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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 Apr 07. 2024

법이 늙었다 12

유교적 한국사회의 예속관계 3

   - 유교적 한국사회의 예속관계 3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재미있고 즐겁게 사느냐이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맘껏 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느냐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또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라 해도 돈과 시간에 쫓겨서 능력 이상의 성과를 쥐어짜 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 자체가 일의 생산성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책도 많고 글을 쓰는 이들도 많다. 모두들 자신들의 생각이나 느낀 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시간과 돈에 쫓겨, 기계에서 찍어내듯이 말을 엮어내는 재주로, 타인의 잔재미를 위해서 혹은 그 타인들의 시간 때우기용으로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문제에 비해, 그에 대한 대안이랄지 해결책을 제안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책에서 엮어내는 이야기들 중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격정적이고 수많은 사건들이 휩쓸고 지나가고, 그 뒤에는 가장 처절하고도 자극적인 방법으로 주인공을 죽이거나, 그 모든 것을 거짓말처럼 해결해 내고 잠깐의 희열감에 빠지게 하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종결짓는 내용들이 줄지어 서점 진열대에 올라 있다. 내용의 극적인 구성과 흥미를 일깨우기 위한 자극, 그리고 그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정도의 결론이 대부분이다.


 돈이 되는 책, 흥행이 보장될 만한 글을 쫓다 보니, 돈 잘 버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책들은 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지, 그 번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보람 있게 살찌우고, 만족해하면서 살 수 있는 지와는 더더욱이 거리가 멀다. 무엇이 잘못된 판단이고, 무엇이 올바른 행위인지에 대한 해명도 일절 없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돈의 많고 적음이고, 그 돈을 버는 방법도 자신의 취향이나 자존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만이 세상 이치이며 정답인 양 떠들어댄다.


 사회 각계 개개인의 취향과 느낌은 다양하나, 문학적 분야에서 그 취향들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글을 찾기 어렵듯이, 가수나 작곡 작사가들, 화가와 같은, 음악적 예술적 분야에서도 이런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접하고 있는 주변환경과 시간적 변화와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서, 음악적 예술적 취향이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양한 음악이나 예술이 발달해야 하고, 돈이 되든 되지 않든 그런 음악과 예술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이 풍부하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음악과 예술을 통해서 사람들이 감정해소도 하고, 위로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는 음악이나 예술 역시, 돈 되는 분야를 쫒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방향과 유행이 결정되고,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흥행이 잘 되는, 아니, 흥행이 잘 되도록 온갖 로비와 전략이 곁들여진, 음악성보다는 지략이 돋보이는 음악들을 듣고, 그런 예술들을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음악이나 예술이라고 해서 음악성이나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음악이나 예술의 생산에 지나치게 많은 돈과 로비의 개입이 들어있고, 투자한 부의 재생산을 위해 그 어떤 희생이나 불편함도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젊은 아픔들을 내포한 음악과 예술들이기에 마냥 즐기기만 하기에는 찜찜한 부분이 있다.


 음악뿐 아니라, 이제는 어느 분야에서도 순수예술이라는 걸 만나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돈이라는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개념에 의해 지배받고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분야에서든 돈과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힘의 논리를 뒤에서 더욱 견고히 받쳐주는 유교사상이 자리하여, 돈과 힘없는 웬만한 사람들은 어딘가에도 발 뻗고 누울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법에는 이러한 유교적 해악적 예속관계를 해방시키고 개인을 위하는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법들은 유럽이나 서구에서 그 기초가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들이므로, 법은 유교적인 영향을 그다지 많이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경제적 이유로 인하여 서로의 권력구조에 예속되므로, 이에서 벗어나는 일은, 법의 도움이 있더라도 어렵고, 또 벗어난다 해도 그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단절을 겪게 될까 두려워 법의 도움을 받으려는 시도조차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예속관계는, 사회보장제도로써 서로 온전히 독립적인 관계로 해체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어느 정도는 이루어 놓은 제도가 EU가 실행되기 전의 70 80 년대의 스웨덴이나 북유럽의 사회보장제도일 것이다.

 물론 EU 실행 후의 북유럽은 더 이상 그전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시키지 못하고, 미국과 같은 자유방임주의 방식을 많은 분야에 도입하여, 복지 부분에서 퇴색일로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과연 이보다 살기 좋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완벽한 사회보장제도가 실제로 실행되고 있었던 유럽의 몇몇 나라들이, 정말 모두가 꿈꾸던 이상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나라들이었는지 알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이보다 더 나은 사회란 대체 어떤 것인지, 잘 산다는 나라의 국민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과연 사회보장제도만 완벽하면 사람들이 마냥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대체 어떤 법적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안정된 사회보장제도를 말하면서 스웨덴의 언급을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하여, 스웨덴과 그 사회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려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아름답게 꽃 피우던 시기에 그 나라에서 살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그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부터의 스웨덴에 대한 기술은 거의 모두가 70 80 년대의 찬란하게 빛나던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것임을 먼저 말해 둔다.  왜냐하면 지금의 스웨덴은 유럽연합과 각종 국제적 상황에 의해 그때의 사회제도를 더 이상 고수하지 못하고, 많이 약화된 복지체제와 여러 분야에서 미국식 자유방임주의를 채택하는 쪽으로 변화되어 왔고, 게다가 완벽한 복지제도의 주창자였던 울로프 팔메 수상이 암살된 후, 그에 견줄만한 배포를 가지고 국민에게 헌신하며 국제적 대치상황에도 당당히 맞서는 정치가를 또다시 만날 만큼, 스웨덴 국민들이 그리 소름 끼치게 운이 좋은 편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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