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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31. 2024

페인트로 얼룩지는 명품 넥타이

호구여도 괜찮아 #15


도쿄에서 온 하늘색 실크 넥타이


2009년, 밥왕의 꿈을 가진 친구, 일본으로 초밥 유학을 다녀왔다.

고등학교 2학년, 강원도 작은 에서 시작, 우리는  년이 넘 꿈을 향한 도전을 함께했다. 친구는 에 꼽히는 명문대를 갈 수 있지만, 스스로 정한 밥왕의 꿈을 위해 호텔 조리학과에 진학했다. 십 년 동안 오직 초밥만 생각하 살았다. 친구 책장에는 일본어로 된 초밥 관련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작은 글씨로 빼곡히 채운 포스트잇들이 페이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친구 한국에서 초밥으로 최고로 인정받는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가게 사장님은 친구가 일을 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친구의 일본 유학을 준비해 주셨. 사장님스스로 친구의 후견인이 되어 주셨고, 일본 도쿄의 밥 장인에게 친구를 자로 받아달라고 부탁셨다. 친구는 도쿄 장인(할아버지) 제자가 되어 초밥은 장인으로부터, 가게 운영은 그 집의 사모님께 배웠다고 했다.


일본의 장인정신문화를 각하면, 일 년 동안 좀처럼 무엇하나 쉽게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고 들었다. 그러나 친구는 장인으로부터, 초밥에 대한 진성을 인정받았고, 장인(스승님)은 친구를 손자처럼 1 동안 데리고 다니며 밥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고 하였다.


친구가 일한 초밥 가게 사장님(스승님)의 인터뷰에서, 초밥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 소개하고 싶다.


질문 : 초밥의 고향이 일본에도 몇 차례 연수를 다녀오셨는데 어떤 점을 배워왔습니까.
답변 : 신라호텔과 기술 협약을 맺고 있던 일본 오쿠라호텔 연수를 갔습니다. 보통 연수를 가면 몇 가지 기술을 익혀오는데 저는 그곳에서 무엇보다 일본 요리사들이 요리를 대하는 마음을 읽고 돌아왔습니다. 일본 요리사들은 식자재를 다루는 자세부터 다릅니다. 생선을 다룰 때에도 신주 모시듯 아기 다루듯 정성을 가득 담습니다. 생선 껍질도 한국에서처럼 확 벗기지 않고 정성스럽게 해요. 또 칼질에는 혼이 들어가지요. 음식의 재료를 정성껏 대하면 그 재료도 자신의 맛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로 보답합니다.


친구는 내가 궁금해하는  유학, 초밥에 관련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밥의 밥을 지을 때는 그날의 기후나 습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하며, 아주 자세히 습도에 따른 밥을 짓는 방법을 알려줬다. 또, 일본 장인은  초밥(장어, 유부, 피조개 등)의 장인들 가게에 데려가 친구를 소개해줬고, 친구는 각 장인들로부터 특색 있는 초밥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계란 초밥 장 가게에서 3주간 머물며 계란 초밥을 배웠데, 장 쉽게 배울 수 있을  생각했던 계란 초밥을, 장인이 혼을 담아 예술로 완성하는 과정에 놀랐 했다. 초밥을 이야기하는 친구의 눈은 항상 반짝이 있다.


나는 중국에서 유학을 하며, 초밥이나 요리는 잘 알지 못했기에, 친구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친구의 꿈이 커가는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친구의 펜이 되어, 그의 꿈을 응원하 싶었다.


하늘색 실크를 만질 때면 기분이 좋았다. (사진출처 : 페라가모)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친구는 김포공항으로 마중나온 나에게, 일본에서 사 온 페라가모 넥타이를 선물했다. 는 내가 평소에 명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 명품을 좋아해도 될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점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학생이기에 아직은 명품 넥타이를 일이 없다는  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며 나에게 으로 쓸 일이 을 것이라고 말다.


친구는 훗날 내가 큰 사람이 될 것이라며,  흔들림 없는 믿음과 지지를 보내 주었다.


친구가 선물한 페라가모 넥타이는 나에게  이상으로 소중의미가 있었다. 나는 언젠가는 친구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 넥타이를 가장 중요한 순간에 멜 것이라고 생각해, 옷장 속에 타이를 최대한 아껴 두었다.




페인트로 얼룩지는 명품 넥타이


지금 나는 마케팅팀에일하며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는 영업 업무에 항상 정장 재킷을 입고, 흰색 와이셔츠 차림에 나멜 구두를 신고 다녔다. 나는 영업으로서, 고객을 만나서 미팅을 하, 사무실에서 매출정리하고, 사장님께 영업 상황을 보고하에게 정해진 무였다. 그러나 제품과 현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현장 일에도 적극적이라는 회사 내부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서, 나는 제조 현장에서 가끔 페인트를 싣고 나르는 일을 도와서 같이 하고는 했다.


나는 첫 직장에 근무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우울해지는 날에는, 친구가 준 명품 실크 넥타이를 아주 가끔씩 매고는 했다. 평소 제조 현장에서 넥타이를 풀고 일했지만, 하루는 너무 바빠서 넥타이를 풀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옮기던 페인트 뚜껑에 노란색 페인트가 묻어 있었고, 바닥으로 늘어져 있던 넥타이에 페인트가 묻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페인트가 묻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아끼는 넥타이에 페인트가 묻었을 때에는 억울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좋아했던 공장장인 왕 반장은 나의 마음을 눈치챈 듯, 다급히 달려와 신너로 지워 보겠다고 애지만, 오히려 페인트가 번갔고, 그와 함께 나의 마음도  물드는 듯했다. 언젠가 멋진 장소에 메고 가겠다는 나의 희망의 불이 꺼다.


퇴근 후, 옷장을 열어 볼 때면, 억울하게 걸려있는 얼룩진 넥타이가, 꼭 나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았다.


페인트 공장은 비교적 열악하다. 사진의 공장은 그래도 좋아 보인다.


작은 회사지만 애사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 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끼던 명품 넥타이를 못 쓰게 되었을 때, 시간 맞추기 위해 거칠게 운전하 부쩍 욕이 늘은 나를 발견했을 때, 졸음운전이 일상이 되어 도로 위에서 10초 정도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더운 여름 에어컨 없는 트럭에서 한 바가지의 땀을 뒤집어썼을 때, 퇴근하면 대리가 거실에서 함께 야구를 보거나, 소주를 마시는 외에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느꼈을 때, 특히 정수기 물받이에서 금방이라도 넘칠락 말락 하는 팡 과장이 버린 커피 오물을 볼 때면, 대한민국 최고의 중국통이 되겠다고 했던 나의 꿈과 미래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나는 중국에 돌아오겠다는 첫사랑과의 약속만 지켰을 뿐,

자신의 커리어가 천천히 망가지는 것은 손을 놓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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