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마음속 과수원 33

어느 하루

by 주단

- 어느 하루


우리는 동물원을 나와 정류장으로의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차가운 밤기운이 뺨에 와 부딪쳤다.

'버스'라고 쓰여있는 안내판이 맞은편 골목가게에서 던지는 전구빛을 노랗게 되받아 던지고 있었다.

그 애는 코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다.


"귤 사줘."

그 애가 말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 귤... 귤 나중에 사줄게."

나는 계속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지금 사줘."

심술스럽게 그 애가 말했다.

"지금은 없어. 못 사줘."

돈이 없었다. 차비하고 동전이 몇 개 손에 잡혔다.

"사줘. 귤 사줘."

그 애가 계속 졸라댔다.

"나중에 사줄게, 나중에."

나는 그 애를 달래며 생각했다.

'제기랄, 가난뱅이 신세란 건 뼈아픈 거로구나.'

"귤 사줘. 귤 사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지금은 돈이 없어. 다음에 사줄게. 귤 말고, 껌 사줄까, 껌? 그래, 껌 사줄게."

나는 그 애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허둥지둥 골목가게로 달려가 껌 한 통을 사 왔다.

그 애는 껌을 받아 들었다. 얼굴엔 못마땅한 표정을 가득 띄고...

그 애는 껍질을 까서 오물오물 껌을 씹었다. 왼 손에는 남은 껌을 들고 오물오물 껌을 씹고 있었다.


"껌 한 개 안 줄래?"

내가 말했다.

"싫어."

그 애는 고집스럽게 껌을 쥔 손을 뒤로 가져갔다.

"싫어."

완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애는 아기였다. 멋모르고 조르기만 하고 무엇인지도 모르고 욕심내는 어린 아기였다.

그 애는 호주머니에 껌을 감추고는 그제야 안심한 듯 오물오물 껌을 씹었다.

가게에서 비쳐 나오는 전구불에 그 애 얼굴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밝게 빛났다.


멀리 그 애가 타고 갈 버스가 굴러오고 있었다. 코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 애는 아무 표정 없이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왔어."

"응."

답하고는 안녕도 없이 그 애는 냉큼 버스에 올랐다.

내쪽을 쳐다볼 생각도 않고 그 애는 빈자리를 찾아서 털썩 앉았다.

차창 밖에서 그 애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기, 저 아기가 집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마음속 과수원 32