱뚱) 과장은, 체중이 100Kg이 넘다.

팡 과장을 보고 있으면 북한의 김 씨 부자가 떠올랐다. 자주 입는 체크무늬 셔츠에 억지로 채워진 단추는 금방이라도 질 것처럼 힘겨워 보였다. 햇살에 나오면 색이 파랗게 변하는 작고 네모난 무테안경은 팡 과장의 트레이드마크로 볼록볼록한 두 볼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팡 과장은 울릉도가 고향으로, 사람은 순박했지만 지독히도 게을렀다. 사장님이 안 계신 날에는 사무실 의자에 누워 온종일 영화나 쇼프로며 키득키득 웃었다. 팡 과장 옆의 정수기 물받이에는 팡 과장이 먹다 버린 커피가 오물처럼 가득 차 있었, 늘 넘칠락 말락 아슬아슬해 보였다. 비위가 좋은 편인 나도 속이 안 좋은 날은 차마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팡 과장은 중국 직원들과 실랑이가 많았다. 따금씩 불룩한 배 위에 손을 가지런히 얹고, 배시시 웃는 미소와 함께, 특유의 경상도 사투로, "춘자야~ 내~ 커피 한잔만 타도~"라고 말하며 총무 직원인 춘자를 시험에 들게 했다. 옆자리에서 똑 부러지고 경리를 맡은 혜란이는 조선족 특유의 악센트로 "과! 장! 님! 커피는 과장님 손으로 타드세요!!" 라며 고민하는 춘자를 대신해 팡 과장으로부터 지켜줬다.


틈만 나면, 기술을 맡은 조선족 기 대리나, 생산을 맡은 왕 반장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팡 과장에게 큰 소리로 따져 묻고 싸우곤 했다. 이런 일이 일상이 되자, 나는 싸움 구경에 재미를 붙여, 모든 대사를 외워 회식장소에서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생산 공장에는 왕 반장과 제조직 직원들이 페인트가 여기저기 묻은 작업복을 입고 바닥에 누워 자는 경우가 많았다. 힘든 일을 서로 미루다 크게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 번은 회사 소유의 드럼통을 몰래 팔던 직원들이 담벼락 옆 CCTV에 찍혀 중국 경찰이 회사에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


상식적인 사람을 찾는 것이 이곳에서는 최대의 소망처럼 느껴졌다.




총무를 맡은, 주(酒) 대리는 한 집에 사는 입사 동기였다.

다른 회사에서 약 1년간 근무하고 온 중고 신입으로, 그는 중국에 평생 살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했다. 주 대리는 매일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아, 엘지 트윈스 야구 경기를 보며 욕을 섞어가며 열렬히 응원했다. 칭다오에 있는 진로 소주 공장에서 소주를 박스로 사다가 매일 두 병씩 마셨다. 나 역시 퇴근하면 불투명 유리 미닫이 문으로 분리된 작은 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주 대리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칭다오에서 슬럼프를 겪으며 나도 적지 않은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주 대리와 나는 왜 우리가 이 작은 회사에 동기로 입사했는지 자주 궁금해했다. 주 대리의 전임자는 중국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15일간 구류소에 갇혔고, 그 경험 이후 공안에 대한 공포심으로 한국에 복귀했다고 들었다. 나의 전임자는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집에서 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대로 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과 외근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공장 직원들끼리 지입차 기사 자리를 두고 싸운 사건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화학 공장은 일이 힘들 뿐 아니라, 화학 원료의 냄새를 맡아야 하기에 제조직을 오래 하는 것은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우리는 제조회사였지만 대리점처럼 페인트를 소량 구매하는 고객들에게도 직접 납품을 해야 했는데, 이때 차와 기사가 꼭 필요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공장장인 왕 반장이 기사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기존 직원과 한 달 정도 서로 윽박지르며 싸우고 사장님께 하소연을 했다.


어느 날, 샤오한이라는, 나를 잘 따르던 동생 같은 기사가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집으로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샤오한은 차에서 쉬었지만 좀처럼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고, 결국 눈이 안 보인다며 병원에 갔다. 몇 시간 뒤, 샤오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오전에 왕 반장(공장장)이 자신에게 차 한 잔을 주었는데, 아무래도 왕 반장이 차에 무언가를 넣은 것 같다고 했다. 또, 회사로 사람들이 찾아오니 다치지 않게 숨어 있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샤오한은 동북 하얼빈 출신으로, 그의 주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어 그들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왕 반장에게 달려가 집이든 어디든 빨리 숨으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 4명이 허리에 작은 칼을 차고 왕 반장을 잡으러 회사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왕 반장이 어딨냐며 회사 책상을 뒤엎고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그들은 돌아갔고, 본인을 찾으러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왕 반장은 겁에 질려 일주일 뒤에야 출근했다.


결국 샤오한은 마음이 상했다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왕 반장은 기사를 포기하고 공장장으로 남았다. 20대 초반에는 나도 중국인들과 다투기도 했지만, 이 사건 이후 중국 휴게소에서 혼자 차에 남겨질 때면 문을 걸어 잠그는 습관이 생겼다.




회사를 실제로 운영하는 건 한국인이 아닌 영리한 조선족 직원들이었다.

기술 업무는 기 대리, 인사/총무 업무는 춘자, 경리 업무는 혜란이가 담당했다. 사장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일하는 이들은 각 50만 원, 40만 원도 못 되는 월급을 받았지만, 수백만 원을 받는 팡 과장, 주 대리, 혹은 나보다도 더 자기 몫을 잘 해냈다. 조선족들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도 많겠지만, 우리 직원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착한 심성을 가졌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심심치 않게 밥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경비 아저씨와 식당 아주머니가 대판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경비 아저씨가 키우는 킬베로스를 닮은 검은 개 두 마리(우리는 그들을 악마개라고 불렀다)는 마치 쥐를 잡는 일이라도 맡은 듯 회사 안을 자기 집처럼 마음껏 뛰어다니며 여기저기서 쥐를 잡아왔다.


악마개는 이름처럼 사나웠다 (사진출처 : burrardlaw.com)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몸은 편했지만, 여기가 제대로 된 회사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영업직인 나는 가능하면 외근을 다녔다. 영업 부서는 총 4명으로, 나는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팀장 역할을 했다. 매일 아침 사장님께 당일 업무와 한 주 예정인 업무를 꼼꼼히 보고했고,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했다. 하루에도 백 통 넘게 전화가 왔기에 운전하면서도 휴대폰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객 담당자는 대부분 중국인으로 업무의 90%가 중국어로 진행되었기에 중국어 실력이 매우 중요했다. 나는 중국어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업무는 미숙했기에 사장님 어깨 뒤에서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루의 반은 전화를 받았고, 나머지 절반은 고객을 만다.


그렇게 반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사장님과 고객들은 성실하고 중국어를 잘하는 나를 좋아했다. 봉투에 담긴 월급을 현금으로 받을 때면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지만, 내가 제대로 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이 맞는지 늘 고민스러웠다.


나는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 없는 신입이었기에, 이 회사가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내가 이곳에서 경력을 쌓아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근을 다니며 고객들과 직접 만나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제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보람을 느끼고 좋아했다.


왕 반장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사람의 기억은 조작되는 걸까.

난 칭다오 생활을 외로워했고 많은 부분이 고민스러웠지만, 꽤나 낭만적으로 기억한다. 혼자 운전하며 산동성 안 가본 곳이 없고, 운전하며 듣던 비틀스 노래는 마음을 울리곤 했다. 주 대리, 춘자, 혜란이, 샤오 한 모두 친하게 지냈고 주말이면 함께 바다에 놀러 가고는 했다. 난 첫 직장과 칭다오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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